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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Oct 18. 2022

죽었을까 봐 전화했어 Ⅱ

    “선생님. 저번에 말씀하시기를 저 같은 문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과거의 어떤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서 반복되는 거라고, 그래서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건 다 과거의 일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제가 그 일들을 잘 정리할 수가 있나요?”

    “정리할 수 있죠. 다만, 정리해야지 해서 정리가 되는 건 아니고요. 사람과의 좋은 경험들로 인해 마음이 회복되는 거예요. 이성이든 친구든, 실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만한 좋은 경험들이요.”     

   “저는 이제 과거를 좀 끊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될지 모르겠어요.”

   “돼요. 이미 그런 것들을 하고 있어요. 정리를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에요. 계속, 끊임없이.”


   “제가 올해 서른두 살인데요. 지금까지는 왜 이러지 못했을까요? 이런 과정을 먼저 겪고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건 상처의 정도에 따라 다른 거예요. 이슬 씨가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상처가 깊으면 더 오래 걸리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걸 다 극복하고서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시잖아요? 그런데 상처를 극복하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건 연결이 되어있어요. 누군가를 만나는 과정에서 내가 내 상처를 알게 되고 그러니까 부드러워질 수 있는 거거든요. 상대를 이용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슬 씨는 잘하고 계신 거예요.”

 

    연락처를 뒤지고 또 뒤졌다. 많지 않은 전화번호 사이, 조금이라도 무너질 구석이 있는 이름이라면 죄 구조 신호를 보냈다.

    밥 먹자. 시간 되면 오늘 좀 봐. 주말에 같이 있어도 돼?

    그리고 덧붙였다. 나 좀 안 좋아. 필요해.


    도움을 청하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요청에 응했다.

    날 대신해서 나를 먹이고, 환기를 시키고, 잠을 재우며. 이해되지 않는 것투성이인 나를 이해시키고, 내 편에 서고, 장난을 걸고, 시시한 농담을 하며. 슬플 땐 충분히 슬퍼야 한다는 이해와 결국 다 지나가리란 뻔한 응원을 동시에 건네며. 울고 웃고 화내고 소리치며. 살짝씩 미치며.

    내 힘듦 하나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주변을 괴롭히는 게 어른스럽지 못하다 느껴질 때면 눈을 꼭 감고 다짐했다.

    '나중에 다 갚으면 돼. 내 몫과 차례가 분명 있을 거야.'


    하루에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자며 그들과 부지런히 함께였다. 여전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배가 고팠다. 6kg이 빠진 후였다.


    “선생님, 오늘 갑자기 배가 고프더라고요. 경험상 배가 고프면 절반쯤 온 거거든요.”

    “절반쯤 회복한 걸까요?”

    “회복까진 아니더라도 절반쯤 빠져나왔다?”

    “좋아요. 저번에 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요. 보통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건 많진 않아요. 크게 봤을 때는 이런 걸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도 있어 보이고요. 이 결과지로만 봤을 땐 김이슬 씨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에게서 건네받은 결과지 속 그래프는 그의 말처럼 대체로 모난 곳 없이 완만했다. 딱 한 곳을 빼면.


    “대부분 평이하게 나왔는데 한 가지 좀 벗어나 있는 게 뭐냐면, 이건 이슬 씨 성격 같기도 한데요. 타당도라고 해서 검사 결과가 타당한지 적절한지를 보는 게 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대충 막 찍었는지, 지나치게 과장했는지, 반대로 지나치게 축소했는지를 보는 건데요. 그게 좀 벗어나 있어요. 어떤 식이냐면 나는 괜찮아, 라는 식으로 약간 방어적인 거예요.

    이런 걸 ‘긍정 왜곡’이라고 하는데요. 이슬 씨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거짓말이랑은 조금 다르고, 어떤 분들이 이렇게 나오냐면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어야 해, 문제가 있으면 안 돼, 라고 생각하는 엄격한 사람들. 그래서 그 기준을 조금 너그럽게 할 필요가 있어요. 조금 느슨하게요.”


    이해할 수 없었다. 따지자면 나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 타인에겐 엄하고, 스스로에겐 한없이 무른. 이것 역시 긍정 왜곡일까...?


    “그런데 선생님. 저는 기준이 엄한 것 치곤 되게 나태한데요? 저는 저한테 너그러운데요?”

    “그래요? 본인한테 너그럽다고 생각하세요?”

    “네.”

    “그럼 그건 앞으로 같이 고민을 좀 해보죠. 이건 하나의 검사 결과일 뿐이니까요. 다만, 조금 걱정이 덜 되는 것 같아요. 이슬 씨에게 이런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고 보여져서요.”     


    병원을 나서니 바람이 찼다. 짧아진 해가 다 진 어둠 속을 어깨를 조금 움츠린 채로 걸었다. 그의 말을 등불처럼 꼭 쥐고서였다.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어요.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어요.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어요.

   

    그리고 다음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김이슬 씨 맞으시죠? 여기 정신의학과예요.”

    “......아, 네. 무슨 일이세요?”

    “어제 검사 결과 들으셨잖아요. 그게 좀 잘못돼서요. 선생님께서 직접 통화하길 원하시는데 괜찮으실까요?”

    “아... 네. 괜찮아요.”

    (...)

    “이슬 씨, 안녕하세요. 아이구..”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검사 결과가 잘못됐다고요?”

   “네, 이슬 씨. 저희 병원에 김이슬 씨가 총 네 분 계시는데요. 제가 다른 분 검사 결과를 말씀드렸더라고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진료 오실 때,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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