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겨울방학 그리고 방콕 (마지막편)
제가 곧 안식휴가를 가게되어 아마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비행기에 있을 예정입니다. 연재 미리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
마지막날 조식은 아이를 설득해서 바깥에 앉았다. 음식을 가져오는 동선이 조금 귀찮긴 했고 살짝 더웠지만 좋았다.
그 동안 먹어보지 못한 메뉴도 시켜보았다. 따뜻한 국물, 정말 오랜만인 느낌.
마지막 조식까지 맛있게 잘 먹고 방에 들어와서 나는 짐을 싸고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이번 여행 어땠어?"
"편지로 써줄께"
편지에는 {엄마 바보} 라는 글자와 함께 {재미있다}라는 귀여운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짐을 대충 싸두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겼고 남은 시간동안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시암 캠핀스키는 가족단위로 많이 오는것 같았는데 아이랑 14번의 해외여행을 해본 (최근에 출입국 증명서를 떼어보고 무려 14번의 해외여행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시선으로는 아이랑 물놀이 하기 좋은 호텔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장이 매우 단조롭고 수영장과 연결되는 방들이 배치되어있어서 약간 송구스럽다고 해야할까. 수영장에서 마지막으로 샌드위치를 사먹고 수영을 마저했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아이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자세히봐야 내가 보이더군.
호텔로비에서 직원에게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했다. 너와 나의 겨울방학의 기록.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는 하늘이 참 신묘했다.
공항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갔다.
난생처음 타보는 프레스티지석이라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이용했지만, 특히 스시가. 참 맛이 없었다.
이제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이랑 영상통화도 했지.
"이불 빨래 했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두번째 이야기 할때부터 말 끝마다 가시가 돋아있는 남편의 마음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지지난주에 했는데 왜 또 해야하지?"
라는 말에
"어제 밥을 먹었는데 오늘 왜 또 밥을 먹지?"
라는 말로 꼽을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기 싫다는걸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지지난주에 이불빨래를 한것도 너가 아니라 나였단다. ^^
착석을 했다.
자리앞에 있던 잡지를 보고 파리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얘랑 같이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6시간이 넘는 비행끝에 모든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바로 시댁에 가자는 말에 일단 집에 가서 여행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가자고 했다고 화를 내는 너, 왜 화가 나는지 이해해 줄 수 없는 나.
시댁을 갔다가 친정도 갔고 그렇게 첫 겨울방학의 끝은 명절과 함께 마무리 했다.
나랑 내 동생은 곰국을 참 좋아한다. 엄마랑 아빠가 우리가 곰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어린시절 독일에 살때의 일이었다. 엄마말로는 독일사람들은 소뼈를 먹을 줄 몰라서 버린다고 했고, 그래서 버리는 소뼈를 받아서 곰국을 꽤 자주 끓여주셨다고 했다. 사연은 그러했지만 나와 내 동생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곰국. 엄마가 밤새 WMF 제일 큰 크기의 압력솥에 곰국을 끓이던 무수한 시간들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윤기가 없이 날라가는 알량미(라고 불렀던것 같다)에 먹어도 곰국은 맛있었다. 요거트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먹었던것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단백질도 같이 먹어야 한다고 그렇게 섞어서 먹었지. 슈투트가르트의 길거리를 다 같이 걷다가 작은 부스에서 파는, 버터향이 그득한, 그리고 소금 알갱이가 붙어있는, 프레젤을 사먹었던 일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기전에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우겨서 발래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발레 스튜디오 앞에 있던 작은 자판기에서 팔던 나무젓가락보다 조금 더 굵고 조금 더 짧은 쌀라미를 뽑아먹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무수히 많은 일상들이 쌓이고 쌓여 추억이 되고 후회가 되고 미래에 기대가 되고 결국 현실의 내가 된다. 어릴때는 뭐든지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아주 큰 태산같았고 내가 원하면 다 해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과연 나는 저런 태산같은 믿음을 주고 있는지 매일 반문하게 된다. 자신이 없다. 내맘같이 않을때도 많고 그럴때 오은영박사님의 {부모는 최소한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안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내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인지 자신이 없다. 나도 사람인데,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화가 나는 감정을, 짜증나고 답답한 감정을 어찌 매 순간 한번 더 생각하고 꾹꾹 누를 수 있겠는가. 나도 내 마음이 있는데.
어린이집에 다닐때에는 방학이 3일밖에 없어서 아이에게 방학이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다. 4주간의 여름방학동안은 아침 7시 30분에 셔틀을 타고 영어캠프를 갔다. 영어가 목적이 아니었고 아침 7시 30분이 목적이었다. 맞다, 내가 일할 시간을 확보하는것이 목적이었다. 후회하지도 않고 그 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달라질것은 없다.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는걸 얼르고 달래서 보냈다. 막상가면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왜 가기 싫어하는지 알수가 없었는데 한참뒤에 "아침 일찍, 선생님보다 먼저 가는게 싫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업이 문제가 아니라 남들보다 일찍 가는 상황이 싫었던 것. 그래도 어찌어찌 4주간의 여름방학을 잘 보냈는데 2달짜리 겨울방학은 참 어려웠던것 같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커녕 2달전부터 어떻게 해야 아침에 출근을 할 수 있을지, 퇴근하고 난 이후에 아이가 집에 오도록 일정을 짤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만 했다. 그렇게 첫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나의 어린시절 방학과는 꽤나 다른 방학을 보내야 했다. 미안한 마음도 순간 들었다. 하지만 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나도 애쓰고 있다고 생색내기 바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시간도 꽤 많았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고군분투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줄 필요도 없다. 알아준다고 해도 달라지는 상황은 없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른척하면서 우연히 마주쳤을때
"요즘 많이 정신 없죠?"
"너무 급할때는 이야기 해요,
일정 맞으면 내가 어찌 해볼께요"
라고 담백하게 건내는 아이친구 어머님의 말한마디가
"도와준데도 지랄옘병이고, 고마. 그냥 날짜를 말해라. 내가 와서 도와주면 될꺼 아이가"
라고 이야기 하는 엄마의 말한마디가
"자리 비웠을때 누가 찾으면 회의갔다고 이야기 해줄께요"
라고 말해주는 동료의 말한마디가 그렇게 큰 힘이 되었다.
알아준다고 해도 달라지는 상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티안나게 알아줬다. 그랬던것 같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걸 우린 다 무언속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렇게 첫 겨울 방학이 끝났다. 나중에 아이의 첫 겨울방학을 이야기 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면 우린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Zoey라는 친구를 만났던것? 기린을 봤던것? 아마도 엄마가 회사갔다가 점심 챙겨주고 다시 출근했던 일은 기억하지 않을것 같다. 그런 일을 방학이라는 단어와 함께 엮어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재택근무가 사라지기전 마지막 재택근무를 앞둔 전날 밤이었다. 자기전에 아이가
"엄마, 이제는 아침에 엄마가 항상 없는거지? 재택근무는 앞으로 없는거지?"
라고 물어봤다.
"응, 내일은 엄마가 아침에 있을건데 앞으론 엄마가 아침에 있을일은 없을거야"
"알겠어. 재택근무 좋은데 왜 없어지는거지"
"엄마가 아침에 있는게 좋아?"
"엄마가 아침에 있는것도 좋고 엄마가 학교 끝나고 데리러 와주는것도 좋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고 아이는 2학년이 되었다. 딱 한번 하교를 한 날이 있었는데 저 멀리서 우리아이가 서있는 나를 보고 두팔을 벌리고 뛰어오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수학숙제하라고 하면 일단 눈부터 치켜뜨고 "싫어!!!" 라고 소리지르고 울먹거리는 모습은 온데간데.
"엄마가 오늘은 하교 하러 갈께"
"엄마, 그럼 돌봄 선생님한테 미리 연락해줘. 나 오늘 돌봄 안간다고"
"어, 알겠어"
"그리고 축구공을 챙겨와줘. 나 1학년때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친구들이랑 만날 수 있어?"
"모르지, 그래도 축구공 꼭 챙겨와줘"
"응, 핸드폰 잘 챙겨가고"
"엄마가 하교하러 오는데 핸드폰 필요없지"
"어? 엄마는 너의 믿는 구석이구나?"
"응, 이따봐"
아침에 일어났을때 내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학교 끝났을때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사실이 행복한 너.
그 다음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 했다. 올해 우리애 여름방학기간 꽉꽉 채워서 안식휴가를 다녀올 예정이고 겨울방학기간에는 2달 휴직을 내겠다고.
누군가 나를 이렇게 믿어준다면, 나 또한 그 믿음에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민폐가 된다던지 눈치를 본다던지 하는 감정들이 중요할까? 지금 당장 내가 죽는다면 민폐가 될까봐 눈치봤던 시간들이 후회되지 않을까? 단 10분의 추억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 10분의 여운은 평생가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자라고 성장한다.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도 그렇게 한 걸음씩 어른이 되어가는것 같다. 그렇게 나도 다짐해본다. 2학년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많은 경험을 해보기로, 오롯히 너에게 나의 시간을 집중하기로. 나중에 너가 나랑 안놀아줄때 이 기록들을 읽으면서 웃어야겠다.
그러나 저러나 결론적으로 참 행복한 겨울방학이었다. 첫 겨울방학 그리고 방콕, 너무 좋았어. 너도 좋았길. 올해 방학들 기대해보자.
- 끝.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의 끝과 함께 여름방학동안 안식휴가를 맞이하여 아이와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댓글이 없어 어떤 마음으로 읽으셨을지는 모르지만 쓰는 내내 미소도 지어지고 눈물도 그렁거리고 비장해지기도 했다가 행복해지기도 했어요.
다음 연재도 쓸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연재마무리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