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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n 16. 2020

공돌이가 알게된 인문학의 필요성

| 결국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삶은 윤회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난다. 날씨가 변해도 1년을 주기로 비슷한 날씨로 다시 되돌아오고, 오늘의 시간이 흘러도 내일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온다. 상승이 있으면 하락이 있고, 승리가 있으면 패배가 있다. 그렇게 삶은 계속 돌면서 반복된다. 인문학도 그랬다. 어제는 인문학이 중요했지만, 오늘은 공학이 중요하다. 하지만 내일은 또 인문학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계속 인문학이 중요하다. 모든 삶은 윤회인데 순리를 거스르는 것도 있나 보다.




공대를 갔다. 

왜 공대를 가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이과를 나왔고, 수학을 좋아했고, 물리를 제법 잘했다. 화학 성적도 괜찮았다. 의대 갈 실력은 못됐다. 자연대에 가면 굶어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공대를 간 것 같다. 학과는 내 선택이 아니었다. 수능점수와 본고사 점수가 가능한 지점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적당히 타협했다. 그렇게 공대생이 되었다.


미적분학을 네 번 수강했다. 나는 수학을 잘하는 줄 알았다. 재수강을 할 때까지는 실력보다는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삼수강을 하게 되었을 때는 중간고사에서 100점을 받았지만 기말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그래서 네 번 수강을 했다. 물리와 화학도 배웠다.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수많은 법칙을 외웠다.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다. 아무튼 점점 숫자에 익숙해졌고, 계산을 하고, 공식에 대입하는 공대생이 되었다. 그즈음에 사람들이 나를 공돌이라고 불러댔다.


취업을 준비했다. 주변에 있던 문과 계열 친구들은 토익에 목숨을 걸었다. 토익이 아니라면 CPA와 각종 고시를 준비했다. 공대생들은 여러 회사에서 많이 뽑는다며 그들은 나와 내 주변의 공돌이를 부러워했다. 학과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취업 준비 시 영어에 사활을 걸었다. 영어가 필요한 업무는 아니겠지만 회사에서는 교양인은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을 하는 듯했다. 대부분의 공대생들은 토익점수가 낮았다. 아마 내 토익점수가 우리 과에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었으리라.


취업에 성공했다. 사람들은 내 합격의 비결을 영어성적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비교적 수월하게 직장인이 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당시에도 사상 최대의 취업대란이었다.  유사 이래의 취업대란이라고 쓰는 언론도 많았다. 취업을 하고 보니 상경계열이나 공대생이나 모두 똑같은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많이 달랐다.


그들은 정장을 입고 서울시내나 서울 근교로 출근을 했다. 주로 사무실에서 일했으며, 강남 같은 번화가에 모여 스터디를 하고 소개팅을 하고 유흥을 즐겼다. 그런데 난 지방의 낯선 도시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정장을 입고 출근했더니 선배들이 저녁에 약속이 있냐고 물어봤다.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교대근무를 돌았다. 사무실이 있었지만 주로 현장에서 지냈다. 힘쓰는 일은 아니었지만 힘이 드는 일이었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물론 청바지를 입는 것도 좋았다.


5년 차에 대리가 되었고, 9년 차에 과장이 되었다. 선배들이 시키는 일에서 내가 주도하는 일로 조금씩 변해갔다. 내 일은 분석을 하고 원인을 찾고, 숫자를 만들고, 숫자를 점검하고, 숫자를 비교하고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 일의 90% 이상을 엑셀로 처리했다. 엑셀은 신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엑셀의 한계는 “나의 상상력과 창조력”이었다. 학창 시절 그토록 허덕이던 엑셀을 마우스 없이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함수를 중첩하고 또 중첩했다. 엑셀에 없는 함수는 직접 만들었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작업은 프로그래밍하여 시간을 줄였다. 이렇게 공수를 줄여나가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제법 일머리가 있는 놈이었다.


아귀가  맞다.”라는 말이 있다.

수학이 그렇다. 정확한 값이 나오고 이유가 명백하다. 논리적이고 누구에게나 설명이 가능했다.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도 논리가 명확하고 숫자가 맞으면 되었다. 그들은 내가 만든 숫자를 이해했고 인정했다.





한계를 만났다.


13년 차, 그러니까 과장 5년 차 정도부터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엑셀로 만드는 자료보다 파워포인트가 필요했다. 엑셀에서 산출한 값들을 워드 프로그램의 표에 다시 기입하여 경영진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결괏값보다, 결괏값이 만들어진 이유보다, 결괏값이 필요한 이유가 중요했다. 그들은 스토리나 감동을 원했다. 또, 설득을 원했다.


처음 그 낯 섬을 만났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처음 열심히 경영진에게 직접 분석 보고서를 설명했을 때 그들은 한참을 듣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설명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고 했다. 듣는 사람이 이해를 못하는 것은 발표자의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멍청해서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설득당해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후배들이 나를 설득해야 했다. 후배들의 논리에 내가 설득을 당해야 내가 상사를 설득할 수 있었다. 후배들은 어렵고 고차원적인 해석을 해가며 부서의 일을 설명했고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을 되물은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임원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모든 걸 알고 이해한 입장에서 자료를 작성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나 사실의 나열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보고서를 읽는 사람은 그 내용을 처음 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이해하려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보고서는 무조건 쉽게 써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 읽어도 이해되도록 보고서를 만들어라.”가 상사들이 내게 요구하는 과제였다. 그들은 명문 대학 졸업자들이며, 학사를 넘어 석박사들이 즐비한데, 그들을 상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보고서를 만들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런데 17년 정도 회사생활을 경험한 지금, 그 말이 딱 맞다고 인정한다.




보고서는 쉬워야 한다. 무조건 쉬워야 한다.


라이스대학교(Rice University)의 에릭 데인(Erik Dane) 교수는 “사람들은 전문성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에 매몰된다.”라고 했다.

그렇다. 사람은 특정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머릿속에 존재하는 지식의 포로가 되어, 그 지식의 벽 안에서 생각하고 결정한다.


나 역시 공학, 다시 말해 공돌이의 입장에서, 또 우리 부서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시야가 한껏 좁혀져 있었다. 사람들은 내 입에서 나오는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 부서에서 흔히 사용하는 은어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제 아무리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도 한 분야에서 10년을 넘게 일해온 사람의 관점을 단기간에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상급자들이 내게 알려준 것이 바로 인문학이었다.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편적인 사람에게 맞출 수 있는 깜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던 “스토리텔링”은 결국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납득시키는 것이 아닌, 근거 있는 이야기 속에 내 주장을 녹여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라는 것이다.



인문학 : 인간의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그제야 약 10여 년 전부터 신문, 잡지, 방송에서 유행처럼 써오던 “인문학”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 엑셀에 나와있는 숫자로 대화하지 않고, 그 숫자를 보기 좋게 파워포인트로 만들고 중요한 부분은 색을 바꾸고 폰트를 키워 잘 드러나게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경영자들이 원하는 것은 직관이고, 이해였다. 조목조목 특장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그냥 예뻐 보이고 사고 싶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삼성 스마트폰과 애플 스마트폰의 차이라고 할까?


그렇게 나는 인문학과 친구가 되어갔다. 사실보다는 맥락을 통해 사람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를 만드는 일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문장 한 줄에도 의미를 부여하도록 요청받고,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없어서는 안 될 것들만 존재하는 보고서를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모든 일은 보고서로 준비되고 발표로 끝이 났다. 직급이 올라가고 관리자가 되어갈수록 보고서 작성과 발표가 나의 일이 되어가고, 점점 익숙해져 간다. 왜 인문계열 사람들이 좋은 요직에 많이 자리하고 있는지, 왜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법대를 나온 사람들인지, 왜 제조업을 하는 회사에서도 마케팅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앎의 최종 목표는 인간에 대한 이해다. 인간은 변동성이 크다. 앞으로 인간은 점점 더 고민하고 설득하는 일 위주로 진행되고, 반복하는 일과 계산하고 기술을 닦는 일들은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하지만 원하는 분야를 찾지 못하고 대학생이 된다면 역사나 철학을 공부하라고 권할 예정이다. 수치나 논리는 한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인간이 살아온 역사와 생각 변화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면 그다음 공부는 모든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공돌이가 느끼는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결국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문학 #공돌이 #공대생 #회사생활 #월급쟁이 #자아실현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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