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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 Jul 13. 2024

나의 비루한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사파리월드.

제가 곧 안식휴가를 가게되어 아마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비행기에 있을 예정입니다. 연재 미리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제목이 잘려서 본문에 다시 쓰는 제목.

{아이가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나의 삶에 이 자그마한 존재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나의 비루한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방콕에 오기전부터 아이가 제일 학수고대 했던건 아기 호랑이에게 우유를 줄 수 있고 오랑우탄이랑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물원이었다. 사실은 이 여행의 발단이 되었던것도 써니가 오랑우탄이랑 같이 찍은 동영상 이었다. 다른건 방콕에가서 고민해보고 결정했지만 아기호랑이를 보러가는건 여행가기전에 아이랑 몽키트래블을 보면서 검색하고 날짜도 정하고 했었지.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오랑우탄과 아기호랑이를 보러가는 그날이.


조식을 먹으러갔다. 조식을 먹다가 가끔 구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모델을 봤다. 모델이면서 사장님. 온라인 쇼핑몰의 모델들은 포샵으로 늘리고 줄이고 뽀샤시하게 한다고 해서 오프라인에서 보면 못알아 볼 줄 알았는데 알아 본 내가 신기했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못알아볼 정도는 아니었고 인사까지 할뻔 했다.

"저 JEAN303 3개째 사 입고 있어요"

하지만 여행왔는데 아는척 하는 눈치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모르는척했다. 나중에 인스타그램에 댓글로 "조식먹을때 뵈었습니다" 라고 굳이 남겼다. 나름의 팬심이랄까? 


사실 전날 변기를 붙잡고 괴로워하고 잠을 거의 못자서 가기 전 부터 힘들긴 했다. 전날 변경 가능하냐고 문의했는데 불가하다고 해서 '설마 별일 있겠어' 하는 심정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가기로 했다. 솔직히 후기가 찬양가득이어서 안심하는 마음도 있었지. 

그렇게 Ton을 만났다. 인상이 좋았다. 자기가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미안하다는 이야기 부터 했다. 영어를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알아듣는데에도 40초 정도 걸렸다. 후기에 커뮤니케이션과 사진을 잘찍어줘서 10점만점에 10점을 줬다는걸 많이 봤는데 만나자마자 커뮤니케이션부터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김이 빠졌다. 어쩌면 내가 몽키트래블에서 연결해준 첫 손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를 30분정도 타고 사파리 월드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에버랜드도 귀찮아서 안갔는데 굳이 태국까지 와서 사파리 월드에 가는 내가 조금 웃기다는 생각을 했다. Ton이 뭐라고 이야기 하길래 대충 눈치로 '티켓을 사온다는 이야기 겠지' 하고 기다렸다. 티켓을 사왔고 전날 150바트를 주고 산 케어베어 티셔츠를 입고 우리애랑 사파리 월드 입구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파리 월드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놀랐다. 분명히 몽키 트래블의 후기에는 칭찬 뿐이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졌기 때문이었다. 후졌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세련된 말이 없는것 같아서 나도 송구스러운데...음...사실은 미개...하다고 해야하나? 미안하지만 첫 인상은 그랬다. 


다리가 긴 새들무리를 지나서 오랑우탄쇼를 보러갔다. 자리에 앉았는데 그늘이 있지만 그늘이 없는것 같았고 너무 더웠다. 내 케어베어 티셔츠가 150바트였는데 300바트를 주고 저 말도 안되는 부채를 살까말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부채를 사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 그렇게 부채를 사고 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말 힘들었다. 그 와중에 부채로 우리애 더위 먹을까봐 나 대신 아이에게 부채질을 해주려고 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다. 이런게 모성애 인가. 


오른쪽 하단에 초록색 부채는 무려 300바트..

그리고 오랑우탄쇼가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불쌍했다. 저 오랑우탄이 뭘 알고 저렇게 행동하는지...얼마나 훈련을 받았을지...오만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오랑우탄 때문이 아니라 점점 내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전날 부터 아팠는데 더위를 먹어서 그런건지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앉아있을 수도 없었고 저기서 누울 수도 없었다. 사실은 그냥 기절하고 싶었는데 그 와중에 내가 애랑 둘이 왔다는 사실때문에 마지막 남은 정신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와, 이건 예상하지 못한 변수라서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어쩌지...한국이어도 당황스러운데 여긴 방콕 근교의 동물원인데? 


일단 써니맘이 파파고번역기면 다 된다고 이야기 해줬던게 생각나서 네이버에서 파파고 번역기를 검색했다. 그리고 Ton에게 보낼 메세지를 썼다.




Ton이 걱정하지말라고 메세지를 보냈고 나는 지금 토할 거 같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는 메세지를 다시 한번 더 번역기로 돌려서 태국어로 딴 다음 그걸 그대로 복붙해서 Ton에게 보내고 그대로 바닥에 기절했다.





기절하는 과정이 본의아니게 생각난건 우리애가 옆에 있으니까, 혹시라도 우리애가 당황 할까봐였던것 같다. 기절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마지막 남아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아 서서히 하고 있는 내가 측은하다는 생각을 안했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내가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 "너는 오랑우탄쇼를 보고 있어"라고 이야기 하고 그냥 엎어져있었다. 점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모든 장면들이 하얘졌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모든 음향이 페이드아웃되었고 하얗게 변했던 시야는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이가 나한테 하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기괴하지만 그야말로 누구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느껴서 그랬던건지 마음은 평온했고 평화로웠다.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신기할만큼.


오랑우탄 쇼가 끝났고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나는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리고 Ton이 오랑우탄 쇼 쪽으로 와서 우리를 발견했다.


"내가 의무실에 이야기 해서 카트를 불렀어, 조금만 기다렸다가 의무실로 가. 아이 걱정은 하지마. 내가 알아서 데리고 다닐께. 의무실에서 조금 쉬어"


아이는 Ton과 함께 코끼리 쇼를 보러 간다고 했고 나는 사파리월드의 카트를 타고 의무실로 갔다. 혈압을 쟀다. 40에 58인가가 나왔다. 누워있으라고 했고 아직 의사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누워서 나에게 주어진 평화를 만끽했다. 아무 걱정없이 잤고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처음으로 푹 잘 수 있었다.  혈압을 또 쟀지만 43에 60정도가 나왔고 임팩타민을 먹고 싼 쉬야 색깔이 나는 노란음료수를 생명수처럼 가져다 주길래 마셨다. 뭔지는 몰랐고 아직도 모른다. 아마도 게토레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또 잠을 잤다.



그렇게 2시간쯤을 푹 자고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Ton이 사진을 잔뜩 보냈다. 코끼리 앞에서 어색한 웃음으로 서 있는 우리애, 티셔츠는 뱃살 사이로 불편하게 접혀있었고 핫 핑크색 바지는 똥꼬에 끼운채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봤다. 



내가 모든걸 다 해줄 수는 없다.

내가 늘 그 자리에 지금처럼 있어줄 수도 없다.

알면서도 인정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는 사실들을 계속 곱씹어 보았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건 어떤건지 생각해봤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의 일기는, 그 산출물인 나의 책은,  어쩌면 출산율 저하에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몇 번 들었다. 


"너처럼 사는것이 워킹맘의 현실이라면 

나는 맘을 하지 않겠다, 워킹만 하겠다"는 

냉정한 평가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나의 삶에 이 자그마한 존재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나의 비루한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 모든 과정은 말로 형용할 수가 도저히 없다. 만약에 이런 감정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애진작에 삼류전산용역을 뒤로하고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때 손가락이 5개이고 발가락이 5개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아이가 초록색 똥을 쌌을때, 이 똥은 무려 이름이 있는 똥이고 (태변) 그리고 초록색이라면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안심을 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분유를 먹였을때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이 다 있는것 아니겠냐며, 굳이 압타밀을 사서 먹였고 압타밀을 먹은 아이가 구수한 빵가루 냄새가 나는 황금똥을 쌌을때 몇년전에 샀던 주식이 마이너스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본전에 왔을때의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을 하루에 한번씩, 두번씩 느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구는 커녕 대한민국을 구하는것도 아니면서 늘 바쁜 남편이랑 야구장 한번 가기가 너무 치사했는데 아이랑 야구복을 맞춰입고 퇴근해서 어린이집에서 만나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야구장에가는 설렘을 글로 어떻게 표현할까. 티켓을 보여주고 야구장에 들어가 파란하늘에 초록색 잔디가 펼쳐진, 뻥 뚤린 야구장을 보면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우와, 야구장이다" 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생활비 한번 주기 힘들면 휴가라도 마음껏 써야하는데 그마저도 늘 눈치보느라 못쓰는, 하지만 그런거 가지고 싸우면 나만 손해고 남편 기죽이는 일이니까 말도 못하는, 그런 대단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랑은 일주일 이상 휴가 간 적도 없거니와 일정을 맞추다가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가고 말지라는 소리부터 나오는데 나의 모든 일정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맞춰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언젠가는 얘도 나보다 친구를 더 찾고, 우리보다 여자친구를 더 찾는 나이가 될테니 그 전에는 많이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2월에 휴가내고 엄마랑 방콕갈래?"

"응"


아무런 질문없이 "응"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얘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고 얘가 나를 아무런 조건없이 믿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누군가 나를 아무런 조건없이 믿어준다는 사실은 살면서 큰 힘이 된다. 


어렸을때 엄마와 아빠에게 받았던 사랑, 그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 못한것에 대한 후회를 아이를 키우면서 곱씹게 된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 아빠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십수년전 엄마, 아빠도 느꼈던 감정들과 같다는 사실만으로 엄마, 아빠와 공감대가 생긴것만 같고 그래서 기쁘고 감사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아이였을때의 과거를 추억할 수 있어서 따뜻하고, 힘들때도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다 해내는 지금의 나를 응원해주는것 같아서 힘이 나고,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따로, 또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경이롭다. 


의무실에서 나와서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직도 이런 것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어색했던, 하지만 너무나 기대했던, 오랑우탄과 사진을 찍었다. 

오랑우탄이 어깨에 손도 올려주고 우리애한테 기대어 눕기도 했다.

누런니를 드러내며 뽀뽀도 해줬다.

오랑우탄이랑 사진을 찍고 아기호랑이에게 우유를 주는것도 해보겠냐고 물어봤더니 아이가 그건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돌고래 쇼를 봤다.

물개쇼도 봤다.

쇼를 보는 방청객들은 즐거웠다. 나도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묘하게 불편했다. 


그리고 당근을 사서 기린을 보러 갔다. Ton이 당근을 여러조각으로 더 쪼갰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한번이라도 먹이를 더 먹여보라는 의미였다는걸 알기에.

막대기에 당근을 끼웠더니 기린들이 먹으러 달려들었다. 기린의 속눈썹은 아주 길었으며 혀는 회색이었고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픈지 계속 당근을 먹으려고 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기린을 본적은 처음이었다. 너무나 신비로웠다. 한참을 여기서 먹이를 주면서 기린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를 갈지 궁금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Ton의 차를 타고 차에서 동물들을 구경하러 들어가는것이 마지막 코스였다. 더위에 힘들었는데 에어컨이 나오는 차안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니, 너무 편했다. Ton은 파파고 번역기를 열어서 몇가지 동물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별로 궁금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설명해주고 싶어하는 모습이 따뜻했다. 


호랑이도 봤고,

하마도 봤다.

물론 동물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1시간정도 걸렸나. 차가 엄청 막혔지만 Ton이 눈치작전을 잘 펼쳐서 빠르게 올 수 있었다. 헤어질때 팁을 줬는데 안받으려고 했다. 3번쯤 거절하길래 너한테 주는게 아니라 너의 아들에게 주는거라고 말했더니 받았다. 팁 안받는 택시 기사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자기가 커뮤니케이션을 못하고 아직 몇번 해보지 않아서 그랬던걸까? 


호텔방에 들어와서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먹었다. 별 대단한 피자는 아니었고 당연히 냉동피자였겠지만 아이가 너무 맛있게 먹었다. 

피자를 먹고 산책을 했다. 호텔 로비에 있는 개나리가 너무 이뻤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시암 캠핀스키의 수영장에서 잠깐 앉아서 동물원에서 어떤 동물을 봤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말이야, 엄마가 기절했을때 말이야.

무슨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아프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


"너 엄마가 그렇게 엎어져 있을때

엄마봤어? 

아니면 오랑우탄쇼 봤어?"


씨익 웃더니

"오랑우탄 쇼를 봤지.

엄마는 일어날 것이 분명하니까"


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아이가 귀여웠다. 엄마가 쓰러지거나 말거나 오랑우탄쇼를 봤겠지. 엄마가 오랑우탄이 복싱을 할때쯔음에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알려줬다. 아, 얘네가 나와서 복싱을 했구나. 그래도 오랑우탄쇼 보면서 곁눈질로 날 보긴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기린을 너무 좋아해서 기린문신을 한 친구가 생각나서 기린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줬다.


"ㅋ어디?"

"방콕"



얘를 마지막에 봤던게 우리애 50일때쯤이었던것 같다. 우리집에 와서 우리애를 보고 정말 작다고 이야기 하고 갔었지. 결혼하고 나니 나의 어린시절 남사친들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거니와 혹시라도 배우자들이 싫어하거나 불편해 할까봐 연락하기가 쉽지 않은데 기린을 보고 연락 안할 수가 없어서 연락을 했더니 방콕이라고 했다.


그리고 꽤나 가까운 거리였다.


"만날까?"


라고 이야기를 하고 일단 긴 하루를 무사하게 보낸 우리는 깔끔하게 청소된 호텔방에서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운 하얀색 침구속으로 뛰어 들어 잠을 청했다.


긴 하루였고 별일이 다 있었던 하루였지만 결국에는 호텔에 돌아와서 침대에 쏙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고 안심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자고 만날까 말까는 내일이야기 하기로 했다. 일단 푹자자. 우리 둘다 푹 잘 잘 자격은 충분하니까.


사랑해,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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