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소규모 공연장에서 보컬 공연을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 아니, 노래하는 망아지.
회사를 다닐 적에는 사내에서 알아주는 취미 부자였다. 수영, 러닝, 클라이밍, 해외여행, 독서 모임, 보컬 트레이닝... 직장에서의 고된 하루를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저녁과 주말을 보냈다. 얼기설기 얽혀 일상을 단단히 지탱해 주는 철골구조물 같은 여가 시간. 그 시간들은 어느새 내게 자잘한 재능들을 하나둘씩 안겨다 주었고, 그 재능들은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을 기다리며 차곡차곡 쌓여갔다. 회사를 나와 시간적 여유가 생긴 뒤로는 그 취미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었고, 혼자서만 조용히 즐기던 노래라는 취미를 세상으로 꺼낼 기회도 생겼다. 그동안 보컬 학원을 같이 다니던 사람들과 3개월간 똘똘 뭉쳐 2024 연말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
낭만의 동네 마포의 연습실을 이곳저곳 전전하며 우리는 하루에 적게는 4시간, 많게는 6시간까지 합주를 했다. 단체 곡의 경우에는 짝끼리 화음을 맞췄고, 개인 곡의 경우에는 모두가 앉은 자리에서 발표를 진행한 후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합주가 끝나면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홍대 앞 단골 술집에 쪼르르 달려가 밤늦게까지 과음을 하고는 2차로 노래방에 가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에서까지 우리는 서로 어떤 창법이 더 듣기 좋은지 권하며 알차게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한동안 마포 일대를 우리만의 음악으로 소란스럽게 물들였다.
두 뺨을 에는 추위와 함께 드디어 12월 공연 날이 다가왔고, 우리는 신촌의 먹자골목을 쭈욱 따라가면 나오는 지하의 한 소규모 공연장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가니, 마치 영화 <라라랜드> 속 재즈 공연장 셉스를 연상케 하는 힙한 분위기가 풍겼다. 붉은 네온사인 간판 주위를 감도는 어둑한 조명들. 너무 허름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고급스럽지도 않은 복작한 감성의 공연장은 어릴 적 내가 종종 상상하던 대학가 공연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언젠가 그런 공연장에서 노래를 한다면 정말 멋질 거야. 나는 그런 자유롭고 멋진 어른으로 자라야지.’ 하고 다짐했던 그때의 꿈이 작게나마 실현될 공간에 발을 들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회사를 다닐 적에 틈틈이 음악 프로그램 세트장에 놀러 가 아이돌 덕질을 함께 하던 친한 팀 선배, 나와 입사 스터디부터 퇴사까지 전 과정을 함께 훑었던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동기, 풋내기 대학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다독이는 친구들, 사랑하는 동생까지 초대해 작은 공연장을 메웠다. 연말 감성을 대표하는 '백예린 - 0310', '최유리 - 바람', 최애 밴드 '데이식스 - Welcome to the Show', K-캐럴의 진수 'Must Have Love'까지... 명창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노래 꽤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게 해 줬던 목소리를 드디어 무대 위로 당차게 꺼내놓았다.
온전히 내가 주인공인 무대를 끝내고 나니 그간 억눌려 있던 것들로부터 풀려난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진짜 내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 아직 털도 마르지 않은 망아지의 모습을 한 내 공연을 글썽이는 눈망울로 바라봐 주던 친구들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어쩌면 불안정해 보일 수도 있었던 내 과감한 행보를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으로 지켜봐 주던 그 눈빛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단단히 나아가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을 묵묵히 따라가기보다 내 길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맞이한 최최최종 퇴사 면담.docx 때 건넸던 퇴사 동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