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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ntress Nov 28. 2020

적게 먹고 이긴 기분은 처음이라서

기대->입성->왕복 세 번->실패

 뷔페에 가기 전부터 가고 난 다음의 결과를 과정으로 적어봤다. 우선, 기대를 한다. 어디까지나 미리 해둔 음식에, 정해진 한도의 가격으로도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다는 점에서 음식의 상태는 대략 뻔하지만 갈 때마다 이상하게 설레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입성하고 나면 첫 접시에서 많은 양은 아니어도 가능한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담는다. 한 번에 많이 먹는 것이 마음과 같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터넷에서 많이 먹는 법에 대한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대략 수프부터 시작해서 샐러드나 냉채, 회 같은 차가운 음식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고기나 생선, 튀김 같은 더운 음식, 디저트 순으로 따를 것을 권한다. 납득은 가지만 그렇게 먹는다면 십중팔구 고기 전 단계에서 배가 찰 것이니 이를 따르지는 않는다. 가져오는 접시의 개수는 5번 정도로 목표 삼지만 마의 3번을 넘기는 것이 여간 어렵다. 물론, 과일 접시는 제외하고. 


 베를린에서 계획에도 없는 뷔페에 들르게 됐다. 독일어 수업이 끝나고 카데베 백화점에 들른 날이다. 카데베는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의 백화점인데, 우리의 경우처럼 위로 높게 뻗은 것이 아니라 층수가 적은 대신 넓이가 상당하다. 식품관이 지하에 있는 여느 백화점과 다르게 카데베는 먹는 것이라면 온통 위로 향해 있다. 5층에는 유럽 각국의 다양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식품관과 푸드코트가 함께 있다. 오이스터 바와 프렌치 레스토랑, 샴페인 바, 전기구이 통닭 전문점과 수제 버거 바 등이 있었는데 독일어 메뉴를 찬찬히 읽자니 진이 빠졌다. 게다가 두 다리가 뜨고 마는 바 의자에 앉아서 긴장한 상태로 밥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백화점의 꼭대기 층인 6층으로 올라갔다. 6층은 오로지 뷔페 레스토랑 ‘르뷔페’로 되어 있는데 천장이 중앙역처럼 유리 돔 형태로 되어 있어 운치가 느껴진다. 낮보다는 저녁 시간에 온다면 좀 더 괜찮지 않을까. 우선 한 바퀴를 훑으며 메뉴를 탐색하기로 했다. 얼음이 가득 담긴 박스에 꽂힌 생과일주스 저그, 커피 머신과 샴페인 바를 지나 제철 과일, 샐러드 섹션이 나왔다. 같은 라인의 건너편에는 타르트와 케이트 코너, 크림 요거트 디저트가 줄지어 있었다. 스프링롤이나 이자카야식의 꼬치, 딤섬 같은 아시아 푸드 섹션, 다양한 조리법을 활용한 미트 바, 파스타 코너도 함께 있었다. 샐러드가 아니라 디저트부터 시작되는 순서에 당황했지만, 르뷔페는 입구가 양쪽으로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다 옆을 돌아보니 한국 백화점의 식품관과 흡사한 계산대가 여럿 배치되어 있었다. 각 계산대 옆에는 무게를 재는 전자식 저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트레이에 가져온 접시를 하나씩 저울에 올리고 무게에 상응하는 가격을 치렀다. 그러니까 르뷔페는 먹은 만큼 가져와서 돈을 내고 먹는 것이 순서다. 자리에 앉아 있다가 빈 접시를 들고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는 대신 먹을 만큼만 가져가서 계산하고, 오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이 르뷔페의 자연스러운 행태다. 

 가능하면 이런저런 종류의 음식을 조금씩 담았던 한국식 습관을 버리기 위해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습관을 그대로 두다가는 라인별로 구성된 화장품 세트 하나의 가격을 지불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신중하기로 했다. 디저트는 자연스레 패스. 오이를 주재료로 한 샐러드, 마카로니와 토마토를 데친 샐러드를 조금 담았다. 이미 해둔 지 한참 지난 파스타와 신기할 것 없는 아시아 푸드 코너는 가볍게 지나쳤다. 고기 코너에서 금방 튀겨 나온 슈니첼을 주문했더니 담당 셰프가 ‘Good Choice’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접시에는 슈니첼과 매시드 포테이토, 와인에 절인 양배추 채를 함께 담아주었다. 평소보다 최대한 간소하게 담은 접시를 들고 계산대에 섰다. 다른 메뉴는 접시의 무게를 책정하지만 음료수, 디저트, 고기는 수량으로 돈을 지불한다. 하아, 몸무게를 재는 것도 아닌데 저울 앞에서 이상하게 떨리는 기분. 

 르뷔페에서 나는 왕복 1회, 2접시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럼에도 슈니첼의 면적이 성인 여자 주먹 네 개를 모은 정도라 1/3 정도를 남겼지만, 충분히 배불렀다. 뷔페에 가서 목적 달성을 하지 못할 때마다 많이 먹는 사람이 승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주인은 씨름 선수 10명이 한꺼번에 뷔페에 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다른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뷔페에서 먹기 전부터 스스로 양을 통제하는 경험이란 참으로・・・.



다들 뷔페에 가면 몇 접시를 달성하시나요? 뷔최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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