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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Oct 20. 2020

영환아 나 오늘 생일이야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유계영(문학동네)」


   영환아.  오늘 생일이야.     


   이렇게 적으니 우리가 같은 교실에 있는 것만 같아. 나는 창가 자리일 거고 영환이는 뒷문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 그리고 다정이 너는 나랑 영환이 사이  어디쯤이겠지.

  

   너는 나한테 물을 거야. 이거 영환이한테 전해 ?

   그럼 나는 그러겠지.  마음대로 .


   너는  난처한 표정일 거야.  원망할지도 몰라. 이런 결정을  내게 떠넘기느냐고. 그러다 결심할 거야. 전해 주지 말아야겠다.  편지는 죽을 때까지 우리만 알아야겠다.

  

   얼마 전엔 우리 학원 학생 하나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서, 그러니까 위경련인지 장염인지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아이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회사에서 근무 중이시던 아버님이 단박에 학원으로 오셨더라고. 조금 놀라셨는지  뺨이 붉어진 채로 말이야.

   막상 와서 보니 아이 얼굴이 생각보다 괜찮아서였는지 그제야  웃으면서 그러시더라.

   ‘우리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가셨어.

   아버님이 키가  크신 것도, 체격이  좋으신 것도 아녔는데 그냥 되게  보이시더라.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아이가 옆구리에  맞아서는.  맞는 부품처럼.     


    붙어 있던 포스트잇이  떨어진다

   잘사는  알았는데 돌연  떨어지는 사람처럼     


   아마도 그때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하고 떨어진  같아.  끊기면 좋았을 텐데 끊기지는 않고 그냥  떨어지기만  거야. 발을 헛디딘 사람처럼. 마음은 사방이 절벽이라서.


   그리고  절벽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

   자기 아빠는 트렁크 차림으로  안을 활보한다고 친구가 그랬거든. 그래서 물었지. 그럴   기분은 어때? 그랬더니 친구가 눈이 동그래져서 묻는 거야. 무슨 기분? 나는 본격적으로  물었어. 그러면 너희  베란다에는  속옷이랑 아빠 속옷이랑 같이 널려 있는 거야? 그렇대. 생리대도 화장실에 그냥 두고 쓰고? . 그렇대.

   그런데 나는 정말 궁금했거든. 그런  정말 가능한지. 이런  태도가 친구는  불쾌했을지 몰라. 걔가 그러더라고.

   “이슬아. 아빠잖아.”


   대화는 매번 거기에서 끝나. 이슬아. 아빠잖아.

   나는  말이  외계어처럼 들려. 도통 이해가 가질 않고 앞으로도 그럴  같아.


   아빠인  뭔데?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데?     


   계속 잊고 살면 좋을 일들이 있어. 잊고 있다는 감각까지도 흐릿했으면 하는 기억들이 있는 거야. 그런데 언제  마음이  마음대로 됐던 적이 있나.

   나는 가끔 주머니가 찢어진 외투를 걸치고 외출하는데도 그러고서 돌아온 내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끔찍할 때가 있어.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도 여름밤이면 모기에 시달리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다정아. 이런 얘기는  어지러운가.

     

   영환이는 언젠가 내가 잠깐 좋아했던 남자애 이름 같아. 어쩌다 걔를 좋아하게 됐는지, 그래서 걔랑 나는 어떻게 됐는지. 이런   까먹고서 어쩌다 영환이란 이름과 마주치면  자리에 잠시 멀뚱히  있게 되는 거야.

   걔하고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다가  , 우린 떠올릴 기억이랄  없지,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 가만히 있게 되는 거야.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운동화와 뿔테안경이 도착한  한참 지났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발과 속눈썹이 찰랑찰랑 내려앉은  오래됐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손발톱과 치아가 후드득 쏟아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슴과 엉덩이, 눈동자와 눈빛이 뭉개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전봇대마다 실종 전단이 들러붙은 후에도 나는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지나가버린 것을 끝까지 모른다


   생일 파티는 생일 파티에 초대된 사람이 모두 도착해야 끝낼  있어. 그래서  생일 파티는 동네의  햄버거 가게에서 테이블을 서너 개쯤 붙이고  가게에서 맛볼  있는 모든 햄버거와 음료를 주문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내내 기다리던 아홉 살에 멈춰 있어.

   서른 살의 내가  초가   꽂힌 케이크의 불을 - 하고  동안 아홉 살의 나는 작은  아홉 개가 꽂힌 케이크의 불을 계속 끄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편질 영환이한테 전해 주냐고?

   글쎄.


   이런 얘기나 하는  편지가 실종 전단 같은 거라면 좋겠어. 아무도 아무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어. 그럼 다정이 너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절대  번은 읽지 않고 꽉꽉 구겨 쓰레기통에 버릴  있을 텐데.


   뒷문이랑 제일 가까운 자리는 쓰레기통이랑 제일 가까운 자리이기도 . 걔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나랑 제일   자리에 앉아 있어.    

  

   영환아.  오늘 생일이야.

  

   그리고 쓰레기통엔 이런 마음이 버려져 있어.




   (이슬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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