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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시간"도 사랑의 기술을 쌓는 데는 충분합니다.

-앙트와네트 포티스, <엄마, 잠깐만!>

친구들과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울 때, 핸드폰 게임을 한판만 더하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데 친구가 부를 때, 아침에 이불속에 딱 오 분만 더 자고 싶은데 엄마가 부를 때, 여러분은 뭐라고 하나요? 혹시 ‘잠깐만’을 말하진 않나요? 그 시간은 분명 정말로 잠깐일 겁니다. 짧으면 몇십 초? 길어야 오분을 넘지 않을 시간일 겁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짧은 시간이 몇 시간보다 더 많은 기쁨을 줄 때가 있습니다. 왠지 짜릿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얻은 게 있으니까요.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잠깐만’이라는 소중한 외침이 어른들에게는 핑계나 시간을 낭비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많은 어른들은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잠깐만’이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외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엄마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엄마의 약속이라도 늦어버린 날에 잠깐만을 외치기라고 하면 하루 종일 듣기 싫은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그 짧은 시간도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를 생각하면 짜증 나고 화도 납니다. 그깟 몇 초, 몇 분 기다려준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나는 엄마 때문에 1초면 획득할 수 있는 천하무적 게임 아이템도 포기했는데 말입니다.      


그림책 <엄마, 잠깐만!>의 엄마는 약속에 늦었는지 아이의 손을 잡고 빨리 걷습니다. 엄마의 급한 마음도 모르고 아이는 자꾸 잠깐만을 외칩니다. 아이는 모든 것들이 궁금합니다. 지나는 길에 산책하는 강아지, 도로를 공사하는 아저씨와 아이에게 인사하는 아저씨의 손, 호숫가에서 노는 오리와 오리에게 밥을 주는 아저씨… 이 모두가 궁금한 것 투성입니다. 그런데 이 잠깐의 순간은 아이에게는 새로운 세상 그 자체입니다. 그 모든 것이 익숙한 엄마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에 불과하지만요.     


이 잠깐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게 중요한 이유는 세상을 알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람과 동물이 교감하는 모습,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의 모습을 알아채는 건 단 몇 초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반복되고 경험과  시간이 쌓이면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됩니다. 오랜 관찰도, 어려운 공부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이 잠깐의 시간이 한 해 두 해 지나고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잠깐의 시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 것 같나요?


   


빗방울이 내리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엄마는 아이를 앉고 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에게 “진짜 한 번만. 잠깐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하늘 위로 손가락을 가리키네요. 아이와 엄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빨리란 말은 사라져 버리고 엄마와 아이는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에는 너무나 예쁜 무지개가 떠 있네요.


만약 엄마가 아이의 ‘잠깐만’이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엄마는 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엄마와 함께 나누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에게 ‘잠깐만’은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짧은 시간인 동시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엄마와 나누고 느끼기 위한 소중한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을 어려운 말로 공감이라고 하는데요, 이 공감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의 관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능력 중에는 공감 능력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 능력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처지나 생각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공감능력은 타고나는 것도, 누구나 쉽게 얻는 것도 아닙니다. “잠깐만”이라고 부탁하는 친구의 말을 지나치지 않으며, 나에게 쓸모없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부탁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가 쌓일 때 비로소 공감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무지개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가 아이가 그토록 원했던 잠깐의 시간을 엄마가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급하다는 이유로 아이가 세상을 알아갈 시간을 뺏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함께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했던 마음, 공감하고 싶었던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엄마에게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해보세요. 또 엄마의 시간을 쪼개 눈을 마주하는 시간을 꼭 갖고 싶다고 말해보세요. 거절하는 엄마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게 아이들의 세상입니다. 어른들은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좋다는 것,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큰 사랑은 때때로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주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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