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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시모프 May 23. 2022

프리랜서가 모인 외인부대

외인부대를 꾸려서 작업하려거든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 지금 결혼을 하신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프리랜서들은 회사라는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아서 홀로 선 경우이거나, 이직이나 새 사업을 시작하기 전 잠시 쉬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프리랜서 개인은 회사의 팀장들에게 다뤄지기는 쉽지만, 각각 프리랜서들 여럿이 서로 모여서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두 달 단위의 짧은 프로젝트라면 무난히 해내겠지만, 6개월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다. 서로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 아니던가.


그동안 프리랜서로 여러 군데 작업을 하면서, 이젠 필요한 작업에 필요한 프리랜서를 구할 수 있는 인재 풀이 좀 생겼었다. 그래서 조금 큰 일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은 대형 출판사에서 교육용 자료를 만드는 일로 꽤나 큰 프로젝트였다. 나 혼자 할 수는 없는 일이고, 필요한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그동안 필요에 의해서 몇몇과 협업을 해왔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회의를 해 보니, 필요한 인원은 대략 2명이었다. 프로그래머 두 명. 주변 사람들에게 손이 빠른 전문가들로 구해서, 이력서를 보고 뽑았다. 그리고 내가 그 외인부대(?)의 팀장이므로, 모이는 첫날 회의를 하고 파이팅 하자고 회식도 가졌다.


하지만 나와 일해본 적 없이, 그 사람의 작업 스타일도 모른 채로 협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작업이 늦거나 피드백이 생겨서 밀리고 질책을 받게 된다면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 내 밑에 팀원이 작업이 늦는 것으로 내가 질책을 받는 건 많이 힘들었다. 나는 위에서 쏟아지는 험한 말을 받아들여서, 부드럽게 밑에 팀원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러면 팀원은 툴툴거리면서 변명을 하고, 나는 그걸 또 부드럽게 위에 전달해야 했다. 내가 일했던 직장들이 고압적인 상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험한 말을 들으면 작업이 더 힘들다는 걸 안다. 그래서 최대한 부드럽게 전달하려 애썼다.


그런데 이 분이 점점 선을 넘는 거다.


자신이 실수해서 말도 안 되는 오류가 잔뜩 났고, 난 그 일로 눈에 핏줄까지 세우는 부장에게 귀가 떨어지게 소리를 들었는데 이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아, 그럴 수 있죠. 내일까지 고쳐볼게요. 할 일이 너무 많네요."라면서 오히려 나에게 툴툴거리는 거다. 난 최대한 팀원들에게 잘해준다고, 받는 돈을 내가 더 많이 갖는 것도 아니고 투명하게 공개하고 3등분 했는데, 힘든 거 아니까 좋은 말만 했는데, 좀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프리랜서로서가 아니라, 팀장으로서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냥 호구되겠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 본사에까지 가서 회의를 하고 돌아와서 일정이 안 맞아서 호통을 듣고, 언제까지 해야 할 부분을 정리하고 보고하고 나서 팀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자 그분에게서 돌아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저 다음 주에 결혼해서 신혼여행 가야 해서요. 한 주 더 미뤄야 할 것 같아요."


난 정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처음 회의를 할 때, 일정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좀 밀리긴 했어도 아직 그 일정 안이었다. 그런데, 지금 3/4가 지난 시점에, 바로 다음 주에 결혼을 한다고? 지금까지 말도 없이?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말했다면 이 사람하고 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이 사람은 지금, 내가 준 선입금이 결혼자금이었던 셈이다. 지금 그걸로 똥줄 타면서 일하고 있는데, 본인은 신혼여행 가겠다고..? 그것도 해외 어디로 가는 거였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어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너무나 화가 나서 다다다 쏘아붙였다. 그동안 쌓인 것까지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체 채팅으로 하고 있었는데, 너무 심하다 싶었는지 다른 한 분이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너무 황당하고 힘들었다. 어쨌든 결혼을 하지 말라 할 수도 없고, 대충 마무리하고 이 황당한 상황을 부장에게 보고했다. 방금 전까지 나에게 호통치던 부장도, 얼마나 황당했는지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긴 침묵이란.

... 이것들이.. 약을 팔아?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아는지, 부장은 별말 없이 본사에는 자신이 다시 말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정을 조절하고, 팀원과도 그럭저럭 다시 좋게 마무리 지었다. 프로 아닌가. 일은 끝내야 할 것 아닌가. 아직 두 달은 더 일해야 하는데. 그제야 나보고 결혼식에 오라고 했다. 난 그때 당신 없이 일하고 있어야 한다고....




중간관리자라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특히나 나처럼 프리랜서로 혼자 일해온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프리랜서는 대부분 말단 작업자이기 때문이다. 회사라면, 내 부하직원이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해 대체할 사람도 있고 내가 그렇게 큰 책임을 지진 않지만, 프리랜서는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때론 그것들은 위약금으로 해결되지 않는 책임이 돌아오기도 한다.


프리랜서로 장기적인 팀을 꾸려 팀장이나 중간관리자를 하려면, 좀 오래 알고 지내서 서로의 스타일이나 일상을 좀 아는 사람과 하는 게 안전하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 황당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지만, 일이 바쁘다 보면 계약서 없이 채팅이나 메일로 주고받으며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러다 잠수라도 타면 정말 곤란해진다. 작업 구인을 보면 1인 작업자인 프리랜서를 고용하지 않고 꼭 업체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개념 없는 프리랜서들의 행태에 크게 데인 경우들이다. 서로 모르는 프리랜서들끼리 모이는 건, 굉장히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검증되지 않은 프리랜서는, 조금 위험한 존재라는 걸 프리랜서인 내가 뒤늦게 눈치챘다. 난 진짜 열심히 일했으니까.



아무튼 그 작업은 나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내상을 남겼지만, 작업은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원래는 끝나면 또 회식을 하며 회포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솔직히 두 번 다시 팀원들을 보고 싶지 않아서 바이바이 했다. 일만 마무리되었으면 됐지 뭐. 그리고 다시 소소한 작업들을 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 일이 들어왔다. 그런데, 좀 황당한 주문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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