시암 캠핀스키의 조식, 시암 파라곤의 SeaLife, inter 레스토랑
시암 캠핀스키의 조식 시스템은 다른 호텔과 조금 달랐다. 뷔페처럼 가져오는 음식도 있었고 자리에서 메뉴판을 보고 주문해야 하는 음식도 있었다. 작년 여름에 갔던 amanoi랑 시스템이 일부 비슷했다.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는 부분이. 몇가지 요리를 시키고 접시를 들고 음식을 가져오는데 중동쪽 요리가 꽤 많아서 신나게 담았다.
전날 아주 큰 까만색 Mercedes 벤에서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빼꼼 내놓은 6~7명의 여자들과 배가 꽤 나온 남자한명이 제일 큰 사이즈의 주황색 에르메스 쇼핑백 10개쯤 들고 내렸던 장면이 생각났다. 소비력 많은 분들을 위한 메뉴겠구나.
눈만 빼꼼 내놓은 여자분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가방은 볼 수 있었는데 다른 가방은 기억이 안나고 작년 가을에 살까말까 하다가 말까했던 로로피아나의 엑스트라백이 눈에 들어왔다.
엑스트라 백, 5,200,000원
며칠전 이너서클방에서 백화점의 소비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적이 있는데 아자언니(IZA언니 아님)가 판교 현대백화점에 로로피아나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죄다 쫄아있는 상태라고 했던말이 생각난다.
따로 주문했던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와 치즈요리가 나왔다. 딱 한입..아니 두입정도? 깔끔하고 심플하게 나왔다.
망고는 매번 갖다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두명이니까 2개씩 갖다주셨다. 분명히 지금은 망고철이 아니라서 망고가 맛있는 시즌이 아니라고 했는데 너무나도 맛있던데요.
아래는 로티라고 태국 전통 디저트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은 아니었고 신기한 맛도 아니었고 맛이 없지도 않았지만 한번 먹어봤다면 두번 생각나는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다. 조금 솔직히 말하면 조오오옷나 달았다.
어, 메뉴판사진이 있었구나?
밥을 먹고 나와서 도로 방으로 돌아가는길에 수영장 구경을 하러 가자고 아이가 제안했다. Why not?
수영장을 구경했다.
'사진 찍으면 참 이쁘겠구나.
다소 인위적이긴 하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옷을 입은채로 애가 수영장에 뛰어들어가버렸다.
수영장에 떠다니던 꽃잎을 하나 주워서 선물이라고 건내주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을 가기로 했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아쿠아리움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아쿠아리움이랑 너무나 비슷할 것 같아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원하니까 가기로 했다. 시암 캠핀스키랑 붙어있는 시암 파라곤에 아주 큰 아쿠아리움이 있다고 해서 동선이 좋으니까 가보자 했지. 시암 파라곤에 있는 아쿠아리움의 이름은 씨라이프였다. 시암 파라곤을 가로질러 가다가 직원으로 보이는 분한테 씨라이프는 어느쪽으로 가야하냐고 물어봤더니 씨라이프 정문까지 걸어서 데려다 주셨다.
씨라이프 입장합니다.
이 막대기같은 물고기는 처음 봤을때 너무 신기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아쿠아리움들의 초입에 배치되어있는것 같다.
"얘, 나 이제 너 예전만큼 신기하지 않아"
빼꼼이 장어, 너도 내가 많이 봤어.
개구리 색 너무 이쁘네. 너 독있지?
그리고 우리애가
"엄마, 빨리 와봐.
여기 엄마가 좋아하는 생명체가 있어"
라고 해서 따라 갔더니...^^ ^^ ^^ 엄마가 좋아하는 바퀴벌레...라며... 이런 이야기 하기 좀 그렇지만 이런 바퀴벌레 보면 {조의 아파트먼트} 생각나지 않아요? 아, 또 나의 연배 나오는건가요?
뱀들의 시선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보인다고 했는데 썬크림 바른자와, 썬크림을 바르지 않은 자의 스킨컬러차이는 상당히 정직하더군.
가오리랑 공감도 하고요.
상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지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돈 따로 내고 3D 영상도 감상하고?
돈 따로내고 배도 탔지.
돈 주고 이 사진 뽑을래? 라고 물어보길래 당당하게 핸드폰으로 찍어서 가져왔다. 아, 물론 얼마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문제는 아니고 사진이 넘쳐나서 그랬다...고 해둔다.
점심은 근처의 로컬 식당을 갔다. 애매한 시간에 갔는데도 웨이팅이 꽤 있었고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볶음밥을 시켰다.
그리고 닭껍질튀김을 시켰다.
그리고 모닝글로리를 시켰고 팟타이도 시켰다.
둘이서 먹기에는 역시나 많았다. 더위에 20분쯤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먹고 싶은거 이것저것 다 시켰다. 어차피 얼마 안하니까. 그리고 사주팔자에 식신도 많은데 들어온 복을 걷어차면 안되니까 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급하게 먹었고 사실 이 식사를 이후로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생각해봤는데 더운데 있다가 추운데 들어갔다를 반복했던 점, 음식이 나오기 직전에 배가 매우 고팠고 그래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급하게 먹었던 점, 그 와중에 저 닭껍질 튀김맛이 남은 여행내내 어디선가 느껴졌던 걸 보니 저걸 먹다가 체했던것 같고 저녁에 열도 좀 났던것 같다. 그러니까 미열을 동반한 급체를 했던거겠지. 적어도 이날까지는 급체정도였을 것 같다. 이 날 밤부터 새벽까지 내내 변기를 붙잡고 괴로워했었다.
사실 맛있게 잘 먹긴했다. 그냥 내가 아팠던거지 inter는 잘못이 없지. 식사를 하고 inter 근처의 거리를 걸어다녔다. 방콕을 잘은 모르지만 이 동네는 약간 명동의 느낌이 났다. 대학생들과 학생들이 많았고 대학생들과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가게들이 많았다. 으리으리한 새 건물들도 많았지만 개발되지 않아보이는 낡은 상가 느낌이 나는 곳도 있었고 애랑 그 골목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놀이를 만들었다. 누가 먼저 한글을 찾는지 게임도 해보고, 대한민국 국기를 누가 더 많이 찾는지 내기도 해봤다. 그 만큼 방콕은 한국문화에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은 우리애는 베이킹 클래스를 하는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어떤 티셔츠를 파는집에 가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케어베어 프린트가 있는게 아닌가?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150바트라고 했다. 150바트면 5700원, 오늘 아침에 마신 (물론 공짜 쿠폰으로 마시긴했지만) 스타벅스의 돌체라때보다 싼 가격이었다.
아이랑 한참을 골랐다. 우리애도 케어베어 티셔츠가 제일 이쁜것 같다고 해서 한장을 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사지도 받기로 했다. 웨이팅 없는 마사지샵에 들어갔는데 전신 마사지는 받을 수 없고 발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너무 시원했고 너무 좋아서 다다음날에 또 갔는데 전신마사지를 받고 너무 실망했다. 늘 마음에 드는 곳만 갈 순 없으니까 뭐 괜찮다.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시암파라곤 지하의 마트에 갔다. 솔직히 말하면 마트가 너무 커서 구경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아이가 "엄마, 여기 와봐. 여기 라면이 있어! 내가 또 한글을 찾았어!" 라면서 너무 반가워하길래 쫓아가봤더니 짜파게티가 보였고 신라면이 보였다.
그리고 블루엘리펀트의 굿즈가 보였다. 지난번에 남편이랑 왔을때에 미리 블루 엘리펀트 예약을 하고 코스요리를 먹고 다음에는 꼭 쿠킹 클래스를 듣겠노라고 했는데 그 다짐을 지키진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몇개 사려고 했는데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는데 결론 부터 말하자면 나중에 또 기회는 없었다. 결국 면세점에서 겨우 샀다.
그렇게 마트구경까지 대충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잤다. 자려고 누웠는데 속이 너무 안좋아서 변기를 붙잡고 누웠다 앉았다 섰다가를 반복했다.
며칠전에 회사분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나는 분명히 부자가 아니거든요?
쪼들리고 빠듯한데 우리애를 보면 되게 여유로워.
신기하죠?
부모는 부자가 아닌데
아이는 부잣집 아이 같이 행동하는게?"
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부모들이 동의했다. 정말이다. 예전에는 헝그리정신이라는 걸 잘 활용해서 궁핍함을 극복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면 성과가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가르치고 혼내고 윽박지르고 혼내면 성과가 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닌것 같다. 궁핍함이라는 감정은 느껴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부족함이 없는 아이들, 결핍을 모르는 아이들.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생각보다 속도감 있게 변하고 있다. 올바른 사람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는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선생님, 오늘 축구수업할때 우리아이한테만 공이 많이 안왔더라고요, 신경써주세요"
"선생님, 오늘 농구수업할때 우리아이에게만 공이 자꾸 가더라고요, 아직 농구가 익숙치 않아서 스트레스 받는것 같더라고요. 신경써주세요"
이래도 지랄이고 저래도 옘병이다. 저런 부모들을 보면 무균실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사실을 기억해 냈을때 고마워할까? 아니면 원망할까? 이런 행동은 과연 좋은걸까? 아닐까? 사실 잘 모르겠다.
급하게 먹은 닭껍질 튀김이 식도와 위의 중간어디쯤에 턱 걸려있어서 불편했고 잠이 오지도 않았고 변기를 붙잡아도 변하는건 없었고 밤은 깊어갔다. 다른건 잘 모르겠고 정말 간절하게 어서 자고 싶었다. 아이를 잘키우는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지금 당장 더 이상 닭껍질 튀김맛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잠을 잤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밤을 거의 꼴딱 샜지만 나는 분명히 잤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모든것은 마음먹기 달렸으니까, 잤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기로 한 것이다. 마음먹는거 말고 사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없었긴 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지. 나는 잤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잤다. 아마도 잤을 것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