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베를린에 간다고 했더니, 흔히들 현지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왔다. 아는 사람의 유무에 대해 어느 편이 더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누군가 없는 편이 더 기대를 증폭시켰던 것 같다. 현지에서 한 달간 있다 보니 친구들이 몇 명 생겼다. 가장 친해진 두 사람은 물론 함께 지내는 크리스티앙과 일리자였고, 독일어 학원을 함께 다니는 각국의 사람들과도 당분간 친구가 되었다. 내가 만난 13명의 친구에 대해 조목조목 적었다.
마사는 학원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10살이 되면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녀는 우리 클래스에서 가장 적극적인 학생이었는데 베를린에 사는 독일인 남자친구 덕분에 이미 약간의 독일어를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지독하게 핑크를 좋아하는 핑크광이었다는 것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핑크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핑크 캔버스 백에서 핑크 텀블러, 핑크 펜, 핑크 필통을 꺼내는 모습은 꼭 현란한 퍼포먼스 같았다. 한 번은 비가 왔는데, 그날 마사는 블랙 티셔츠에 블랙 팬츠를 입고 우산까지 모조리 블랙으로 챙겨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백팩을 간과했던 거였다. 마사가 자리에 앉아서 블랙 백팩의 지퍼를 열었는데 안감의 색이 그만・・・.
카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그녀는 두번째 날부터 수업을 들었는데, 나이가 지긋한 남자 한 사람과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카자는 우리 반 학생 중 유일하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러시아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말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닫자 나는 쉽게 포기하려 했지만, 그녀는 지지 않고 이내 몸짓으로 대화를 하길 시작했다. 자기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여주면서 결혼은 했냐고 물어보거나 손으로 크고 작은 제스처를 하며 두 명의 아이에 대해 이야길 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함께 온 남자는 그녀의 시아버지였는데 독일에서 일하고 있고 내년쯤 카자의 가족도 함께 독일로 이주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 정보의 통역은 아나가 도왔다.
러시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아나는 휴가를 보내러 왔다. 보이시한 짧은 커트 머리와 빈티지한 패턴의 드레스가 언밸런스하면서 잘 어울렸다. 그녀는 러시아 친구들 여럿과 함께 이곳에 왔는데 수업이 끝나면 꼬박꼬박 어딘가에 가느라 바쁘게 가방을 챙겼다. 정원과 그래피티를 좋아해서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베를린 시내의 정원과 장벽 사진이 올라왔다.
카밀라는 남동생이 있는 베를린에 한 달간 머물다가 뉴욕에 있는 아버지에게 간다고 했다. 원래 사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IT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베를린에 온 건 처음이라 학원이 끝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지만, 남동생이 일하느라 바쁘다며 난감해했다. 지난번, U반에서 마주쳤을 때 티어가르텐에 가는 경로를 알려줬는데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파리지엥 나탈리는 늘씬한 체형에 걸맞은 스키니 팬츠에 첼시 부츠를 신고 다녔다. 파리에서는 마케팅 회사에 다녔는데 그만두고 베를린으로 휴가를 왔다. 그녀에게 습관적으로 “베를린이 왜 좋아?”라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답변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내가? 나 독일 좋아한 적 없어. 한 번은 파리에서 운전을 하는데 독일인이 끼어들더니 나한테 뭐라고 해대는 거야. 근데 독일어를 모르니까 화도 못냈어.”
금발 머리의 클레어는 시애틀에서 왔다. 두 달 전, 미국에서 독일 남자와 결혼했는데 당분간 독일에서 지내며 일을 할 생각이라 어떻게든 독일어를 익히는데 필사적이었다. 채식주의자라 베를린의 채식 레스토랑이나 마트의 유기농 식재료에 관심이 많았다.
키아라는 앙코나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왔다. 그녀는 대학에서 유아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겨울이 되기 전에 베를린에서 일을 구하고 싶어 했다. 우선 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면서 체류비를 벌기 위해 저녁이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녀가 어린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긋남 없이 잘어울린다.
트레비소에서 온 니콜로는 우마가 오기 전, 유일한 남학생이었다. 체구가 작고 마른 편인데, 얼굴은 맥컬리 컬킨과 아주 많이 닮았다. 어딘가 모르게 짠해 보이고 챙겨주고 싶은 느낌은 만국 공통으로 동일하게 전달됐던 것 같다. 이미지 게임을 하는데 다들 니콜로에게 ‘Erbärmlich’ 카드를 붙였다. Erbärmlich는 ‘불쌍하다’는 뜻이다.
샤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온라인 마케터로 일한다. 반삭의 단발머리에 목소리도 체구도 큰 편이라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다. 웃을 때는 입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었다. 영어식 발음 때문에 수업시간에 문장을 읽을 때마다 힘들어했는데, 자기가 하는 실수에도 자지러질 듯이 깔깔거리는 적이 많았다. 그러다 한 번은 다 같이 웃었는데 갑자기 정색하더니 “내가 실수할 때 웃지마. 우리 다 연습하는 거잖아”라고 하면서 정색을 해서 모두를 흠칫하게 했다.
눈이 마주할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응시하는 슈반은 보스턴에서 여성학을 전공한다. 슬리브리스 드레스를 입고 올 때마다 오른쪽 어깨에 있는 커다란 포도 모양의 타투가 보였다. 어릴 적, 집에서 포도 농장을 했던 추억을 살리고 싶어서 팔에 남겼다고 했다.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니콜은 뉴욕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한다. 서울과 에디터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아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가 많았다. 니콜은 네온 컬러의 캐츠아이 선글라스를 쓰거나 왼쪽 눈 밑에 별 모양 페이스 스탬프를 자주 하고 왔는데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튀는 스타일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수업 기간에 베를린의 테크노 음악에 단단히 빠져있었다. 가끔 수업을 빠지거나 늦는 적이 많았는데 그런 날은 대개 그녀가 전날, 클럽에 갔던 날이라고 알아두면 된다.
우마는 반에서 가장 조용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다른 학생들과 필요 이상의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수업 시간에 라인하드나 루카스의 질문에 무리 없이 답변하는 걸 보면 수업을 꽤 잘 따라오는 학생이었는데, 누가 일부러 묻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온 남학생이라는 정도 이상의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날 무렵에 왓츠앱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얘길 하고 있는데 우마가 “난 아들을 봐야 해서 못가”라고 했던 답변 덕분에 그가 한 아이의 아빠였던 걸 알게 됐다.
대만 출신의 하이디는 중국에서 영화감독의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중국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하이디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한 달 전엔 가족들과 함께 독일 여행을 하다가 베를린에 혼자 남아서 공부 중이다. 가능하면 더 오래 있고 싶지만, 체류비 때문에 베를린에서도 간간이 촬영 어레인지 업무를 하고 있었다. 가끔 중국과의 시차 때문에 밤늦게까지 업무를 하느라 아주 초췌한 모습으로 학원에 올 때가 있다.
3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왓츠앱 단체 채팅방에 휴대폰 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남겼습니다. 한 명이라도 연락이 올까요? 10년 전, 토론토 대학교의 영어 회화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제 얼굴이 가물가물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