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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비소리 Mar 02. 2023

"길을 잃었다."

아빠라는 이름의 바통

길을 잃었다. 눈앞에 너무나도 생소한 곳이 보였다. 바다였다.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난 지독한 길치다. 지금은 네비라는 개인 비서로 그나마 많이 나아졌다. 길치인데도 호기심은 많았나 보다. 다른 길로 가는 걸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 '학교가 저쪽에 있으니까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저렇게 가면 빨리 도착할 거야.'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은 늘 새로운 풍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어떻게 보면 방향감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평상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동네 안에서 감행한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초등학교 3학년때인 1985년 4월 부활절에 생겼다.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동네 형들과 누나들이 교회에 가자며 나의 손을 잡았다. 간식과 학용품을 준다는 말에 흔쾌히 따라갔다. 다만 살던 동네에서 꽤 먼 거리라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87번 버스를 타고 교회로 갔다. 몇 가지 과자와 예쁜 계란 그리고 끝이 평평한 한 번도 쓰지 않은 연필 몇 자루를 받았다. 다시 87번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찼다. 키가 작았던 내 눈에서 누나와 형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혹시 내가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급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생전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부분이다. 사실 그 버스의 종착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타고 있었으면 되었으니까. 단지 처음 타보는 87번 버스였고 종착지가 집 근처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


낯선 곳을 한참을 둘려 보았다. 잘못 내렸음을 받아들였다. 누나와 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일찍 내렸다는 생각보단 늦게 내렸다고 판단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집이 보일 거야' 그렇게 버스가 왔던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교회에서 받은 선물을 손에 꼭 쥐고서...


1시간. 조금 있으면 집이 보이겠지.

2시간. 뭔가 이상했다.

3시간... 4시간... 눈앞에 바다가 보였다. 이사를 한 후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은 산과 가까웠다.  길을 잃었다. 그것도 아주 먼 곳에서...


울었다. 평상시의 모험과는 달랐다. 울면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어른들이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내 곁에서 사라졌다. 갈림길마다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 길로 온 게 맞나 싶었다. 난 방향치이자 길치니까 의심은 증폭되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주변은 어두워졌다. 


멀리서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아빠였다.

아빠는 그렇게 날 찾아냈다. 아빠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명탐정 코난처럼 날 찾아냈다. 훗날 알게 되었다. 그날 함께 같던 동네형과 누나가 날 잃어버렸다고 집에 알렸고 동네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일터에서 연락받은 아빠는 부랴부랴 막내아들을 찾아 나섰다. 긴 시간을 뛰어다니며 큰소리로 아들 이름을 온동네방네에 알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막내아들의 발자취를 따라 뛰어다녔다고...


내가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나에게도 두 딸아이가 생겼다. 아이들과 새로운 곳을 갈 때면 당부 겸 확인을 받는다.


"얘들아 혹시나 엄마아빠가 안 보이면 어떻게 하면 된다고 했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돼"

"맞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그럼 엄마아빠가 금방 너희들을 데리러 올 거야."

    

몇 년 전 캠핑을 갔다.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캠핑장. 넓은 숲은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곳이었다. 언니랑 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둘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첫째는 동생이 텐트로 간 줄 알고 혼자 놀다 왔다고 했다. 둘째는 오지 않았다. 


뛰었다. 우리 텐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한 꼬마가 나무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둘째였다. 내달려 아이를 번쩍 안았다. 아이는 울음이 터트렸다. 20분 동안 혼자서 그 나무 밑에서 엄마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해 아빠가 늦게 왔지? 무서웠지?"

"아빠가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서 계속 기다렸어. 잘했지?" 


아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행동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응. 너무 잘했어."


지금도 난 길을 잃는다. 그럴 때면 걸음을 멈춘다. 핸드폰 지도가 그 당시 아빠를 대신한다. 지도를 보고 내가 어디인지 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찾는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처럼 아빠가 길 잃은 나의 손을 잡고 가야 할 곳으로 데려가주기를...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 이젠 내가 그 역할을 할 때다. 아빠에게 아빠라는 이름의 바통을 전달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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