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포 사원에 앉아있던 20분

by 양양

300 바트라는 입장료가 부담되어 이번 여행에서는 사원을 가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 치앙마이에서도 사원은 잔뜩 봤잖아. 방콕에 볼 게 얼마나 많은데.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엄마가 50,000원의 용돈을 입금했다. 참 염치가 없었다. 이 돈으로 사원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카페를 박차고 나와 바로 왓포 사원으로 향했다.


치앙마이에서 본 여러 사원들과 큰 차이가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웅장했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왓포 사원에서 가장 유명한 거대 불상을 봤다. 너무 커서 한참을 걸어야 다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를 비집어가며 나 역시 몇 장의 사진을 남긴 뒤 빠져나왔다.


불상 앞 벤치에 앉았다.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다. 그렇게 쨍쨍 내리쬐던 햇빛도 5시가 넘어가니 조금 가라앉고, 그늘에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혼자 여행하느라 내내 꽂고 다니던 이어폰도 빼니 세상의 소음이 들려왔다. 시끄럽진 않았다. 가족, 친구, 단체로 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역시나 혼자였다. 익숙한 기분이었다. 스물셋, 혼자 유럽에 갔을 때 멍하니 앉아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평화롭고 여유로웠지만 동시에 외로웠고 한편으로는 자유로웠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26년간 나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렇게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간 이름 모를 사람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동창들, 함께 동고동락하며 부대끼던 연극 팀원들. 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걸까? 다 어디로 가고 여기 이 벤치에는 나 혼자 앉아있는 걸까? 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내 인력을 붙들어 놓을 수가 없는 걸까. 나는 왠지 그 사실에 화가 난다.


나는 내 인생에 반복되는 뭔가가 지겨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까지도 나의 운명이자 삶이라는 걸 받아들여보고 싶다. 원래 삶이라는 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번갈아 맛 보여주는 것 아니겠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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