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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Oct 07. 2022

죽었을까 봐 전화했어 Ⅰ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 방학, 나는 아빠네 집에 있었다. 아빠를 보러 간 건 아니고, 언니들을 보러. 일 년에 한 번 정도.


    거실을 놔두고 굳이 좁은 방에, 작은 언니 옆에 누워서 나 이제 잘 거라고 그러니 엄마도 잘 자라고 내일 늦지 않게 가겠다고 순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아홉 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엄마 벌써 자? 다시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피곤했나? 자나 보다. 그래, 그냥 자나 보다.

    ...그런데 왜? 왜 벌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엄마한테로, 되도록 일찍.

 

    현관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되는지 고민될 만큼 그랬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이 낯설고 또 익숙했다. 아무도 없나? 다들 어디 갔지?

    현관을 밀고 들어가자 신발장 앞에 고집스럽게 적은 쪽지가 하나 보였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집에 들어오시라고 해라.

    쪽지 옆엔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내가 그 오천 원으로 뭘 했더라?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친구였다.     


    응. 왜 전화했어?

    너 죽었을까 봐.

    내가 왜 죽냐?

    넌 오락가락하니까 그러다 손목이라도 그으면 어떡해.

    누구 좋으라고 손목을 그어. 안 그래. 나 안 죽어.


    오천 원으론 뭘 안 했던 것 같다. 식탁 위에 올려놨었나. 안방 화장대 위에 올려놨나.     

    이른 오전이었고, 집 안은 어제 아침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잘 정리된 부엌, 꺼진 티브이, 좋은 냄새를 풍긴 채 뚜껑을 열고 있는 세탁기. 깨진 접시나 어질러진 화장품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끔찍할 만큼 그대로인 집에서 순자, 딱 하나만 없어진 거다.

    그리고 전화를 오십 통쯤 했을 때야 알았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는 걸. 고작 내가 없던 그 하룻밤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보호자가 떠난 느낌이라고 하셨어요. 맞나요?”

    “네.”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내세요?”

    “납득이 잘 안 돼요.”

    “뭐가 납득이 안 될까요?”

   “제가 계속 보호자 얘기를 하잖아요. 저한테는 가족이 떠난 느낌이에요. 주변 친구들한텐 그냥 열이 받는다고 표현했는데, 실은 슬퍼요. 가족이 될 기회를 제가 놓친 것 같아서요. 그래서 말 그대로 납득이 잘 안 가요.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고요.”

     “되돌린다 한들 분명 더 힘들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 없어요. 계속 고여있어요. 과거를 생각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는데, 한 장면 한 장면을 좀 집요하리만큼 기억하고 싶어요. 기억해내고 싶어요.”

     “거기에 빠져있네요.”

    “자연스럽지 않나요? 누구나 관계가 끝난 이후엔 얼마쯤 이러지 않나요?”

    “맞아요. 자연스러운 건데, 지나친 면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상대를 원망하거나 화를 내는 게 오히려 건강한 반응 같기도 하고요. 그 사람은 이슬 씨의 가족은 아니었거든요. 보호자도 아니었고요. 이 관계에 너무 큰 의미를 두시는 거 같아요.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처럼요.”


    전화를 백 통쯤 했을 때 알았다.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걸. 이 집에 날 혼자 두고 떠났다는 걸.     


    “그래서 납득이 안 간다는 표현을 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괴롭죠. 괴로운 일이긴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시니까 안타까워요. 틈만 나면 그 생각이 떠오를 것 같아요.”     


    전화를 백오십 통쯤 했을 때, 순자가 전화를 받았다.

    - 이슬아. 엄마 너무 힘들어서 바람 좀 쐬고 갈게.

    - 엄마 어딘데?

    - 바다. 바다에 왔어.     


    결국 순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고서였다.

    ‘엄마 나 너무 무서워. 저 새끼 또 술 마셨어.’

    어둠을 헤치고 돌아온 순자는 집 앞 슈퍼에서 자길 기다리고 있던 날 지나쳐 도망쳐 나온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이 든든해서인지, 죄스러워서인지는 몰라도 순자의 큰 그림자 뒤를 나도 따라서 들어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뭘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짐을 꾸렸다. 순자가 내 교복을 챙기는 사이, 난 화장실로 가 목욕탕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들뜨는 동작 없이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 밤, 녹는듯한 열탕 안에서 무슨 얘길 했더라. 도대체 바다에서 뭘 했느냐고 물었나. 바다에는 혼자 갔느냐고 물었나. 이상하게도 많이 웃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 둘밖에 없는 목욕탕 천장이 순자와 내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던 것 같은데.

     

    나는 이런 걸 기억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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