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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Nov 27. 2021

퇴직 후 이모저모 - 14

퇴직에서 퇴직하자 - 1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정신으로 살든 세월은 참 무섭게 간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니 벌써 60년이 지났다.

지나 온 세월이야 60년이라는 시간에 맞게 더디 흘렀고 돌아보면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60의 나이가 되어 있다.

이러다 언젠가는 눈 뜨지 못하는 아침도 오겠지.

어릴 적에는 그날이 내겐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쩌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는 반드시 올 거라고 믿게 되었다.

아니, 반드시 와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도....)


다음 달이면 대단히 명예롭게(?) 퇴직한 지 만 3년이다.

준비하지 못한 탓에, 현명하지 못한 탓에 꾸며진 허울뿐인 명예는 퇴직한 날로 사라졌다.

정년퇴직을 3년 남기고 퇴직한 거니 퇴직하지 않았어도 이젠 끝날 시점이 된 거다.

3년의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어찌 흘러갔는지 기억이 벌써 가물거린다.

그럴만한 일도 아니지만 굳이 돌아보자면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선택에 대한 분노, 타인에 대한 책임 전가, 자기 위로, 자기 방어, 수용, 순응...

그것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의 감정에 따라 마구 뒤엉켜 다녔다.

사실 생각이나 감정이란 건 내가 만들고 없애는 게 아니다 보니 오로지 피해자는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누가 말한들 능력 밖의 일이다.


현업에 매여 있지 않다 보니 특별히 바쁠 일도 없어 핸드폰은 이미 캔디폰이다.

예전 같으면 보지도 않고 삭제하고 수신 차단했을 광고성 문자 조차 반갑다.

그 덕에 온라인 쇼핑 지출액이 제법 늘었다.

핸드폰이 그러니 몸도 덩달아 휴업 상태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핸드폰 일정표에 이것저것 적어 놓긴 하지만 소파에 한 번 누우면 후딱 한나절이 지나갔고 스스로에게 미안한 탓에 핑계만 늘었다.

그런 일상은 얼마 동안은 습관으로 굳었다.

(어찌 된 일이 좋은 쪽으로 개선하는 습관은 21일, 66일, 100일이 걸린다고들 말하는데 이런 나쁜 습관들은 단 하루, 단 한 번이면 충분한지 그 이치가 참 짓궂다.)

그러나 한 번 널브러지면 마냥 그러고 있을 육체와는 달리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은 늘 불난 호떡집이었다.

쉬는 몸 따라 같이 늘어졌으면 좋으련만 내 그릇의 여유는 간장 종지가 태평양이다.

욕심은 정작 내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타인의 호사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덧칠한다.

(마치 그 호사가 내 것이었던 양)

팔딱거린다고 욕심이 채워지는 것도 아닌데 느긋하게 있는 건 어렵다.

해서 급한 마음 따라 여기저기 기웃대며 아르바이트부터 지금의 프리랜서 일까지 대여섯 개의 일자리를 잠깐이든 길게든 체험해봤다.(말이 좋아 프리랜서고 컨설팅 업무지 아직은 그리 돈이 되지는 않는다. 만 1년이 된 지금 수입은 3천 정도니 아직은 욕심이라는 밑 빠진 동아리에 물방울 수준이다. 물론 그 또한 내 탓이다. 하루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평균 3~4시간 정도니 오히려 가성비 갑이려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효율적으로 집중력 있게 일하며 항상 공부를 게을리 않는 주변 동료들은 직장인들의 3~4배 수입을 올린다. 무슨 일이든 돈이 되고 안 되고는 내게 달려 있다)

어쨌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3년을 보냈다.


지금 원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다.

그런데 막연한 희망만 있지 구체적 자신은 없다.

그러니 늘 힘들다.  

바람이나 욕심조차 없으면 차라리 그게 복이다.

하지만 내게는 오로지 그것만 남아 있다.

그러니 이 무슨 애달픈 사연인가.

욕심은 남아있고 이룰 재주는 없고, 움직일 의지도 사라져 가니 정신은 더더욱 고통이다.

오자서가 초평왕 시신에 채찍질하며 변명한 '일모도원'이 내게 딱 맞는 이때 그나마 만만한 건 책이다.

책장을 펴면 활자 하나하나가 내게 '할 수 있다'라며 힘을 넣어 준다.

당장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가라고 날 몰아 댄다.

마약이다.

그럴듯한 기대감이 차오른다.

할 수 있을 거란 중얼거림으로 가득하다.

책장을 덮고 주변을 보면 그러나 변함이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니까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그리고 있다.

위로받으려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좋아지라는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힐링을 위해 읽고 있다.

욕심을 채우는 실행은 없이 결과만 원했다.

냉정히 말하면 태생이 그렇고, 게으른 DNA가 내 것이란 말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땐 왜 그랬을까,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라며 후회할 장면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럴 일만 내게 떠올려 주는 생각의 메커니즘이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사람과의 만남이나 업무 처리 등 수많은 선택에 대한 후회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했다면 달라졌을 텐데...

그것만이 아니라 반사적인 말과 행동의 습관은 또 얼마나 많은 후회를 낳았던가.

다시 돌아간다면...

불가능하기에 인류 공통의 한탄에 반드시 등장하는 '다시 돌아간다면...'이라는 아쉬움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고, 나나 너나 그들이나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그 후회를 덮거나 없애거나 바꿀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앞으로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은 분명히 다시, 여러 번 재현된다.

그런데 대응하는 방식은 그때와 달라질 수 없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하며 후회했고 그러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같은 상황이 지금 다시 놓인다면 다시 똑같이 반복한다..

상대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대답할 걸...이라고 후회해도 같은 상황이 되면 내 대답은 똑같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후회는 뭐하러 한 걸까?

개인에게나 인류에게나 역사는 반복되는 게 필연일까?

후회를 후회로 끝내서 인가?

철저한 분석과 검토를 거친 진정한 반성이 없어서?

그저 반짝하고 그때가 떠올랐고, 그래서 역시 반짝 후회하고 아쉬워해서 다시 같은 대처가 반복되는 건가?

모든 사랑이 첫사랑인 것처럼, 모든 상황 또한 때와 장소, 사람이 바뀌기에 비슷하지만 늘 처음이다.

그래서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다짐은 물거품이 된다.

어쩌면 조물주의 의도된 계산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때마다 개선이 가능한 인간을 허용하면 조만간 조물주를 뛰어넘을 거라서 쉽게 바꾸기 어려운 성격과 망각의 재능을 넘치게 허락한 거다.

그걸 숨기기 위해 인간에게 박약한 의지라고 자책하는 굴레를 씌우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뒤집어쓴 명예 퇴직자의 굴레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다.

무엇을 위해서 이리도 아팠고, 무엇 때문에 이리도 두려워했으며, 무엇을 하려고 이리도 버둥거렸는가.

이 정도면 됐다.

이만큼 아팠으면 됐다.

3년을 버티느라 힘들었을 나를 감싸주자.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 냈던 나를 이해하자.

이렇게라도 버틴 안쓰러운 나를 위로하자.

시기와 질투, 무한의 욕망에 사로잡혀 거기에 이르지 못한 나를 멸시하고 질책한 나를 용서하자.

달라진 건 없어도 이쯤에서 그만하자.

앞으로도 달라질 건 딱히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퇴직에서 퇴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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