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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26. 2018

예쁜 게 다가 아냐.

예쁜 여자보다 네가 유리한 이유 

 저는 얼굴 좌우가 비대칭입니다. 눈 크기가 다르고, 고개도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입꼬리도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저희 엄마 아빠께서는 우리 딸이 최고 예쁘다고 하시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진을 찍으면 비대칭인 얼굴이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이 싫어서 사진 찍는 것, 거울 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눈도 크고 예쁘게 생긴 여자 친구들을 유난히도 부러워했던 것 같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여러모로 꾸미고 해서 전체적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얼굴 비대칭으로 인한 속상함은 가슴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졸업 후에 회사에 처음 들어와 해외영업 부서에 배치받았을 때에는 해외영업에 여자 직원이 2명 있었는데 한 명은 저였고, 다른 한 명은 옆팀에 여자 선배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예뻤습니다. 연예인처럼 호리호리하고 얼굴은 작은데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여성스러운 옷차림으로 남자 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남자 직원들은 그 선배가 하고자 하는 업무에 매우 협조적이었고, 저는 그런 모습들이 꾀나 부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쁜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엄친딸로 칭하였고, 못생긴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공부라도 잘해야지' 했었지요. 이래저래 한국 사회에서 예쁘지 않은 여자의 성공은 비아냥과 함께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남자 상사들도 그 여자 선배와 저를 비교하며 '우리  XX 씨는 일로 승부를 봐야지'라는 말을 많이도 했습니다. 저는 그 시절 정말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잘 하고 싶은 마음에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순수하게 대답을 했었지요. 그것이 '넌 안 예쁘니 일이라도 잘해야지'라는 예쁘지 않은 여자들을 돌려서 비아냥대는 말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렇게 예쁘지 않은 저는 '저답게 정법으로' 그 선배의 말처럼 일을 잘하기 위해 집중하고 고민해왔던 것 같습니다. 


 예쁜 여자 선배님은 확실히 저와는 다른 노선을 탔습니다. 항상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하였고 스스로 업무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남자 팀원의 도움을, 남자 상사의 약해짐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회식자리에서 빛나는 '여자'가 되셨습니다. 그런 '여자' 선배님을 윗 남자 상사들은 좋아했고, 예쁜 여자 선배님은 '젊음의 예쁨'을 무기로 회사생활을 해나갔습니다. 


 누구나 무기가 하나쯤은 있어야지요. 예쁜 여자는 회사에서 주로 '젊음'과 '예쁨'을 무기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쁜 것이 무기가 되면 정말 여러 가지 고비를 쉽게 쉽게 넘을 수 있고, 대다수가 남자인 한국 대기업 사회에서 조금 편하게 일할 수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무기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회사 생활을 짧게 하고 떠날 그녀들이라면 상관없지만, 젊음과 예쁨은 세월이 흐르면 그 아름다움에 녹이 슬어 무기로서의 장점을 잃기 쉽습니다. 조직 내에서 성장하며 꿈을 이루기를 원하는 우리 '직장의 여신'이라면 그 무기들은 아무리 갈고닦아도 세월 앞에서 그 날카로움을 잃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쁜 외모를 타고났다면 부모님에게 정말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직장 내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예쁜 외모 덕으로 다른 신입 사원들이 겪어야 할 성장통의 경험을 갖지 못한다면, 그만큼 뒤처지는 사람이 될 것임을 명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쁘지 않은 저에게 남자 선배들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타국 바이어가 오면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으로 의전을 나가야 했고, 바이어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시 회사로 들어와 회의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냈습니다. 반면 예쁜 여자 선배 국가의 의전은 다른 남자 동료가 대신해줬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집으로 먼저 귀가했습니다. 결과 보고서도 남자 동료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 동료들은 자신들이 대신해야 할 업무가 많아짐을 깨닫고 더 이상의 호의를 베푸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여자 선배님은 해외영업에 있으면서 의전 경험도 없고, 회의 결과도 빠르게 보고서로 만들어 내지 못한 그럭저럭 한 대리가 되었습니다. '예쁨'도 그 영롱한 자태가 예전에 비할 만큼은 아니게 되었고요. 후배 사원들이 어떻게 업무를 처리하면 좋을지 하는 물음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술을 마시며 예쁨을 칭찬하던 상사들은 이미 다 퇴직하고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순간 주니어 시절의 "예쁜이"는 이제 팀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선배도 후배도 더 이상 그녀의 일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상사도 더 이상 그녀 앞에서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그 선배님을 보면서 하루하루 직장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지혜롭게 쓰지 못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집니다. 분명 똑똑하고 총망받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텐데 예쁜 여자에게 베푸는 남자 동료들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조직 내에서 필요한 인재로 발돋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그래서 어쩌면 더 조직 내에서 편견에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예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악착같아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악착같은 예쁜 여자는 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예쁜 여자는 이렇게 직장에서 성공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제가 경험한 것에 비추었을 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예쁜 여자가 일도 잘하고 건강한 웃음으로 조직내를 빛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반면 예쁘지 않은 나는 적은 관심과 혹독한 평가로 인해 잔디처럼 자라났던 것 같습니다. 나의 외모가 싱그럽지 않아도 나의 말과 글 태도는 무기로서 점점 더 깔끔해지고 날카로워져 상사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쾌하게 뚫고, 후배들의 어리숙함을 능숙하게 덮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자' 특유의 부드러운 감성으로 남자 동료들을 위로하고 칭찬하며 그들의 따뜻하고 남다른 '동료'가 되었습니다. 


 저마다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아가지요. 저는 주위에 외모를 예쁘게 가꾸는 것에 몰두하며 '결혼 시장'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삼은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꿈'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삼은 기준과 목표에 맞추어 행동하고 준비하여 성공적인 결혼을 시작하는 '여. 자'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 여자의 삶이 직장에서의 성공보다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많은 어른들도 계십니다. 그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삶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고 목표였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지요. 그리고 저는 그런 목표를 이룬 친구들을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다만 저는 그런 여자의 삶보다 조직 내에서 내가 성장하고 사회에서 나의 몫을 다하여 성취감을 얻는 삶을 추구하고 있기에 그 말은 저에게는 틀린 말이 되는 것이지요.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 시장에서 성공한 예쁜 여자의 삶을 더 성공적인 삶이다라고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저처럼 당당하게 직장내에서 성장하려고 하는 여자를 '신기하게,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지 않습니다. 그 시선 마저도 틀린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크게 신경 쓸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나처럼 똑같은 삶의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직장의 여신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많은 '여자'들이 예쁜 여자 동료보다는 필요한 동료가 되어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쁜 여자들이 남들이 베푸는 호의에 멈춰있을 때 당신이 앞으로 성장하는 것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의 힘듦을 기꺼이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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