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홍, <천사들의 행진>
야누슈 코르착은 폴란드에서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살아 있었던 때는 1930년대인데요, 이 시기는 히틀러라는 독일의 독재자가 폭력으로 유럽을 지배하고 유태인을 탄압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당시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여 수많은 시민을 죽이고 국권을 빼앗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제 강점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폴란드 역시 독일의 식민지가 되어 히틀러의 통치 아래 놓였고 폴란드 시민들은 그들의 폭력 아래서 처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의사였던 야누슈는 전쟁 때문에, 그리고 가난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밤마다 찾아가 무료로 치료해주었습니다. 당시 폴란드 곳곳은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었는데요, 특히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 들이나 부모를 잃고 집도 없이 길에서 사는 아이들,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야누슈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고아원을 짓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부모가 되어 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야누슈가 마련한 고아원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아이들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스스로 정합니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질서와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야누슈는 아이들이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교육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아원의 아이들이 비극적인 삶을 이겨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군인들이 폴란드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을 모두 가스실로 보내서 죽이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고아원 아이들 중에도 유태인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모두 가스실로 가야 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야누슈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막 희망을 갖게 된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극의 날이 왔습니다. 야누슈는 고아원을 함께 운영해왔던 스테파니아에게 아이들이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도록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소풍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갈 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기차는 사실 가스실로 가는 기차였습니다. 야누슈는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탑니다. 저 멀리서 한 사람이 뛰어오면 소리칩니다.
“야누슈! 당신은 기차에 타지 않아도 돼요! 당장 내리세요!”
그러나 야누슈는 그를 외면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보내고 야누슈 혼자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기차에 올라탄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풍을 간다는 생각으로 신이 났습니다. 한 아이가 야누슈에게 자신이 꿈꾸고 있는 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어른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야누슈는 그 아이의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것 알고 있지만, 아이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며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도 슬프지 않습니다. 만약 그 아이 옆에 야누슈가 없었다면 그 아이는 아마 희망이 뭔지, 미래가 뭔지 알지 못한 채 슬퍼하다 비극을 맞이했을 지로 모릅니다. 그러나 야누슈의 사랑은 최악의 폭력과 슬픔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주었고 아이들은 행복하게 눈 감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폭력과 두려움도 결국은 사랑이 가진 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무엇으로 이것을 증명할 수 있냐고요? 바로 우리의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독재자들은 폭력으로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을 거처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권력을 누리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로마의 네로. 독일의 히틀러, 이라크의 후세인 등 세계적인 독재자들은 폭력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지만 오래 유지할 수 없었고, 그들의 마지막은 매우 비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 독재자들을 무너뜨린 건 또 다른 폭력이 아니라 그들의 폭력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감싸고 위로해주고 도와주며 그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사람들, 나보다 가난하고 나약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역사가 되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사랑을 이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알고 싶다면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것들을 한번 찾아보세요. 아마 밤이 새도 찾지 못할 겁니다. 혹 질투, 시기, 폭력, 권력과 같은 것 옆에 사랑이 놓여 있으면 나약하다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저것들과 싸우면 질 것이 뻔하니까요. 그러나 사랑은 이 모든 것들과 싸우지도 대결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것들을 감쌀 뿐입니다. 마치 보자기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사랑이 통하지 않는 곳이 어느 곳도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미움과 슬픔, 두려움, 폭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하는 그 순간에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폭력은 사라져도 사랑이 사라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것들과 대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또한 번 말하지만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큰 사랑 말고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