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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혼란스러운

#1

by 레빗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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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메시지 속에 묻힌 옳고 그름


대선 즈음... 늘 그렇듯 정치적 논쟁이 더하면 더했지 적지는 않았다. 뉴스를 보다 보면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그냥 편하게 브라운관을 끄고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정치적인 제도와 행위가 만들어낸 복지나 생산에 필요한 여러 정책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게 그 영향을 준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 연구에 들어가는 예산도 모두 정치적인 논의를 통해 정책으로 이어진다. 그만큼 정치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정치를 혐오한다. 영화 <돈 룩 업>에는 과학마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그대로 보인다. 지구 종말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것이 자신의 지지율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먼저 떠올리는 대통령을 보며 도대체 정치인들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묻게 만든다.


종말의 소식 앞에서도 시시덕거리는 방송사 진행자들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카메라 앞에서 지구와 충돌할 혜성을 설명하는 두 과학자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과학적 발견과 사회단체들의 의견은 이미 무수히 무시되어 왔다. 우리도 그들의 의견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길에서 소리치고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 정도로 취급할 뿐이다. 그래서 <돈 룩 업>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도는 상황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지구 종말 때문에 사람들은 찬반으로 나뉘고 온라인에서 패를 나눠 여러 가지 영상으로 논쟁을 벌인다. 아마 혜성이 충돌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 논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는 대중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위와 능력을 최대한 이용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승리하지 못했다.


정치적인 패배는 그것을 복기함으로써 다음 논쟁의 승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 종말은 '다음'이라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논쟁에서 밀리는 것은 곧 죽음이다. 승리한 정치인들은 시시덕거리고 자신들의 결정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진정한 승리를 맞이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정치라는 것에서의 승리는 지속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잠시 문제에서 빗겨나가는 방법일 뿐,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끊임없는 논쟁은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잘못된 해결책을 바로잡고 다시 논쟁하고 다른 해결책을 결정해 나가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를 멀리 고하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도 수많은 논쟁은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대통력이 될 것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논쟁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것이 옳은 길이든 아니든, 영화 <돈 룩 업> 속의 과학자들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정책에 반영되면 좋겠다. 온전히 정치적인 결정보다는 옳고 그름이 보다 확연히 드러나는 정책이 나온다면 좋겠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선거가 다가오는 시기에 보면 더욱 공감이 갈만한 포인트가 많은 영화다. 지금도 뉴스를 틀면 정치적인 메시지들이 자극적으로 전달된다. 끄려고 하다가도 자꾸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 갔다. 극단적이고 조금은 희화화되어 있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영화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혼란스러움 속에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아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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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도 혼란스러워


인류에게 부족한 무언가가 우주에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이루어질 것이다. <돈 룩 업>에서는 부족한 광물을 혜성에서 얻어 해결하려는 기업인이 나온다. 지금 현재는 그나마 아직까지는 지구인들에게 적당히 충분하다. 물론 국가의 상황에 따라 부족한 국가들도 있지만 국가 간 쟁탈 전이 벌어질 만큼의 상황은 아니다. 미래에 부족할 것 같은 것 중 하나가 물이다. 현대 사회에 수도관이 잘 연결되면서 곳곳으로 물이 공급된다. 정수까지 다 된 물이 부족함 없이 공급되고 있다.


만약 물이 부족하다면,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물이 부족해진 인류가 달의 물, 즉 월수를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고요의 바다>에서 달 기지로 가게 되는 탐사대는 사실 2차 탐사대다. 1차로 달 기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월수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연구 인력들은 알 수 없는 사고로 대부분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나온다. 2차 탐사대는 기지에 다시 방문하여 1차 인원들이 발견한 샘플을 찾는 것. 그들이 달에 도착하고 기지를 탐사하는 모습은 여느 우주 영화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이야기는 달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월수는 지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만 같은 물질이다. 월수(月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은 무언가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달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토끼가 떡을 찧는 데 사용하는 물 같이 꿈에만 존재할 것 같다. 늘 그렇듯 꿈은 꿈일 뿐이다. 달콤한 꿈엔 늘 피할 수 없는 무서움이 존재한다.


드라마 속 송지안 박사(배두나)는 그 무섭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월수를 발견하고 그것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언니에 대해 알게 된다. 1차 대원이었던 언니가 남긴 건 월수와 그것과 관련한 메시지. 드라마 전체의 이야기는 송지안 박사가 언니가 남긴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통 SF 드라마와 같은 긴박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달에서 고요의 바다는 멀리서 보면 큰 바다처럼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기 전까지는 그곳이 어떤지 정확히 보기 어렵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좀 더 가깝게 가서 바라보지 않으면 그 가족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가족들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동생도, 부모님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월수도, 지안의 언니에 대해서도 그 달 기지에 가지 않고는 그 실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 <고요의 바다>는 진실이 드러날수록 혼란스럽다. 등장인물들도 혼란스러움에 빠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도 혼란스러워진다. 그 혼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로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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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딸을 보면 사랑스럽다. 잘 놀다가도 어떤 때는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린다.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늘어날 때마다 그 고집의 시간도 늘어간다. 훈육을 하고 혼내는 순간도 있다. 순간 욱해서 소리치는 때도 생긴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사주고 또 아이가 놀 수 있는 곳에도 방문한다. 보통 키즈카페에 가서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아이가 혼자 놀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아이패드를 켜고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본다.


어느 날 키즈카페 가는 길에 아이가 이야기한다. "내가 오늘 혼자 놀 테니까 아빠는 글 써요. A키즈카페 가면 아빠가 편하게 앉아서 일할 수 있잖아". 살짝 당황했다. 아이를 위해 키즈카페를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반대로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의 키즈카페로 가자고 한다. 과연 키즈카페를 가는 건 아이를 위해서 가는 걸까. 아니면 내가 편하게 일하려고 가는 걸까.


영화 <비올레타>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엄마의 사랑이 너무나 받고 싶은 비올레타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사진 모델이 된다. 하지만 엄마의 요구는 미성년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진다. 아니 미성년 아이는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싫다는 느낌이 들어도 거절할 수 없다. 거절은 엄마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때문이다. 엄마 한나는 그렇게 비올레타의 사진을 찍는 것을 딸을 위한 것이라 항변한다. 그렇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경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보는 나에게는 전혀 그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나를 위해서 딸에게 무언가를 제안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주말에 키즈카페를 가는 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다른 곳으로 놀러 가면 내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할 시간은 없다. 그래서 키즈카페를 가는 것은 적당한 타협지점이다. 그나마 그건 아이와 내가 모두 이해할 만한 위치에 있다. 딸아이에게 유치원 숙제를 시키고 다른 무언가를 할 때도 불쑥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강압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건 나를 위한 걸까. 아니면 딸을 위한 걸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비올레타>는 아이에게 너무 집착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비록 영화 속 엄마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꽤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위한다면서 잘못하는 행동들이 꽤 있을 것 같다. 여러모로 아이를 키우고 사랑을 주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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