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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geulp Apr 04. 2023

#오운완 그게 뭔데?

수영루틴을 위한 SNS의 순기능

새벽수영 일기 1


#오운완#오수완

 새해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1일 해돋이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요즘 MZ세대에서 유행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오운완’이라며 소개한다. 오운완? 그게 뭐지? 해시태그까지 붙인 #오운완이란 ‘오늘 운동 완료’의 줄임말로 꾸준히 운동하기 위해 소셜계정에서 운동인증을 하는 일종의 챌린지 같은 거란다. 곧바로 SNS에 들어가 #오운완을 검색해 보았다. 수많은 운동인증 피드들이 주르륵 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새벽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5개월가량 되던 쯤이었다. 수영을 하고 나면 뿌듯함과 개운함은 있지만 여전히 수영장에 가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부터 해서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거쳐야 하는 길목까지 순탄치만은 않은 새벽의 시작이었다. 어제는 너무 추워서, 오늘은 잠이 부족해서와 같은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기면 저절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일주일에 두 번만 가도 성공한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수영장에 가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 부지런히 수영장에 나오는 거 같았다. 그래서 한 번은 나도 꾸준히 수영장을 나가 보고자 친구와 기상 미션을 하기도 했다. 사실 새벽수영을 시작한 걸 알게 된 친구가 일어나게 되면 메시지를 남겨 본인도 깨워달라는 제안이었는데 나에게도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였기에 흔쾌히 수락을 했다. 한 동안 의무감에 기상미션을 꾸준히 수행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가지 말까’하는 이유는 다시 퐁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것이 바로 ‘오운완’인 것이다.

'오운완 그거 나도 한 번 해볼까?'

새해를 맞이해서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었기에 당장 월요일부터 일단 무턱대고 계정에 올려보기로 했다.

사실 2년가량 SNS를 하지 않아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계정이었다. 육아와 오랜 경력단절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나는 내 처지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게 되면서 더 이상 그 공간을 통해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SNS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1년 간의 SNS세상과의 단절 후 내면의 근력이 조금 쌓였을 때쯤 코로나19로 다들 어떻게 보내는지 또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져 SNS를 슬며시 다시 시작하며 눈팅만 여기저기 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인지 아직 나에게 SNS는 낯선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인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조금 어려워 #오운완을 검색해 보니 헬스장에서 멋진 몸매를 인증하는 피드가 가장 많이 나와있었다. 물론 나 역시 언제 가는 멋지게 수영복 차림의 모습을 찍어 올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었기에 그냥 평소 차고 다니는 스마트워치의 앱을 통해 수영기록을 인증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일주일간 #오운완을 SNS에 꾸준히 인증을 했다. 말하진 않았지만 '나 이제 새벽수영 인증한다! 자자 다들 잘 지켜봐!'라는 뉘앙스를 알아차렸는지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매일같이 '좋아요'를 눌러주었다. 물론 오랜만에 올라온 피드에 대한 반가움과 예의상의 반응이었을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런 즉각적인 반응이 나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느끼는 재미였다.

첫 주 평일 5일 수영인증을 완수하고 나니 뭔가 뿌듯함이 몰려왔다. 다음 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주말 내내 좀 더 #오운완을 살펴보다 '오늘 수영 완료'인 #오수완을 없을까? 하며 검색해 보았다. 아니다 다를까 수영복을 세면대에 두고 찍은 세면대샷이며 직접 수영복을 입고 찍은 거울샷이 #오수완으로 해시태그 되어 있었다. 그 주 일요일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은 #오수완도 함께 해시태그 걸어야지' 생각하며 잠들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을뿐더러 아무도 기다리지 않지만 기대에 부응하리라는 이상한 의무감을 가진채 말이다.


지금까지 나의 #오운완#오수완의 출석률은 꽤나 높은 편이다. 새벽에 눈을 떴는데 머리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지면 곧이어 SNS의 수영인증에 구멍이 날 거라는 생각에 금방 머리가 가벼워져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우리가 흔히 습관형성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의 하나로 사용하는 가위표 체크와 비슷한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계획한 행동을 완수했을 때 달력의 날짜 위에 가위표를 매일 그리다 보면 어느덧 가위표들이 연결되어 쇠사슬 모양을 만들어 낸다. 처음에 몇 개 안 되는 가위표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어느덧 가위표가 긴 쇠사슬 모양을 만들어내면 그 쇠사슬 모양을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계획한 행동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습관으로 형성된다는 원리이데 한 번쯤은 달력에 가위표를 쳐본 경험이 있을 거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러한 습관형성 방법도 웬만한 의지가 없으면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또 하나 제시되는 습관형성 방법이 바로 되도록이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라는 것이다. 한 명보다는 두 명에게 두 명보다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수록 내 책임감이 더해지기 때문에 계획한 행동을 완수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원리이다. 그래서 나 역시 친구와의 기상미션에서 처음에는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었지만 한 명의 힘은 조금 부족했던 거 같다.

#오운완#오수완으로 SNS에 인증하는 것은 이러한 쇠사슬 습관형성 방법과 주변에 알리는 습관형성 방법 두 가지를 모두 갖춘 MZ세대만의 습관형성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가위표로 쇠사슬을 만드는 것처럼 내 계정의 피드를 매일 하나씩 채워가는 것과 동시에 피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집단무리를 이루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은 비슷한 분야의 사람들과 작은 사회를 이루어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며 이 소속 안의 관계는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게 된다.

그래서 SNS가 이전에는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공간으로 기피해야 할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습관형성 공간으로 매일 함께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역시 무엇이든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따라 방향은 180도 달라지는 법이다. 올해의 #오운완#오순완은 나의 수영루틴을 잡아주는 최고의 코치임을 인정하는 바이다.


인스타그램 | @su0break

글 | 라라글피

(C) 2023. 라라글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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