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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슬 Mar 26. 2023

왜 이렇게 됐냐고요? Ⅱ

    처음 일부러 구토를 한 건 고등학교 삼 학년, 수능이 끝난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달고 짠 과자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벌이는 십 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파티 중이었다.


    식욕은 있어도 식탐은 잘 없는 나는 그날따라 과자를 먹어 치우는 데 몰입해 있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헬스장을 등록해 나름 다이어트 중이던 터라 오랜만에 간식을 먹어서 그런 거라고 그때는 생각했다. 여러 주제로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잠깐 내 존재가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불러오는 배와는 달리 한없이 가벼워지는 중이라고. 아무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먹는 동안엔.


    이날 나는 기계였다.

    먹는 행위만 하도록 설계된 기계.


   “선생님, 저는 설명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이해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설명 그 자체요. 설명을 건너뛰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 설명하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게 좋아요. 저는 그게 따뜻하다고 느껴요.”

    "네.”

    “여기에 오면 선생님도 제게 뭔가를 설명해 주시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그렇죠. 그러네요.”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는 일은 미지의 언어를 처음 접하는 일처럼 생경했다. 기괴하게 구부정한 자세, 자꾸만 입천장을 찌르는 손가락, 튀어나오는 헛구역질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을 때 실핏줄이 죄 터져 눈가 주변으로 빨간 점이 가득하던 괴물의 얼굴.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첫 폭식의 기억 전부이다.


   “이슬 씨에게 설명이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엄마가. 엄마가 설명이 없었어요.”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을까요?”


   폭식은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계속됐다. 먹는 동안에도 허했고 토한 뒤에도 속이 더부룩했다.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벌어진 일에 당황할 새도 없이 그냥 그렇게 됐다.

    내가 아는 건 오직 크리스마스 당일, 순자에게서 들은 말이 코르크처럼 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 꽉 막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마음 어딘가에 아주 큰 구멍을 내고 있다는 거였다.


   “저는요. 설명해서 달라지지 않는 일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슬아. 인사해. 이 아저씨랑 앞으로 같이 지낼 거야.


   “설명하지 않으면 제 책임 같잖아요.”


   그냥 둘이 살면 안 돼?

   엄마가 자신이 없어. 싫으면 아빠한테 가서 지내. 넌 그래도 돼.


   “다 제 책임 같잖아요, 선생님.”

   “그렇게 생각될 수 있지만 이슬 씨 책임은 아니에요.”

   “엄마가 평생 저한테 미안하면 좋겠어요. 사랑하지만 용서가 안 돼요. 그게 엄마의 최선이었다는 건 알아요. 엄마는 안쓰러울 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그게 저의 최선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이슬 씨 나름대로는 삶을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거네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어요?”

   “맞아요. 저는 제가 잘 컸다고 생각해요.”

   “잘 컸어요.”


   왜를 알면 이 모든 게 시작되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행운의 쌍란과 이 자리를 제 주인에게 돌려주고, 터무니없는 소문을 삭제하고, 과자를 집어 먹지 않고, 게워내지 않고, 아빠가 한 명이고, 우리가 찢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붕괴되지 않은.


   “누가 절 옷장 안에 넣고 옷장 문을 닫은 기분이에요. 제가 충분히 열고 나갈 수 있는데 그러지를 못하겠어요. 답답해요. 저는 서른세 살이나 먹었고 지금까지 옷장 안에 있어요. 앞으로도 이러면 어쩌죠.”

   “이슬 씨. 괴로움도 슬픔도 계속해서 계속되진 않아요. 충분히 겪고 나면 옅어져요. 모든 고통이 그래요. 그래서 힘든 시간도 있는 그대로 느낄 필요가 있어요. 이슬 씨는 지금까지 가만히 옷장 안에 있던 게 아니라 옷장 문을 열고 나갈 마음의 힘을 기르고 있던 거예요. 지금도 기르고 있고요. 그러다 보면 마침내 열 수 있어요.”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보란 듯 앞으로 흐르고, 이제야 그것이 시간의 배려임을 어렴풋이 안다. 흐르는 시간만큼 계속 옷장 문과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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