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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Feb 22. 2020

핀란드 학생에게 집은 공짜다?

핀란드 북부 학생 주거 재단, PSOAS

핀란드 북부지방 오울루에서 14개월의 생활을 했다. 이사를 한번 해서 2곳에서 살았다. 아래 사진은 지난 9월부터 6개월가량 생활한 나의 집이다.

입구와 주방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 정말 예쁘고 넓다. 흔히 말하는 북유럽식 디자인이다.

오븐, 스토브, 냉장고

아주 넓다. 이런 곳에서 지내니 삶의 질이 아주 높아진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집은 잠자는 곳이었다. 원래도 집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서울의 집은 참 답답하고 편하게 느껴지지 않아 더욱 밖으로 많이 나다녔다.

거실, 예쁜 액자들.

이렇게 거대한 집에서 사는 것을 보면 마치 건물주의 아들인 것 같겠다. 그러나 이 집들은 생각보다 매우 저렴하다. 우선 오울루는 핀란드에서 5번째로 큰 도시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항구 도시인 울산광역시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집의 가격이 저렴하다.

그럼에도 이 정도 규모의 집은 너무 비쌀 것이다. 그러나 이 집들은 모두 학생들을 위한 집으로, 전혀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다.


1. PSOAS


돈이 많이 없는 대학생들을 위한 황금 같은 복지 정책이다. 핀란드 최고의 복지 혜택 PSOAS를 소개한다.

PSAOS는 Pohjois-Suomen opiskelija-asuntosäätiö의 약자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Student housing foundation of Northern Finland, 핀란드 북부 학생 주거 재단 정도가 된다. 헬싱키 지역에는 HOAS가 있고, 각 대학 도시에는 모두 비슷한 주거 재단이 있다.


PSOAS의 주요 임무는 지역 학생들에게 저렴한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1971년 당시 오울루 대학교 학생연합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 재단을 만들었다. 현재 PSOAS는 5,500개 이상의 학생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오울루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주택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기관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단을 위해서 일하지만 이윤을 챙기지 않는다. 부동산 겸 건물주 집단이 이윤을 챙기지 않고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들을 위해 좋은 질의 아파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궁금해할 해당 집의 가격은 대략 430 Euro였다. 전기세와 수도세, 집 보험료를 더하면 450 euro 정도가 매번 나왔다. 룸메이트와 같이 지냈으므로 2개로 나누면 225 Euro, 한화로 매월 30만 원 내외의 금액이다. 보증금은 400 Euro, 50만 원으로 역시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다. 총 45 제곱미터로 13~14평 정도의 크기다.  


서울에서 보증금 50만 원에 월 6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는 아마 괜찮은 5~6평 내외의 집 정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2018년도 홀로 살았던 집의 조건이 거의 비슷했다.


핀란드에서 가장 비싼 헬싱키 지역의 경우 HOAS를 통해 계약하는 경우 평균 집의 가격은 1 제곱미터당 13유로다. 6평, 20제곱미터로 계산하면 260유로로 35만 원 정도의 금액이다. 보증금이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저렴한 가격이다. 그리고 집 관리를 아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들이 아주 깔끔하고 예쁘다.


해당 기관에서 부동산의 역할까지 함께 하기 때문에, 집을 발품하느라 고생하고 복비로 나가는 지출 역시 없다. 더 좋은 질의 집을 더 싼 가격에 더 편리하게 구할 수 있다.


2. PSOAS의 서비스


PSOAS는 단순히 집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무료 세탁실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끼리 서로 교류하도록 매월 영화의 날 등의 행사를 가진다.

나아가 핀란드인의 최애 장소 사우나를 무료로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으며, 파티룸 역시 예약을 통해 언제나 이용 가능하다. 핀란드인은 길고 긴 겨울 때문에 정말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한다. 사실 그래서 집안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쓰고, 많은 조명을 설치하는 것이다. (겨울에 햇빛이 정말 없다. 가장 짧을 때는 2시간 정도)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한국처럼 시내에서 약속을 잡아 만나지 않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파티룸을 예약해서 함께 요리를 하고 술을 마시고 보드게임을 한다. 사우나를 예약해서 사우나 룸에서 술을 먹으며 하는 사우나 파티 역시 정말 재미있다.





3. 화룡점정, 핀란드 학생에게는 무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게는 직접 해당사항은 없지만, 핀란드인의 경우 이 모든 서비스가 사실상 무료이다. 정확히는 해당 집세의 2/3 가량에 해당하는 금액과 생활비의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모든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보조해 준다. 더 비싼 집에서 사는 학생에게는 조금 더 많은 금액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PSOAS아파트를 통해서 거주하는 경우 가격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면 대략적으로 500~600유로, 한화로 60~80만 원 정도의 집세를 포함한 생활비를 받는 것이다. 여기서 30~40만 원 정도를 집세로 내고, 나머지 남는 30만으로 생활비를 사용하면 된다. 이 외에 딱히 돈이 들어갈 일은 없다. 대학은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핀란드 내에서는 최근 교육에 지원되는 금액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그래서 30만 원으로 어떻게 생활을 하냐고 볼멘소리로 불평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속으로는

허허 이 친구가 호강에 복이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긴 하네"정도의 공감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마무리한다. 실제로 핀란드의 물가를 감안하면 30만 원은 한 달 생활비로는 조금 부족한 금액이다. 인간은 원래 이미 가진 것에는 감사하지 않는 존재. 나야 등록금, 물가, 집세까지 모두 내야 하는 한국의 학생들을 생각하지만, 핀란드 학생들은 과거 혹은 그 옆 나라인 스웨덴(기업도 잘 되고, 나라가 요즘 잘 나감)이나 노르웨이(석유 때문에 더 부자)와 비교를 한다.


그래서 보통 여름 내내 Summer job을 가져 그 돈으로 생활을 하거나, stuendt loan(학생대출)을 받는다. 학생대출의 경우 이자율이 0에 가깝다.


4. 경제적 자립.


그래서 핀란드의 모든 청년들은 만 18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자립을 한다. 대학교, 전문대학교를 가거나 바로 취업을 하거나 심지어 당장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모두 자신의 집을 얻어 홀로 자립을 시작한다.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경우, 계속해서 일을 구하려는 노력을 증명하면 한 달에 약 900유로(한화 120만 원)를 실업수당으로 받는다. 무슨 실업 수당이 한국 웬만한 알바 풀타임 급여 뺨친다. 나 같으면 일 안 하겠다.  


5. 경제적 자립이 주는 효과.


그렇기에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대학을 가기보다는 Gap year를 가지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한다. 당장 눈앞에 경제적 문제가 전혀 없으니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더 고민하고, 사회나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부한다. 심지어 일을 하다가도, 이 일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쉽게 진로를 바꾸고 새롭게 도전한다.


1) 도전 정신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이 핀란드 청년들을 더 도전적으로 만들어준다. 2019년 가장 혁신적인 나라 2위로 선정되었다. (한국이 1위? 실제로 한국도 공학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나라가 맞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삼성, LG, 현대 등의 세계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제품들을 개발한 것을 생각하자.)

Bloomberg 2019, 가장 혁신적인 나라.

추가로 인구수 대비 스타트업 도전율 1위라는 통계를 가지게 되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포럼 중 하나인 슬러시 역시 헬싱키에서 열린다.  

혁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실패다. 실패해도 굶어 죽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안전띠,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번지점프대에서 안전하게 안전띠를 확실히 체크하고 떨어지는 경험은 스릴 있고 언젠가 다시 스토리로 써먹을 만한 멋진 경험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안전띠 없이 떨어지는 것은 그냥 자살 행위다.


한국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만 목을 매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다. 패기 있는 스타트업을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고 패기가 없어하며 혀를 끌끌 차기만 하는 어른들은 마치 다리 위에서 안전띠도 없는 청년들을 발로 툭툭 미는 것과 같다. (이 정도면 거의 미필적 고의로 살인하는 것 아닌가?)


2) 준수한 출산율


핀란드의 현재 출산 율은 1.65에 해당한다. 역시 북유럽과 비교하면 별로 높은 수치는 아니다. 한국의 출산율 0.98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숫자이지만 말이다.


이런 준수한 출산율을 가지는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https://brunch.co.kr/@geonahn/134

출산 정책, 육아휴직, 무료 교육, 경제적 육아지원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주거에 큰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많은 학생들이 연애를 하면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둘 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성인이고 함께 방을 사용하고 싶은 경우 PSAOS에서 신청을 할 때 함께 방을 신청하면 커플을 위한 Sudio house나 가족을 위한 Family house에서 지낼 수 있다. 쉽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기에, 본인이 정말로 성인이 되어 본인을 책임질 수 있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라진다.


그래서일까? 핀란드 북부지방에서는 쉽게 젊은 학생 부부의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둘 중 한 명만 석사과정을 하고 있으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신혼집을 구할 수 있다. 석사 졸업 이후에도 약 1년 동안은 PSOAS집에서 지속적으로 지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시작하는 신혼집을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다.


핀란드를 너무 천국처럼 묘사한 것이 아니냐고? 음 맞다. 핀란드는 날씨 정말 안 좋고, 할 것 없어 재미없는 천국이다. 당연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주거 문제에서는 정말 너무도 부러운 복지 정책을 가졌다.


주거는 사람의 안정성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주거가 불안하면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기 힘들다. 한국도 많은 세금을 교육과 대학생을 위한 주거지원에 사용하면 좋겠다. 결국 그들이 학업에 집중하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해야 한국도 힘을 한번 짜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 아닌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세정책이 선행되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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