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슬 Oct 22. 2022

모두가 노크해 Ⅰ

    이곳의 특이한 풍경 중 하나는 모두가 노크한다는 것이다. 이름이 불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 두 번. 똑똑.

     

    당연한 예의로 보일 수 있으나 내겐 낯선 풍경이었다. 노크를 한다는 건 상대의 시간과 마음을 존중하고 싶단 뜻이기도 하니까.

     

    반년에 한 번 순자의 보호자로 대학병원에 동행한다. 조그만 혹이 있는 순자가 반년에 한 번씩 추적관찰을 하기 때문이다. 예약을 하고 가도 삼십 분 넘게 기다리기 일쑤인 대기실의 풍경은 의외로 평화롭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화롭게 보일 만큼 처져 있다.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를 기다리는 모두가 불안과 초조로 똘똘 뭉친 분위기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노크하지 않는다. 굳게 닫힌 진료실 문을 누군가는 용기 내어 또 누군가는 하는 수 없이 밀고 들어갈 뿐이다. 아마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의 여유가 없어서겠지. 아프다는 건 그런 거지.

 

    똑똑-


    “이슬 씨, 어서 오세요. 제가 저번에 다른 분 검사 결과를 설명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시 설명 드릴게요.”     


    새로 건네받은 결과지는 이전 것과는 한눈에 봐도 딴판이었다. 완만했던 그래프가 여기저기 우뚝 솟아있었다. 본 적도 없는 다른 김이슬이 순간 부러웠다.


    “첫 번째 장부터 말씀드리면, 그래프를 보시면 선에 걸쳐져 있는 게 몇 개 있어요. 많이 높은 건 아니지만, 세 가지가 그런데요.

    첫 번째가 우울증, 두 번째가 편집증 척도예요. 우울증은 아실 거고, 편집증 척도가 조금 올라가 있다는 건 사람들을 대할 때 잘 믿지 못한다는 거예요. 경계한다는 거죠. 물론 가까워지면 괜찮겠지만 처음에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되나? 생각하는 거예요. 아마도 이슬 씨 같은 경우, 성장 과정에서부터 사이가 틀어진 경험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나타난 것 같아요.

    그리고 세 번째는 조현병 척도라고 하는데요. 생각이 왜곡되어 있는 거예요.”

 

    정말 내가 사람을 잘 믿지 못하나? 고개를 숙인 채 생각 중이던 나는 조현병이라는 말에 고개를 똑바로 들 수밖에 없었다. 조현병이라니. 갑자기 조현병이라니?


    처음 조현병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한 건 2014년에 방영한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에서였다. 여기에선 주연/조연 할 거 없이 모두가 각자의 정신질환을 앓는데, 천재 작가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바로 정신 분열증, 스키조(schizo) 환자로 나온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 드라마를 정주행한다. 등장인물들이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서사가 아닌, 인정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불치나 불행한 병으로 치부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로 삼고 같이 사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내가 자신 없기 때문에 드라마 속 저들이 부럽고 좋은 거였다. 그런데 조현병이라니. 내게 조현병과 우울증은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실은 이 모든 게 내가 만들어낸 환시는 아닐까? 나는 연애를 한 적이 없고 그래서 헤어지지도 않았으며 정신과에 온 적도 없는 뭐 그런 거 아닐까? 실은 내가 내 방에서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혼자 떠드는 게 아닐까?


    “다음 장을 보시면 여기도 조금씩 올라가 있는 게 있죠. 첫 번째가 의기소침, 두 번째가 신체 증상 호소. 의기소침하다는 건 기분이 좀 처져 있다는 것이고, 신체 증상을 호소한다는 건 몸이 아픈 게 아닌데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답답하거나 숨이 안 쉬어지거나 하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거예요. 이슬 씨도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기태적 경험. 이것도 조현병 척도와 비슷한 건데요. 제가 어떨 때 이런 걸 느끼냐면요. 이슬 씨가 그 분과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단 느낌을 받아요. 꼭 본인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결과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자꾸 자신을 탓해요.”

   

    이 정도면 그가 내게 조현병 선고를 내리는 게 분명했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괜히 검사 핑계를 대는 거였다. 혹시 이것도 편집증... 그런 건가?


    나는 대학병원 대기실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심해지면 조현병이 되나요?”


이전 07화 죽었을까 봐 전화했어 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