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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 Jul 07. 2024

Coldplay 콘서트를 다녀온 상하이에 사는 Zoey

시암 캠핀스키, 그리고 Silom 쿠킹 클래스

샹그릴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왔다. 마지막 조식이니까 밖에서 먹어볼까 하고 제안해 봤지만 당연하게도 우리애는 싫다고 했다. 나도 왔다 갔다 여러 번 하려면 (망고를 적어도, 적어도! 5개는 먹어야 했단 말이다) 안에서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굳이 설득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망고 먹고 망고 먹기

밥을 먹고 수영장으로 갔다. 방콕의 2월은 예상만큼 덥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음날 이 생각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물속에 들어가긴 쌀쌀한 것 같아 애한테 혼자 들어가라고 했더니 엄마도 꼭 같이 들어와야 한다고 졸랐다. 


'추워서 싫은데...

그런데 같이 놀 사람이 없으니 내가 들어가야겠지...

으... 싫은데...'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육성으로 "헛둘, 헛둘" 하면서 준비운동을 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수영 학원에서 배운 준비운동이라고 하는데 참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이라기보다는 귀여운 몸부림 같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준비운동을 하고 물속에 들어가 놀기 시작했다. 


전날 수영장에서는 노르웨이에서 온 에바(Ebba)가 말을 걸었었다. 우리 애한테 말을 걸었던 건 아니고 나한테 말을 걸었는데 물속에서 360도를 도는 묘기를 부리면서 "이거 할 수 있어요?"라고 물어봤다. 


"못하는데?"

"이거 되게 쉬운데"

"그래? 헤이든, 너 한번 해볼래?"


당연히 헤이든은 하지 못했다. 360 도는커녕 15도도 못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한번 돌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에바는 헤이든이 몇 살인지 물어봤다. 8살인데 2024년도가 되었으니 9살이지만 너네 나라 나이로는 7살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 나이 계산하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고 했다. 에바는 그렇다면 헤이든이 몇 학년인지 물어봤다. 지금은 1학년이고 3월이 되면 2학년이 된다고 했더니 "왜 7살이 아닌데 지금은 1학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에바야, 나도 그게 이해가 잘 안되고 늘 헷갈려. 한국은 그래.


"North? or South?"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South!"


"남한에서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고 하고 새해가 되면 1살을 더 먹으니까 태어나자마자 2살이 되기도 해"

라고 설명해 줬는데 에바는 그게 너무 신기했는지 갑자기 책을 읽고 있던 엄마를 향해 뭐라고 노르웨이어로 말한다. 


아마도

"엄마! 남한에서는 태어나자마자 2살이 될 수도 있데" 정도의 이야기였을 것 같다.


방콕에서 노르웨이까지 가려면 2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일단 암스테르담에 가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고 다시 노르웨이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오후 6시 비행기라고 했는데 오후 3시 30분까지 우리랑 수영장에서 놀면서 노르웨이어와 한국어를 사이좋게 알려주고 헤어졌다. 


"엄마, 지금쯤 에바는 노르웨이에 도착했을까?"

에바가 노르웨이에 도착했는지 못했는지 24시간 동안 우리도 계속 생각했다. 저 먼 북유럽에서 태국까지 올 생각을 하다니.


그렇게 전날 에바랑 놀았고 이날은 놀다 보니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어떤 여자아이와 말을 하게 되었다. 상하이에 살고 있다고 하길래 나의 유일한 중국어 무기 "니 찌아오 쉬마 밍쯔" 라는 멘트를 날렸다. 그랬더니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너 얼굴에 페인트 뭐야?”

“응, 타투 같은 거야. 물 묻혀서 붙이는 거“

“이쁘네”

“응, 나 어제 콘서트 갔거든”

“오, 진짜?”

“응, 콜드플레이 콘서트 갔어”

"어? Coldplay가 방콕에 있어?"


8살짜리 아이도 콘서트를 갈 수 있구나. 좋다.

아이의 아빠인 제임스였는지 존이었는지랑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한국에 산 적이 있다고 했다.


"강원랜드를 내가 지었어"

"응? 강원랜드를?"

"내가 그런 걸 만드는 사람이야"

"어머, 너무 반갑다"

"사북이라는 곳에 있었어, 알지?"

"아니, 나는 서울에 살아서 강원도는 잘 몰라"

"한국은 외국인한테 참 관대한 나라인 것 같아"

"응, 맞아. 잘 봤네"

"언어라는 게 재미있지 않아?"

"응?"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언어가 다르니까 적당하게 이해하고 그래서 좋은 말만 하고"

"아, 맞지 맞지"

"지금은 상하이에 산다고?"

"응, 원래는 LA에 살았었어"

"어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야"

"근데 우리 와이프가 LA의 그 여유로움이 못 참을 만큼 지겹다고 해서 상하이로 이사 갔어"


그런 대화를 하고 나서 아이들끼리 물고기를 잡으면서 놀기 시작했고 아이의 아빠는 잠깐 랩탑을 가지러 방에 가야 하는데 아이를 봐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Sure!"


아이의 이름은 Zoey라고 했다. 내가 Z 발음을 내지 않고 조이를 불렀더니 "왜 한국 사람들은 내 이름을 Zoey라고 부르지 않고 Joy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건 한국에는 Z 발음을 내는 단어가 없어서 그래"

"우리 학교에 한국인들이 많은데 다 저보고 Joy라고 불러요!"


Zoey와 Hayden 둘이서 물고기를 잡고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으로 게임을 만들어서 계속 수영장에서 놀았다. 엄마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조르던 우리애는 더 이상 날 찾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둘이 놀았다. Zoey의 아빠가 팬케이크를 사와서 같이 먹이자고 했다. 




순식간에 팬케이크를 다 먹은 Zoey와 Hayden.



그리고 다시 물놀이를 시작했다. Zoey의 엄마도 내려와서 인사를 나눴다. 어쩐지 LA에 살고 있는 중국인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누구보다도 LA의 여유를 즐길 줄 알 것만 같은데 지겹다고 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Venice Beach라고 쓰여있는 나시 티셔츠가 너무 반가웠다.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와서 나가야 한다고 말을 했더니 한국에 가냐고 하길래 "아니, 오늘 다른 호텔로 가"라고 말했더니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라는 답변이 너무나 진지해서 재미있었다. 호텔을 옮겨 다니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가보고 싶은 호텔이 있어서 거기도 예약했어" 


애 둘이 잘 놀아서 아마 내심 우리가 더 있었으면 했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처음에 아이를 낳고 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둘째는 안 낳느냐는 말을 들을 때 조옷나 진짜 기분이 나빴다. 지가 뭔데? 애 낳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나한테 둘째 이야기를 꺼내? 돈이라도 주고 그런 말을 해야지? 그런데 이제 와 고백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살이나 두 살, 아니 세 살 터울 정도로 둘째를 낳았다면 5년쯤은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뿌듯하고 든든한 날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후회라는 감정은 아니고 가끔 아쉽긴 하다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또 지금의 나한테 "둘째 낳으셔야죠"라고 눈치 없이 말하는 사람이 없기를.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잠깐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은 우영이 오빠가 댓글로 존맛탱이라고 알려준 마짜로로 갔다.


오빠가 존맛탱이라고는 했는데 뭐가 존맛탱이라고까지는 알려주지 않아서 오빠의 인스타그램을 확대해서 오빠가 시킨 걸 대충 유추해서 시켜봤다. (아, 다시 읽어보니 존맛탱이 아니라 개존맛이었다) 지금 다시 오빠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혼자 웃음이 터졌다. 나름 되게 열심히 비슷하게 찾아서 시켰단 말이지. 일단 오빠처럼 망고주스랑 수박주스랑 {짠} 하는 사진을 찍어봤지.



그리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볶음밥을 시켰고 우영이오빠 인스타그램에 튀김 같은 게 있었던 거 같아서 비슷해 보이는 걸 시켰다.


팟타이와 쏨땀을 안 시키면 아쉬우니까 그것도 시켰지. 


맛있게 참 잘 먹었다. 잘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맡겨둔 트렁크를 찾아서 택시를 불러서 두 번째 호텔로 갔다. 

두 번째 호텔은 한국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시암 캠핀스키.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왔더니 웰컴 과일과 쿠키가 올려져 있었다. 저 귀한 과일을 손도 안 댔구나?

정말 도심 한가운데 있는 깔끔한 호텔이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온갖 명품이 가득한 시암 파라곤과 연결되어 있는 시암 캠핀스키, 여기 스테이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것은 마치 반포 삼호가든 사거리 근처의 아파트에 살면서 반포 메리엇에 스테이 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날은 우리애랑 몽키트래블에서 골라둔 쿠킹클래스를 가는 날이었다. 거리는 꽤 가까웠는데 15분? 20분쯤 걸려서 도착했다.


인증샷은 남겨야지.

이건 무슨 표시니?

1층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한국청년이 요구르트와 커피를 사줬다. 모르긴 몰라도 나보다 20살쯤 어린 청년일텐데 고마웠다. 나중에 물어봤는데 호텔이 아니라 호스텔 같은 곳에서 스테이 한다고 했다. 얼마나 재미있을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랑 수다떨고 술마시는 재미, 이방인이 되어 하나가 되는 그 재미.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멜번에 간적이 있다. 한달정도 있었는데 멜번에 가면 다들 가본다는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가보지 않았지만 멜번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호스텔에는 가봤다. 다른건 정말 기억이 가물한데 호스텔의 주방에서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이 요리를 해먹던 장면이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유리로 된 냉장고 문을 살짝 보니 포스트잇으로 이름을 써서 붙여둔 식재료가 여기저기 보였다. 침대는 2층침대였고 4명이 잘 수 있었는데 인사를 하고 "너 어디서 왔니? 호주는 며칠째니?"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잠만 자기 바빴던게 기억이 난다. 물론, 휴식공간에서 VB나 XXXX를 마시며 알딸딸해진적도 있지만.


아마, 요구르트와 커피를 사준 청년도 그런 경험을 하고 있겠지. 그거 다 추억이다? 20년이 지나면 가물하긴해도 꺼내어 볼때마다 "내가 참 용감했었지" 하면서 뿌듯해지는 추억.


쿠킹클레스에서 나눠준 앞치마를 한 우리애가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쿠킹클래스 선생님의 이름은 플레인이었던가 트레인이었다. (둘 중 하나인것은 확실한데 둘 중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웃겼던건 분명히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때 프랑스인도 있었고 백인 할아버지도 있었고 동양인 동성 커플도 있었는데 한국인 vs 한국인이 아닌 나머지로 팀을 짜서 쿠킹클래스를 진행했다. 결국 한국사람들끼리 쿠킹클래스를 경험해야했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은 불만이었다. 


요리는 총 5개를 만들어 본다고 했다. 톰냥꿍, 팟타이, 쏨땀, 그린커리, 그리고 후식으로 망고 스티키 라이스까지.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하고 있는 쿠킹클래스가 있다. 플레이팅부터 요리까지 너무 세련되고 멋있어서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쿠킹클래스가 있는 날은 식재료를 사러 가는게 아니라 늘 고속터미날 꽃 도매시장에 꽃을 사러 오는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떤날 피드를 읽는데 "재료를 손질해주시는 이모님"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모든 재료는 누군가가 손질해주고 강사는 sns에 올리면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도록 꽃을 고르고 쿠킹클래스에 참석한 사람은 사실은 플레이팅 위주로 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쿠킹클래스 중간중간에 "요리는 한순간 이지만 인스타그램은 forever!" 이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멘트가 어쩐지 꽤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코넛을 손으로 꽉꽉 짜서 코코넛물을 내어봤다. 생 코코넛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사실, 코코넛 워터도 생으로 먹으면 밍밍하고 맛이 없긴하지.


미리 손질한 재료들을 하나씩 설명해줬다. 재료를 잘라보고 향을 맡아보고 "아~이게 그거구나~"하면서 맛보고 비벼보고 "맞아, 맞아!" 하면서 맛의 기억을 더듬었다. 

첫번째 요리는 똠냥꿍이었다. 똥냥꿍에 들어가는 재료들. 그렇지, 맞지, 저 버섯이 들어가고 씹으면 유쾌하지 않은 저 풀도 들어가지, 토마토도 필수지.


이렇게 재료를 웍에 넣고 조리했다. 애랑 나랑 같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이제 점점 나는 늙어가고 체력이 떨어질 것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아이는 점점 성장하고 지금은 무섭고 두려워 하는일에도 도전하게 되겠지. 나는 꺽이고 너는 자라고.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 얘와 내가 무언가를 같이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시간이다. 아이와의 시간은 내일로 미루면 안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자고 생각해놓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기적의 계산법을 풀으라고 하는 내모습과 내 얼굴보다는 패드로 미스터비스트를 보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이 묘하게 슬펐다. 

새우가 들어간 똠냥꿍.

너무나도 맛있었다.

두번째 요리는 바로 팟타이.

팟타이라면 내가 여러번 만들어봤지.

새롭게 배운건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볶아내더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시간차를 두고 볶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팟타이를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냈더니 선생님이 한번 더 외치셨다. 

"요리는 한순간이지만 인스타그램은 forever!" 

새우로 하트를 만들어서 영원한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어보았다. 인스타그램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세번째 요리는 내 사랑 쏨땀.

난 쏨땀의 맛을 참 좋아한다. 약간 매콤한 쏨탐을 특히 좋아한다. 아이랑 같이 먹어야 하니 맵게 만들지는 못했다.

절구통에 이런저런 재료들을 잘게 빻는 과정이 있었는데 우리아이도 대표로 해봤다. 힘들다고 하면서 얼굴은 웃고 있었다.

네번째 요리는 그린커리였다. 세번의 요리를 만드느라 2시간? 3시간이 지나있었고 배도 불러서 나의 에너지는 거의 떨어져나갔는데 아이는 그린커리가 제일 맛있다고 이야기 했다. 


한국에도 엄마의 손맛 내지는 할머니의 손맛이 알고보니 미원이더라, 다시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쿠킹클래스 선생님도 

"이렇게 재료를 넣고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if you go to 세븐일레븐, 다 있어요" 

라고 이야기 하셨다. 수업내내 "세븐일레븐에 가면 팔아요"라는 말을 9번쯤 하신것 같은데 방콕가서 세븐일레븐을 한번도 안갔다는 사실이 웃겼다.

마지막 요리는 망코 스티키라이스였다. 아주 달달한 찰밥과 함께 망고가 나오는 디저트였다. 요리 수업시작할때 스티키라이스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고 설명을 해주다. 


이렇게 수업이 끝났다. 우리는 저녁수업을 신청했지만 오전수업을 신청하면 재료를 사는것부터 같이 한다고 했다. 재료 사는 것부터 같이 했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에 10,000원쯤 하는 망고의 시세는 2kg에 2,500원쯤이라고 했고 (더 쌌을 지도) 지금 시즌은 망고가 맛있는 시즌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호텔 조식에서 망고를 먹고, 또 먹고, 또또 먹어도 태국물가로 치면 그다지 가성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리가 끝나고 1층에 내려가서 각자 택시를 잡았다. 호스텔에 스테이한다는 한국청년과 곱슬머리의 프랑스인은 Grab으로 오토바이를 불러서 타고 갔다. 혼자 왔다면 나도 오토바이로 Grab을 탔을것 같은데 아이랑 같이 오토바이까지는 못타겠더라.


밤은 깜깜했고 배는 불렀고 4시간을 서있었으니 우리 둘다 피곤했다. 아이의 눈은 거의 반쯤 감겨있었던것 같다. 그래도 타지에 와서 너와 나의 추억에 무언가를 함께 배웠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주 충만한 하루였음이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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