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요제프 후아이니크, <내 다리는 휠체어>
저는 키가 작습니다. 그래서 가끔 도서관에 가서 높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려면 발 돋움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른이 되어서 발 돋움대를 사용하는 건 솔직히 말하면 좀 창피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까치발을 들고 있는 힘껏 손을 쭉 뻗어 책을 꺼내려고 애쓸 때가 훨씬 많지요, 그런데 낑낑 거리며 애를 쓰는 그런 저를 보며 누군가가 살며시 그 책을 꺼내 주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지만, 사실 나쁠 때가 더 많습니다. 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지요.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조금만 손을 뻗으면 꺼낼 수 있었는데, 내가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쓸데없이 도와줘서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지.
그런데 말이죠,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만약 제가 아무리 애를 써 저기~ 높은 곳에 꽂힌 책을 꺼내지 못하고 돋움대도 없는 상황에서 절절 매고 있는데,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도 모른 척한다면 아마도 야속하다고 느껴질 겁니다. 언제는 도와주어서 기분이 나쁜 반면 언제는 도움을 받지 못해서 기분이 나쁩니다. 이런 감정을 일컬어 사람들은 “양가감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일에 대해서 동시에 발생하는 모순된 감정을 말하지요. 사실 설명하기 어려운 난해한 감정입니다.
이런 일에 닥쳤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 다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의 경우 가끔은 외롭고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고 또 해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자, 그럼 입장을 바꾸어볼까요? 이런 상황에 빠진 사람이 내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선택할까요? 방법은 역시 두 가지겠죠? 도와달라고 부탁을 받기 전에 알아서 도와주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런데 아마 많은 사람들은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거나 고생하는 것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부탁하기도 전에 도움을 받아 유쾌하지 않았듯이, 반대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지 않아 속상했듯이 행동하기 전에는 반드시 상대방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지나친 간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다리를 휠체어>의 마그리트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입니다. 옷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기까지 평범한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그리트는 외출이 싫거나 사람들 많은 곳을 일부러 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싫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엄마의 심부름을 위해 오늘도 마그리트는 휠체어를 타고 나왔습니다. 지나가던 아이가 마그리뜨의 휠체어를 보더니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휠체어라고 말해주려는 순간 갑자기 그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서는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아이를 혼냅니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마그리트를 화나게 합니다. 불편한 다리도, 휠체어도 배려받아야 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불편하고 불쾌한 것 투성입니다. 턱이 높아 건널 수 없는 횡단보도, 불쌍하게 쳐다보는 눈빛, 필요 없는 친절 등은 점점 마그리트를 화나게 만듭니다. 그들이 자꾸만 마그리트에게 ‘특별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너도 나도 별난 사람들이야!”라고 말합니다. 마그리트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아이가 누군지 보니, 아까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뚱뚱하다고 놀림받았던 지기입니다. 지기는 마그리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혼자서도 많은걸 할 수 있어. 하지만 이따금은 도움이 필요해.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이야. 이제 아무나 붙잡고 도와 달라고 부탁해봐.
마그리트는 특별함을 거부했지만, 지기는 그 특별함을 인정하는 아이입니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특별함이 싫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기는 마그리트보다 고수인가 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듯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 불편함을 요구하는 것은 특별함을 지닌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고 부끄럽거나 창피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도움을 청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여 고치게 하는 행동들은 세상이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주목받는 것이 싫다고 불평만 하거나 숨어버리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의 다름은 그저 매우 불편한 장애로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것으로 특별하고 싶은 거지, 남들보다 못한 것이나 다른 것으로 특별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특별함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외모가 다를 경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차별의 시선을 둡니다. 선한 시선이든 악한 시선이든 구분하는 건 좋은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의 배려하는 행동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지기가 타고 있는 휠체어를 보고 굳이 못 본 척하려 애쓰는 아줌마나, 몸이 불편한 지기를 딱하게 여긴 할머니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도와주는 것도 사랑이 아니고, 옆에서 무심하게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특별함을 인정하되 지나치게 간섭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뺏지 않는 것, 올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사용하도록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기술입니다. 지기가 마그리트에게 했듯이 세상에 손을 내미는 법, 그리고 특별함을 인정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배워야 할 기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