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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리 Jan 27. 2021

나는 아직 회사원이다

2020년의 Side Project, 나를 위한 행복 방정식

10대 뉴스를 글로 정리하기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2018년, 동물원 밖이 궁금해진 회사원

2019년, N잡러에게 필요한 것은 휴직


물론 그전에도 회사 워크숍이나 교육에서  비전 노트 작성, 사명과 목표 만들기 등의 작업을 했었지만,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나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처박아 두기 일쑤였다.


무엇이든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법. 내게는 10대 뉴스가 제격이었다. 심플하면서도 잊을만하면 다시 읽어 보고 동기 부여할 수 있었다. 간추린 뉴스로 지난 해가 자연스럽게 정리 도와주신 분들께는 메시지보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물론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듯 부작용도 있었다. 10대 뉴스 정리가 끝나고 의 뉴스를 그리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졌다. 레퍼토리는 다양해져서 좋았지만, 회사원으로서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스러웠다.



결국 고민은 근속 휴직으로 연결되었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졌다. 안정적인 도전과 휴식의 시간에는 회사라는 베이스캠프가 있었고, 새삼스럽게 회사 밖에 있을 때 회사가 더 고마웠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 19를 맞이했다. 예정되었던 많은 미팅과 모임이 취소되고 여행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복직할까..



휴직 기간에 할 수 있는 메뉴가 줄어들면서 복직도 심각하게 고려했다. 기존에 사업자들도 힘들어하는 시기에 회사원이 나와서 무엇인가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나 생각도 했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흘러 은퇴 후 정글에서 이런 일 또 겪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렇다면 한 살이라도 어린 지금 경험치를 더 쌓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끝에 1년 더 휴직을 연장했다. 렇게 코로나와 함께한 회사원의 휴직은 어땠을까. 코리의 세 번째 10대 뉴스로 2020년을 정리해 본다.



01 필리핀 두 달 살기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돌아보니 이 마지막 해외여행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새삼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온전히 아무것도 안 하고 두 달을 해외에서 쉴 수 있는 기회가 내 청춘에서 또 있을까. 저렴한 물가와 아이들의 현지 학교 등교만으로도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족함이 없었고, 뜨거운 동남아 태양 아래의 바비큐 파티와 바다 수영, 그리고 책과 함께한 휴식만으로도 2020년에서 꼽을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시간이었다.




02 비즈니스 모델 찾기


두 달 살기가 끝나고 2월 말 귀국을 하니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대부분의 강의와 행사중단되었다. 이때 복직을 잠깐 고민하기도 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또한 휴식의 기회? 정글의 위기 극복? 경험치로 고 싶었다.


그러다 3월 초 어느 날 저녁 식사 중에 일본 단기 사증 발급 제재 뉴스를 봤다. 일본 여행도 한 번 다녀올까 싶었는데, '이것도 어렵게 되었네'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 뉴스에 지금 누가 긴장하고 있을까(불편한 사람들은 누굴까)'생각해봤다.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 계속 머물고 싶은 외국인들이  몇 명이나 될까?


SNS에 체류자격 연장 사유서 작성을 도와준다는 글을 올리고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그렇게 한두 명씩 연장허가를 받고 다시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전화는 빗발쳤고 그렇게 코로나는 내게 의도하지 않았던 기회를 줬다.





03 비즈니스 확장


출입국에서 재미를 느끼고 나서 토지보상과 인증 대행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첫 번째 토지보상 계약은 경기도 어느 도시의 도로 확장 부지였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일단 계약을 위해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런 방문 영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이렇게 방문하면 신고할 거예요.



얼마나 목소리가 차가웠던지 얼굴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지금도 그 목소리는 생생하다. 하지만 돌아서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방금 그 말이 이 프로젝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고 다음 집의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그 인근의 소유주를 여럿 만고 그날 바로 3건의 계약을 따 낼 수 있었다.


사무실만 앉아 있던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04 카카오 페이지 연재


지난해  10대 뉴스에서 전했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이 카오페이지 연재 기회로 연결되었다. 당시에는 '내가 글로 상을 받다니'라며 감격했지만, 에디터님을 만나고 원고를 마감하는 과정은 또 다른 신선한 경험이었다. 필명이지만 카카오페이지에서 내 이름이 검색되고, 책이 나오면서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야릇한 감정이 느껴졌다.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교보문고에서 내 책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결론적으로는 거기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어떤가. 언젠가 또 다른 기회로 어느 해의 10대 뉴스를 장식할 수 있겠지. 종이책 출간은 그때를 위해 잠시 아껴 둔 것이라 생각하자.




05 나 자신을 위한 모임


코리 님 글쓰기 모임 해봐요. 심리학도요.



'나는 사람책을 읽기로 했다' 치맥 모임이 6차까지 진행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아이디어가 접수되었다. 이것저것 다 하고 싶었지만 비슷한 플랫폼이 이미 많기 때문에 굳이 내가 만들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코리 님, 제 생각은 달라요.
모임은 누가 진행하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이런 좋은 이야기로 동기 부여해주는 지인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특별한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내가 좋아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위해 다른 분들도 했으면 하는 것들을 모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심리학, 벽돌책, 영어, 투자, 그림, 글쓰기..


그래서 더 행복해졌을까? Couldn't be better!




06 애스커스(Askus) 홈페이지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페이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노션과 구글 설문지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지만, 좀 더 길게 보고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장기적으로 회사도 만들고 브랜딩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홈페이지 제작 전문 업체의 견적을 받고 엄청난 제작, 유지 비용에 외주용역은 바로 포기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라 일단 자체 제작을 결심하고 한 달에 2만 원, 웹호스팅 서비스에 가입했다. 썸네일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만들면서 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어느 정도 홈페이지가 완성되니 이름이 필요했다. 앞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들을 나열하고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애스커스 · Askus



모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또는 타인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호모애스커스(Homo Askus), 질문하는 인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스커스(Ask us)라는 의미도 포함시켰다. 당연히 지금은 아무도 관심 없고 누가 사용하지도 않겠지만 혹시 운이 좋아서 회사가 성장하게 될까 봐 상표 등록미리 신청했다. 몇 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07 새로운 교육 시장


코로나는 물러가지 않았지만 5월이 되면서 강의 시장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교육 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온라인 원격 강의



컨설팅 등 다른 일에 강의까지 쏟아지니 시간에 쫓겨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강의장까지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강의하는 새로운 문화는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모임을 랜선으로 운영했던 경험과 도구의 활용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삶을 살다 보면 지금 하는 일이 나중에 어떤 일과 연결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나는 운이 좋았다.




08 대학 계절학기 강의


강사님. 혹시 이런 강의 가능하신가요?
A대학 계절학기 과정인데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 과정을 넘어 녹화 강의도 증가했다. 다만 문제는 녹화 강의가 오프라인 강의와 유사할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수백 장의 대본을 먼저 완성하고 교수님의 컨펌을 받고 촬영을 시작했다. 대본 분량도 만만치 않아서 시간적인 부담은 가중되었고, 교수님의 피드백은 회사 임원들보다 까다로웠다. 촬영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자세로 몇 시간씩 진행되면서 어깨와 목이 점점 굳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다행히 촬영 첫날이 지나면서 노하우가 쌓이고, 납기가 다가오면서 교수님의 피드백도 약해졌다. 촬영 스태프들과도 점점 가까워지면서 현장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생겼다. 


이 경험도 나중에 그 무엇과 연결되겠지?




09 상품개발 패키징


언제부턴가 나만의 상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 주문된 상품을 보며 즐거워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럼 어떤 상품을 만들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귀농하신 분들의 사연을 들었다.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자녀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고민한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농사가 익숙해지면서 해가 갈수록 생산량도 늘어나니 이 부분을 해결하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그 길로 직접 농가를 방문하고, 포장을 맡아줄 OEM공장도 찾아갔다. 판매, 제조원가, 패키징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니 무엇인가 생산, 제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차라리 소싱 판매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도 뭐, 한번 해보면 어때!



상표는 무엇으로 할지, 포장은 얼마나 할지,  판매채널은 어떻게 할지 등등 고민 투성이었다.


와.. 사업이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새삼 다시 한번 감사했다. 회사원이라서 참 다행이다.




10 법인등록


사업 소득이 계속 발생하고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다 보니 개인 사업자가 자연스럽게 생겼지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법인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 졌다. 회사의 목적, 이사, 정관 등을 고민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세무 기장 등 추가 비용이 있으니 신중하라는 주위의 조언도 있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나중에 꼭 후회한다는 생각에 그냥 등록했다.


사업을 하면서 세상에 기여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고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법인 1년 차 목표를 '직원 1명 이상 고용'으로 설정했다. 그렇게 되려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할까. 1년 후 10대 뉴스에서 이 부분은 어떤 결과로 정리될까.   



202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나는 법인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휴직했던 회사에는 복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미쳤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며
법인 사업자를 내더니, 왜 복직을 해?



휴직하고 쉬는 동안 회사원과 사업가의 차이를 비교하며 성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회사를 떠나 사업을 잘 꾸려 수십억 매출을 만들어 내면 그게 성공일까. 아니면 회사에서 떠나지 못하는 귀신이 되어 승진을 계속하면 성공일까.


성공이란,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



2년의 휴직 기간 동안 내가 내린 성공의 정의는 삶을 즐기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자인 나로서는 사업도 하다 보면 재미가 없었고, 회사 생활도 길어지면 지루했다. 그렇게 보면 뭐든지 끈기 있게 갈아 넣어야 한다고 세뇌하는 한국 사회와는 맞지 않는 인간인가 싶기도 했다.


회사에서 상무가 헛소리 하면
내 사업에 집중하고
클라이언트가 짜증 나게 하면
회사 회식에서 풀 거야.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의 행복 방정식을 찾았다. 2년 동안 만들어 놓은 일과 몇 가지 경험으로 선택지가 좀 더 많은 '회사원 사업가'가 되기로 했다. 비슷한 길을 가면서도 뒷좌석과 운전석에 앉은 것은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고 출근길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낮에는 소속된 회사의 법인카드로 밥을 먹고 밤에는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법인카드로 밥을 먹었다. 퇴근길에는 컨설팅 자료를 작성하고, 연차를 내고 다른 회사 신임 팀장 교육 과정에서 강의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아직 회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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