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베를린 돔 건너편에 있는 ‘Peterpan Burgergrill’이라는 버거 전문점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문한 치즈버거와 프리츠 콜라를 기다리면서 한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이 식당의 반 층 계단을 올라가면 세 개의 테이블이 강의실처럼 일렬로 놓여 있는데 테이블을 가운데로 각각 2개의 직사각형 스툴이 함께 있다. 맨 앞에 있는 테이블은 자리가 비었고, 맨 끝의 테이블에는 내가 앉았다. 혼자 앉아서 건너편 시야가 비어있기 때문에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은 남자의 상반신을 직격타로 보고 있다.
나는 그를 독일에서 클래식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기억한다. 이 추측은 그의 상반신이 흔들리는 모양 때문이기도 했고 소지품 때문이기도 했다. 푸른 계열의 긴 셔츠를 입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남자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그 이어폰은 검은색 스마트폰과 연결이 되어있는데 기종은 아마 아이폰 7S 아니면 8. 그는 스툴에 악보 한 권을 내려놨는데 옆으로 몸을 45도 정도 돌리고는 고개로 리듬을 타면서 팔을 진취적으로 휘저었다. 한창 악보를 보면서 지휘를 하다가 두 번의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의 상대가 이 식당을 쉽게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상대가 타고 있는 것이 U반인지 S반인지를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끊었다.
치즈버거와 프리츠 콜라가 나왔다. 여전히 뒤통수와 옆모습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남자의 상대는 길을 헤매는가 보다. 그리고 나는 밥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는 것은 경우에 따라 떨떠름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식사 도중에 TV로 <쇼미더머니>를 보거나 <댄싱나인>을 본 적도 있는데, 눈앞에서 실제로 사람이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건 파도 위에서 작은 낚싯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울렁거림이 극대화된 느낌이랄까. 내가 식사를 반쯤 하고 나니 남자의 여자친구가 발을 쿵쿵거리며 올라왔다. 남자가 “이게 무슨 일이야. 고생했지”라고 했는데 여자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어두운 정도를 넘어서서 ‘내가 지금 미친 듯이 화가 나서 조절이 안 되거든. 이거 지금 터지기 일보 직전이야’라고 경고를 하는 느낌이었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여자는 사실 어젯밤부터 화가 나 있던 상황인데 남자가 음식을 시키라고 종용하는 바람에 이 갈등은 가속도를 더 높여갔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진행될수록 내 쪽에서도 소화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차라리 아까 그 좌식 지휘 장면을 보는 것이 나았을까.
여자가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쇼핑백을 남자한테 던졌다. 남자가 “이걸 왜 샀어. 이런 거 안 먹어도 오빠는 건강해”라고 하면서 쇼핑백을 스툴에 내려놨다. 자, 이제 사과해. 어제 여자하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걸 사과하면 돼. 서서히 둘의 싸움이 끝나가길 빌며 나는 콜라병에 꽂힌 빨대를 물었다. “근데 이걸 사 온 건 나한테 화가 풀린 거 아냐?”라고 남자가 묻는 순간, 그들의 갈등은 여자의 말과 함께 다시 유턴. “아니? 왜 그렇다고 생각해?”
이 불안한 대화는 점점 더 깊어지다가 갑자기 예상외의 방향으로 빠져 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남녀의 대화를 샛길로 모는 것에 나의 존재가 도움을 주었다. “오빠, 몰랐어?” 여자는 화가 난 나머지 시선을 돌리다가 한국인이 있는 걸 보고 남자에게 불화의 주제를 추가했다. 남자가 의아하게 여자를 보다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겐 하나의 위안이 되었을지도. 게다가 화제를 돌릴 정도면 이 싸움은 아마도 이 레스토랑 안에서 끝날 것 같았다. 서버를 불러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여자는 아직 갈등을 유지하고 싶어 보였다. “하고 많은 자리 중에 왜 여길 앉아?”
음, 나도 일주일 만에 듣는 한국말이 당신들의 대화일 줄은 몰랐어요.
햄버거를 먹으며 싸움 구경을 하다가 너무 지나치게 멀리 와버렸는데, 여자는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일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아닌가.
가끔 화가 난 상태로 있다가도 무방비상태에서 웃게 됩니다. 분하네요, 그럴 때마다. 웃음을 참는 방법이 있을까요.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거나 혀를 무는 방법은 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