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언 Mar 27. 2022

퇴직 후 이모저모 - 15

퇴직에서 드디어 퇴직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령한 이 세상에 다시 봄이 오고 있다.

거실 창 너머로 노란 산수유가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강나루 긴 언덕에 풀빛이 짙어 올' 봄비마저 내리니 오는 봄을 막을 도리가 없다.

봄도 마스크 쓰고 백신 3차까지 다 맞고 오는 거겠지.

영화 '우주전쟁'에선 지구의 바이러스가 우주인을 물리치는데 이 놈의 코로나는 우주인은 커녕 지들 숙주부터 없앨 모양이다.

하긴 언제 우리가 함께 사는 다른 생명들을 식구 취급이나 했는가, 그저 소비와 박멸의 대상이었을 뿐이지.


명예퇴직한 지 만으로 3년 하고도 3개월이 되어간다.

정년을 3년 남긴 시점에서 퇴직한 거였으니 회사에 남아 있었다 해도 정년퇴직할 시점이 넘었다.

눈 떠보니 어느새 환갑의 나이가 된 것처럼 3년이라는 꽤 긴 시간도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치열한 고민 끝의 선택에 후회도 컸고, 막상 나와 보니 이루어 놓은 건 고사하고 준비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과 자책에 지독히도 고통스러웠다.

30년의 직장생활을 별다른 생각 없이 대충 흘려보냈다는 것을 나와서야 깨달은 것과, 그 오랜 시간 스쳐간 수많은 인연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이 또한 후회스러웠다.

후회로 인한 고통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나와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아니 바뀔 수 없는 나는 스스로를 다시 그 수렁에 빠트리곤 했다.

어쩌면 그 후회와 고통은 자기 연민의 싸구려 도구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3년 명퇴 이후를 어찌 보냈든 시간은 흘러 정년도 이미 지난 시점에 왔다.

그때 선택을 달리해서 직장 생활을 3년 더 했다면 어떤 이득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 누가 알겠는가, '만약~' 이후의 일들이 어찌 흘러 가는지를...

그래도 대강 짐작은 된다.

명퇴가 아닌 잔류를 선택했다면 남은 3년 동안 무지와 건방만 계속 쌓았겠지.

명퇴 이후의 3년은 생을 3년 더 연장해 준 거다. 3년을 앞당겨 살며 무언가를 알게 해 준 거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난 3년을 지금부터 살며 고통과 후회를 시작해야 하니 그만큼의 삶이 줄어들 뻔했다.

누군가 그랬다. 시간의 공력을 믿는다고.

지난 3년이 그냥 헛된 게 아니라 그 시간만큼 내공이 쌓이는 거였다.


뭐 나 하나 그러든 말든 역시 세상은 제 나름대로 흘러갔다.


큰 딸아이는 착한 심성(요즘 세상에 딱히 쓸모가 없는)을 가진 동갑내기 사위와 결혼했다.

홀가분하겠다 여기저기에서 건네는 축하의 말들에, 고맙다며 경황없이 건성으로 대답하긴 했지만 감정의 뒤섞임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두 팔 안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아기였는데, 곁에 없는 줄 알고 식당에서 놓고 나올 뻔한 적도 있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자라면서 속도 썩이고 이러저러한 갈등도 만들어 주던 아이였는데 벌써 이리 컸다.

경제적으로 도움 줄 수 없는 처지이기에 그저 아이들끼리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에 미안한 마음으로 보기만 한 탓에 마음 편히 축하를 받을 처지는 아니었다.

막상 끝나고 나니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매일 주고받는 안부 전화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캐치하려고 곤두세우는 촉각이 꽤나 피곤한 일이 되었다.

밝으면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어두우면 혹여 둘이 다투기라도 했을까 노심초사다.

설령 다투었다고 해도 며칠 뒤면 다시 밝게 돌아오지만 그때까지 가슴에 들어앉은 돌덩이는 어쩔 수 없이 온전히 내 몫이다.

안부 전화하지 않아도 부모의 사랑은 변함없으니 제발 전화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보고 듣지 못하는 그리움이 크긴 하지만 전화기 건네받을 때의 노심초사가 훨씬 버겁다.

그렇지만 행복하기만 한 삶이 세상에 어디 있으며, 있다 해도 그게 행복이라고 느껴지겠는가.


작은 딸아이는 노력과 행운이 잘 어우러진 덕에 원하는 대학에,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4년간의 학비 걱정을 덜어 주었다

그뿐이랴? 여기저기 사이트에 올려서 과외도 하며 용돈도 벌고 있다.(어쩌면 나보다 수입이 많을지도...ㅠㅠ)

통장에 조금씩 돈이 불어가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엄마 아빠 호강시켜주기 위해서'라는 평소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증명하려는 듯 무언가 말만 할라치면 "내가 사줄까?"라고 한다.(그런 건 허락받지 않고 사주는 건데 그것까진 모르나 보다ㅎㅎㅎ)

그러라고 하자니 앵벌이 시키는 아비가 될까 봐 극구 사양했다.

몇몇 주변 사람은 나를 볼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이 부러워하는 나는 정작 아이가 부러우니, 이 불일치는 여전히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증이겠다.

많든 적든, 크든 작든 내가 가진 것의 비교 기준은 훨씬 위의 있는 사람들의 그것에 놓여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힘든 일이다.


우리 집에선 매년 12월 마지막 날 밤이면 식구들이 모여서 자그마한 파티를 한다.

자정이 한 시간쯤 남으면 작년 이맘때 적은 새해 목표를 개봉하고 달성 여부를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게 끝나면 곧 다가 올 새해의 목표를 종이에 적어서 다 함께 편지봉투에 넣고 밀봉해서 잘 보관한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했다.

밀봉해서 보관했더니 그냥 편하게 잊고 1년을 보낸다는 느낌이 들어서 to do list로 바꿨다.

매일 또는 주나 월 단위의 할 일을 3~4개 정하고 그걸 엑셀 표로 만들어 벽에 붙이고 실행 여부에 따라 O, X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큰 아이는 가정을 따로 꾸렸으니 동참자는 아내와 작은 아이, 이렇게 셋이다.

그걸 벽에 붙여 놓고 매일 수십 번씩 보고 있자니 시어머니도 이런 시어머니가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O, X가 드러나니 특히 작은 아이에게 눈치가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X표가 있는 날이면 한마디 툭 내뱉는다.

요새 아이들 말로 '꼽'을 주는 거다.

내가 내 무덤을 팠지.

여기서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고, 남은 생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며 나를 몰아붙이려고 방법을 바꾼 건데 생각과는 달리 내 능력에 부치는 거다.

20년이 넘게 지속된 수면 장애로 인한 기억력 감퇴는 이미 치매 수준이고, 1층에서 2층까지의 계단만 올라도 헐떡거리는 호흡은 주변의 우려를 낳은 지 또한 오래다.

후배의 강력한 추천으로 3.5km 남짓되는 공원을 한 바퀴 뛰고는 2~3일 몸살을 겪는 체력이다.

학교 교육이 지향하는 '지, 덕, 체'의 세 가지 항목이 이제야 균형을 갖췄다.

'덕'이야 애초부터 없었던 항목이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그나마 있던 '지'는 무언가 검색하려 폰을 집어 드는 순간 까먹는 수준으로 내려왔으니 말해 무엇할 것이며, 뭐라도 해보려는 의지와 실행력의 바탕이 되는 '체력'은 팔순 노인과 다를 바 없으니 지덕체가 모두 바닥에 내려오는 것으로 균형을 갖추게 됐다.

그런 상태인 내가 to do list 점검표를 거실 벽에 붙이는 건 대단한 오만이었다.

뭔가 시도하려는 욕심이라도 없었으면 좋으련만 능력은 다 떠나보내고 오직 욕심만 남겨졌으니 거 참 답답한 일일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무엇이고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모든 걱정의 원인은 욕심에서 오는 헛된 생각임을 깨닫고 내 안에 아직 남아있을 그 무언가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끝없는 욕망에 여전히 사로잡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시기와 질투로 마무리할 것인지.

이제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찰나인 인생.

이 짧은 시간에 대체 나는 무엇에 얽매여 헤어 나오질 못했는가.

어찌 마흔에 이르렀어야 할 불혹이 무려 20년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까마득한가.

대체 나는 왜 나뭇잎만 한 작은 배 위에서 크고 작은 유혹의 물결에 어지럽게 흔들리고만 있었는가.

앉아 있지도 못한 채 뻣뻣이 서서 유혹의 바람에 맞서고 있었으니...

어쩌면 맞선 것이 아니라 피하지 않고 즐긴 게 아닐까.

그리고 이제 와서 뭐했냐며 핑계를 대려 한다.


이제라도 현명한 체 해봐야겠다.

내 삶도 나쁘지 않은 거라고, 일거리 찾으며 지금도 발발거리는 중인 내 삶도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하자.

큰 아이는 해치웠고(?), 나름 똘똘하게 자기 위치 찾아가는 작은 아이도 있는 데다가 세상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아내까지 다행히(?) 곁에 있으니 실패한 삶이 아닌 걸 깨닫자.

이제라도 의식을 전환하자.

얼마 남았을지 모를 남은 시간 동안 욕심을 버리자.

욕심에 끝이 없다는 건 눈과 귀에 박힌 못으로도 알고 경험으로도 충분히 안다.

원하는 대학에 수석 합격한 작은 아이의 핸드폰 보는 모습이 거슬려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며 잔소리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채울 수 없는, 채워서도 안 되는 욕심으로 삶을 마감할 수는 없다.

삶의 의미가 어쩌고 저쩌고여서가 아니라 내가 괴롭다.

그러니 아내의 말처럼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하나씩 내려놓기로 하자.

그렇다고 해탈한 부처가 될 수는 없다.

그럴 그릇도 아니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

무위도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세상과 등을 지자는 의미 또한 아니다.

그럴 처지도 아니고, 그러면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모든 걸 다 내려 놓고 잉여인간으로 남은 시간 보내긴 싫다.


이제는 아쉽지만 하나씩 버리자.

지나친 욕심을 찾아내서 분에 겹다고 깨닫자.

매 끼니마다 푸아그라, 트러플, 캐비어를 먹을 수는 없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의 삶이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설령 늘 행복하더라도 내 몫을 빼앗아 간 건 아니라고 생각하자.

지금처럼만 일하면 도시민 평균 수입은 올릴 수 있으니 좀 더 집중해서 한발자국만 더 뛰자.

지금처럼 주말마다 식구들과 조용한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쓰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리자.

이거라도 할 수 있을 건강을 유지하자.

이렇게 지내다 보면 조금은 다른, 조금은 더 행복해질 삶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내 삶도 전혀 계획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곳에 와 있는데 앞으로의 삶이라고 어찌 내 걱정대로만 되겠는가.

살아보니 욕심만 낸다고, 버둥거리기만 한다고 계획대로 되는 게 인생이 아니더라구.

이제 퇴직에서 퇴직하고 다른 삶에 취업하자.

오늘 난 퇴직에서 퇴직했다.

.




이전 14화 퇴직 후 이모저모 - 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