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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부족하는 걸 깨달아야 가질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하세가와 요시후미, <엄마가 만들었어>


저는 초등학교 2학년쯤 부모님께서 사주신 생일 선물을 기억합니다. 바로 열두 가지 색 크레파스와 색칠 공부 책이었습니다. 좀 유치하죠? ㅎㅎ 그때의 저는 기분 좋게 선물을 뜯었다가 그만 실망했고 저는 그 자리에서 짜증을 냈습니다. 요즘 누가 열두 색 크레파스를 쓰냐고, 다른 친구들은 금색과 은색이 들어 있는 서른여섯 가지 크레파스를 가지고 다니는데 나는 창피하게 겨우 이게 뭐냐며 받지도 않고 구석으로 휙 밀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그땐 엄마의 마음보다 제 마음이 훨씬 중요했나 봅니다.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은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거랄까요.   

   

여러분도 저처럼 부모님의 선물을 받았는데 내가 원하는 게 아니거나 맘에 들지 않았을 때 그 자리에서 툴툴거리지는 않았나요? ‘요즘 유행하는 걸로 주지’, ‘포장이 왜 이래?’, ‘유치해서 친구들한테 자랑도 못하잖아.’ 등등. 우리 엄마는 센스가 없는 것 같아 좀 창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이 해주는 것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할 때가 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친구들이 생기고, 또 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엄마나 아빠가 해주는 모든 것들이 점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싫어지기까지도 합니다.

부모님과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어긋나기만 하는 걸까요? 솔직히 커갈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미울 때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나는 왜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났을까 하며 슬쩍 우울해집니다.  <엄마가 만들었어>의 주인공 요시오 역시 이런 고민에 빠졌습니다.


요시오는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걸 갖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요시오와 비슷한 또래는 부모님보다는 친구가 최고거든요. 친구가 가지고 있는 건 똑같이 갖고 있어야 왠지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요시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요시오가 사달라고 부탁하면 사주지는 않고, 만들어만 주시네요. 그런데 엄마가 만든 건 친구들 것에 비해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니 요시오의 마음에 들 리가 없지요. 친구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옷을 입은 요시오를 보고 놀립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요시오의 청바지는 청바지인 듯 청바지가 아니고, 체육복인 듯 체육복이 아니고, 가방이듯 가방이 아닙니다. 차라리 엄마가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아예 없었다면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일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요시오는 며칠 후에 있을 아빠들의 참관 수업 생각에 마음이 괴롭습니다. 요시오는 아빠가 안 계셨기에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게 뻔했거든요. 그렇다고 아빠 대신에 엄마가 오는 건 더 싫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될 수 없으니까요.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교실 뒤쪽은 아빠들로 빼곡합니다. 그런 아빠들을 몰래 훔쳐본 요시오가 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양복을 입은 엄마가 서 있었거든요. 아빠가 된 엄마는 요시오에게 귓속말로 “엄마가 만들었어!”라고 말합니다. 이를 듣고 있는 요시오의 표정이 매우 묘합니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화가 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표정입니다.      



엄마가 요시오에게 “엄마가 만들었어.”라고 한 귓속말에서 엄마가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엄마가 아빠로 보이기 위해  만들었던 양복일 수도 있고, 아빠로 변신한 엄마의 모습일 수도 있고, 이것도 아니면 진짜 아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엄마가 아빠가 될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요시오의 엄마라고 그걸 모를리 없겠죠? 하지만 똑같지 않다고 해서, 부족하다고 해서 엄마가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다면, 엄마가 양복을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요시오는 영원히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로 슬픈 날로만 기억될 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부족한 게 맞습니다. 부모님도 엄마와 아빠는 처음이니까요. 처음은 늘 부족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부모님들도 알고 있어요. 해도해도 부족한 부모라는 이름, 애를 써도 아이들을 만족시켜주기 어려운 것 등등. 그러면서 늘 미안해합니다. 그리고 또 노력합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렇게 노력하고도 부모님은 늘 많이 주지 못해서, 채워주지 못해서 또 미안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잘난 부모님들보다 못난 부모님들이 훨씬 많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고 있는 그 부모님들도 알고 보면 아이들에게는 역시나 부족하고 아이들에게 불만을 듣는 평범한 보통의 엄마와 아빠라는 사실은 안 비밀입니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사랑은 부족하기 때문에 끝이 없는 게 맞나 봅니다.

끝이 없기에, 그 끝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히 부족한 채로 영원히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랑을 채우려 애쓰지 말고 그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오늘도 고민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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