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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사랑

#2

by 레빗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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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이해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 본인은 편안할까.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에 신경 쓴다는 것이 꽤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가족이 나에게 화를 낼 때, 기분 좋게 칭찬해 줄 때 그것에 따라 변화되는 내 감정은 움직임이 꽤 심하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타인의 감정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를 해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의 시간을 만들면서 그 이해의 폭을 넓히려 애쓴다. 아주 멀찌감치 서서 객관적으로 보면 그 모든 노력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닥터 브레인> 속 주인공 세원은 타인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세원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세원이라는 인물에게 정을 붙일 수 없게 만든다. 특별한 감정이 없어 보이는 그는 엄마에게도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는 측은해 보였다. 주변에 저렇게 좋은 사람이 많은데 그 따뜻함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안되어 보였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세원 같은 인물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날 수 있다. 가정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전혀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따뜻함을 전달해도 돌아오는 건 차가움뿐이다. 어쩌면 그 차가운 사람도 치료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아무리 따뜻한 사람들이 그 옆에 있어도 여전히 차가운 사람. 나도 여느 동료들과 함께 그 사람을 멀리했지만 그 사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곁에 남아있는 옆 동료에게는 따뜻함을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 차가운 동료가 여전히 차가운지는 알 수 없다. 그냥 기억 속의 그는 차가웠고 꽤나 외로워 보였다.


드라마 속 세원이 처음으로 동료와 맥주 한 잔을 하자고 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 맥주 한 잔 마시자"라는 아주 사소한 짧은 말은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전까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집에 가던, 고독이 일상이었던 사람인 세원. 그가 다른 사람의 뇌를 스캔한 이후 그런 행동을 한다. 물론, 그건 그의 특성이 아니라 스캔한 사람의 특성이 세원에게 건너왔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발현된 것이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사람답게 변한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성적인 모습보단 그런 따뜻한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인간적이라는 것, 인간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을 온전히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야기 속 세원도 뇌 스캔을 하며 조금씩 과거의 자신이 가진 모습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치료가 되는 것인지, 그냥 여러 인물의 특성을 받아들여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야 비로소 그 인물에 정이 가기 시작한다.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는 드라마 속 세원이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과 맞닿아있다. 그렇게 세원이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감정이라는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세원은 여전히 차가운 사람이다. 세원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해의 과정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예 불가능한 일 같은 타입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치료'라는 관점이 아니라 '이해'라는 관점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꽤나 힘든 과정에서 외면하는 사람도 생기겠지만 누군가는 그의 옆에서 그의 감정을 '이해'하며 곁에 있을 것이다. 결국엔 '무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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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결국에 변할 수밖에 없는...


레이디 가가가 즐거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위의 사진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찌오 구찌를 바라볼 때의 표정이다. 순수한 호감은 그들을 결혼이라는 울타리까지 쉽게 데려다준다. 그 사랑의 힘은 그들에게 돈도, 권력도 필요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저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모든 세상을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느낌이 그들에게 행복감을 준다.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두 사람의 마음을 서로에게 꼭 묶어둔다. 하지만 호르몬의 장난으로 사랑은 서서히 작아진다. 그러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야는 넓어진다. 그들이 가진 사랑은 지속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가 연결되어 있던 주변으로 시선을 넓힌다. 파트리치아가 그랬던 것처럼 배우자의 가족들에게 시선이 가고,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부 같은 것들이 생각을 어지럽힌다.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찌오가 처음 만나 가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말 그대로 사랑이 가진 힘의 흐름대로 흘러가지만, 그 힘은 점점 약해진다. 모든 것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던 그 힘은 어디로 간 걸까. 그 사랑의 결핍은 파트리치아를 더욱더 욕망에 집착하게 만든다. 자신과 마우리찌오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을 다른 가족들에게서 보고, 구찌 가족들의 약점을 세심하게 찾아내기 시작한 그는 점점 파국으로 달려간다.


그들의 그 순수한 사랑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파트리치아의 사랑은 변한 걸까. 결혼 초반까지 그가 바라본 남편 마우리찌오의 모습은 자기만을 바라보는 사랑의 모습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가진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호르몬이 지배하던 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 그 자체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 사람이 가진 장점과 단점, 한계점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실망스러워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보이는 장점들을 이야기하며 조금 다른 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바라보는지도 변해야 한다. 파트리치아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에게 부족한 점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다른 가족들에게서 취하는 것으로 그들의 사랑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아내와 만난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서로 무척 좋아했던 시기는 이미 몇 년 전에 지나가 버렸다. 아내는 좀 더 이성적으로 나는 조금 더 감성적으로 변해갔다. 어쩌면 그게 서로가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본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가진 사랑의 모습은 변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쉽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그 적응의 시간 아래서 각자 노력하는 중이다. 아마도 그 끝은 결국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가는 과정과 인물들의 반응을 보며 나와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좋은 추억과 아픈 기억, 그리고 건조해진 공기가 뒤섞여 영화에 반응하게 만들었다.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내 마음에 크게 들어온 장면은 후반부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찌오와 별거 중에 다시 합치자고 설득하는 장면이다. 파트리치아는 과거 추억이 담긴 사진을 담은 앨범을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좋은 추억들의 힘이 있기에 다시 함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남편을 설득하지만 마우리찌오는 그 추억을 잊은 지 오래다. 그건 그에게 더 이상 소중한 기억이 아니다.


그런 남편의 반응을 확인하고 건물 밖을 나서는 파트리치아의 모습이 꽤 가슴 아프다. 추억의 힘이 강력하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간 과거일 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모습이 변한 이후, 누군가에게 그것은 그저 미련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순간들이 된다.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상대방을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 사랑의 힘은 약해진다.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랑은 도대체 왜 찾아오는 걸까. 수많은 추억들은 왜 모두에게 기억되지는 못하는 걸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에서 주인공 엘라이자가 버스 안에서 차장 밖을 바라볼 때, 창문의 물들이 바람의 영향으로 모양을 바꿔가는 장면이 있다. 여러 개의 물들이 하나가 되고 또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간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시시각각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을 세심히 쓰지 않으면 그 모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찌오는 그들의 사랑이 변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들 자신이 느끼지 못한 채 그것은 질투와 배신, 분노가 되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그 두 사람 간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그 관계가 완전히 파국을 맞으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결말은 파국이지만 그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파티는 기억에 남는다. 파트리치아가 웃으면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하고 활짝 웃었던 두 사람의 첫 만남. 사랑이 시작되는 몽글몽글한 그 순간은 꽤나 아름답다. 우리는 사랑이 결국 변해갈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몽글몽글한 사랑스러운 순간들 때문에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시작한 사랑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서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이 만들어지는 건 아릅답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사랑의 몽글몽글한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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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영웅, 그들의 외로움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은 훌륭한 팬서비스 영화였다. 각각의 스파이더맨의 팬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그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꽤나 대단한 감정을 선사했다. 특히나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여전히 먼저 떠오른다. 그는 무척 소심했고, 자신의 능력을 크게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세 명의 스파이더맨 캐릭터 중 가장 고민이 많았고, 철이 먼저 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 모두 주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메이 큰 엄마의 사랑이 공통으로 받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 외의 인물들에게 받은 사랑은 조금씩 다르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메리 제인에게 사랑받았지만 두 사람은 사실 성격이나 성향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이끌림은 각자가 사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연애 기간이 길지 않지만 오랜 시간 서로 대놓고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그들은 서로 연인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서로에 대한 아쉬움을 가진다. 그런데 생각만큼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해결이 잘 되지 않는다. 그저 아쉬움이 자꾸만 쌓여가고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를 찾지 못해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에 영향을 준다. 어쩌면 메리 제인의 입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늘 주변을 돕느라 바빴던 피터를 위한 작은 배려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먼저 배려해 주는 것인데, 이게 각자의 오해를 커지게 만든다.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는 조금 더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그웬과 그는 여느 청소년기의 아이들처럼 서로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도 여느 시리즈보다 빨리 알아버린다. 그런데 서로 솔직한 사랑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웬의 아쉬움은 커져간다. 피터가 스파이더맨의 일로 늘 바쁠 때, 그웬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건, 스파이더맨이 아닌 피터 파커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이별하기도 하는 이 커플은 서로에 대한 마음만 확인하고 그 이후를 볼 기회가 없어졌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지는 커플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다 보고 난 이후에 그 아쉬움은 더 커져가고, 그게 이 시리즈의 피터를 무척 혼란스럽게 만든다.


톰 홀랜드의 피터는 좀 더 어려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 굉장히 망설인다. 어찌 보면 토비 맥과이어의 부끄러움에 앤드류 가필드의 활발함이 적당히 섞여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리즈 초반엔 그저 철없는 청소년으로만 보였던 그는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을 다 보고 나면 그제야 씁쓸한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는 미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미쉘은 눈치가 빠르고 솔직하다. 그래서 피터는 자신이 먼저 말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마음과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를 바로 들켜버린다. 그들의 사랑은 다른 피터들의 사랑과 달리 더욱 서로에게 의지한다. 그 '의지'는 피터의 정체가 공개되었을 때 더욱 확고해진다. 이들은 아직 이별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다 보고 나면 이들은 결국 의도하지 않게 이별을 맞이한다. 피터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고립시키고 외로움을 택한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 모두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정체를 드러낸 다른 영웅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긴다. 그렇게 자신의 주변사람들을 보호한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사랑을 받지만 개인적인 삶은 외롭다. 그건 그들 자신이 선택한 외로움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느 영웅보다 이타적이다. 자기 자신은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이 안전했으면 하는 그들의 소망은 영화적 이야기에서 긴장의 소재로 활용되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가 <스파이더맨 2>에서 계속 스스로 질문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운명인가?". 하지만 그는 그 운명을 거스르고 원하는 걸 얻는다. 그가 나이 들어서 그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삶은 길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 맍아지게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만나서 서로를 위로해 주는 가운데, 토비의 피터는 더욱 톰 홀랜드의 피터를 위로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톰의 피터가 작은 방에 혼자 들어갈 때, 그의 뒷모습은 마치 토비의 피터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랑을 포기하고, 친구도 포기하고, 그저 스파이더맨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마음. 그렇게 자신의 외로움을 감내하는 것도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늘 토비의 피터 파커를 보고 동질감을 느꼈다. 나 자신이 영웅은 아니지만, 돈을 벌면서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를 해나가는 일들 속에서 내가 사랑받을 기회는 멀어져 갔다. 그런 내 마음속 고민은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친구를 만나면 시시덕 거리며 수다를 떨었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런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혼자 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사랑에 목말랐지만 적극적으로 무언가 할 수없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외로움 피터 파커에게 투영되어 자꾸만 그를 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피터 파커가 외로움을 감내하듯이, 우리 모두는 자신 만의 외로움을 감추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이든, 커플이든, 부부이든,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감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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