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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Dec 20. 2022

왜 이렇게 됐냐고요? Ⅰ

    폭식증을 고백하면 다들 이유부터 묻는다. 왜? 왜 그랬는데? 그럼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러게. 왤까. 왜 이렇게 됐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말.


    그런데 나도 폭식은 해. 다 하지 않아?


    끝도 없는 의문과 막막함은 내가 13년째 폭식증을 앓으며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었다. 왜 이런 인간으로 컸는지 내가 나를 납득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과식과 폭식이, 폭식과 폭식증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솔직하게는 왜 설명해야 하는지 몰랐다. 누구라도 나를 좀 이해해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보다 더한 수치심이 먼저 들었다. 그들의 이해를 얻는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망가진 채로 엉터리다.


    “이슬 씨. 요즘도 폭식을 하나요?”

    “제가 폭식증이 심했을 때는 과식이랑 폭식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는데요. 대략 육 년 전부터 구토를 하지 않게 되면서 먹는 양이 그전보다는 자연스레 줄어들다 보니 헷갈릴 때가 있어요. 저번에 제가 다시 배가 고프다고, 먹고 싶은 게 생겼다고 말씀드렸는데 요즘 정말 많이 배고프거든요.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픈데 그러면 막 먹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양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그때 제 상태가 어떤지 제가 잘 인지하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그 정도는 편하게 드셔도 될 것 같아요. 구분이 안 될 정도면 괜찮은 거니까요. 그리고 그동안 많이 못 먹었잖아요. 마음 아파서요. 그러니 다 드세요. 드셔도 돼요.”



    왜 나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 왜 나일까?


    이 질문은 내 거의 모든 상황을 관통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하려 계란을 깼는데 쌍란일 때. 왜 나에게 쌍란이...? 평소 같으면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회사에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을 때. 왜 나 같은 인간을...? 대학 생활 내내 CC는커녕 연애다운 연애도 해보지 않은 내가 어느 맹랑한 신입생이 남자 선배들을 어장 관리한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도. 시발 왜 하필 내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훗날 아주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이에게 듣게 된다. 서른한 살, 이유도 없이 발목이 아파 정형외과를 떠돌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한의원에서, 목소리가 따뜻하고 늘 바빠 보이는 한의사 선생님에게.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아니고요. 이렇게 될 게 이렇게 된 거예요.’


    그 말은 모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확해서 물리치료 베드에 누워 바지를 칭칭 걷은 채 아, 그런 거군요.. 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단호한 대답이 좋았다. 그 속에 이유와 이유 없음이 동시에 있어 좋았다. 이유와 이유 없음이 내게 동의를 구하지 않아 좋았다. 이유와 이유 없음이 날 납득시켜 좋았다. 왜 하필 나인 게 중요하지 않아 좋았다. 주인공이 내가 아니어서 좋았다.


    그러면서 내게 벌어진 일이란 게 계속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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