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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Oct 14. 2024

MIT 박사과정과 가면증후군

MIT 뇌인지과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1달이 지났다. 뇌인지과학 프로그램은 3개의 연구실에서 로테이션을 먼저 돌아야 하는 시스템이라 지금은 연구실에 들어가서 연구실의 분위기는 어떤지, 교수님의 지도 방식은 나와 맞는지 경험하는 중이다.


박사과정에는 합격했지만, 연구실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내가 지금 로테이션을 하고 있는 연구실은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랩이다. 6명 정도가 앞으로 9개월에 걸쳐 자신의 로테이션을 각자 할 예정이라고 하고, 지금도 나를 제외하고도 다른 학생이 로테이션을 하고 있다. 교수는 지나치게 많은 학생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1~2명 정도를 올해에 받겠다고 한다. 물론 관심이 있다고 하는 학생들이 로테이션을 한 이후에 연구실에 들어가겠다고 결정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더 출중한 사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연구실에 가장 잘 맞는 학생을 뽑겠다고 하긴 하지만 박사과정 합격 이후에 또 경쟁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시 나를 잘 보여줘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있다. 


연구실에는 대략 8명의 대학원생과 5명의 박사 후연구원 (포닥, Postdoctoral)이 있다. 그 공간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언제나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MIT에서 1년 반이나 연구를 미리 했기에 박사과정에서 적응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새로운 연구실에 들어가니 여전히 어렵다. 연구실미팅을 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영어로 말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영 알아듣기 어렵다. 마치 제주도 방언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방언을 쓰는 상황이라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을 묻기가 참으로 쑥스럽다는 것이 문제다.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고 하지만 나는 뭘 모르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니 그 “바보 같은 질문”조차 만들어내기 어렵다. 출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도 어려우니 이것 참 속이 요란할 노릇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은 나같이 느꼈던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MIT 뇌인지과 학과에는 선배 대학원생들이 아주 기본적인 상담 교육을 받고 학생들이 고민이 있을 때 그 고민을 들어주는 단체가 있다. 가장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친구를 한 명 골라 넋두리를 했다. 그 친구는 참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탁월한 단체에 막 들어간 사람들 중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워낙 그런 사례가 많아 이름도 있다. 한국어로는 가면증후군 (Imposter syndrome), 직역하면 사기꾼 증후군이 되겠다. 

Imposter Syndrome : ‘the subjective experience of perceived self-doubt in one's abilities and accomplishments compared with others, despite evidence to suggest the contrary"
가면증후군: 증거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과 성과에 대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부족하다고 스스로 의심하는 주관적 경험  

가면증후군이란 주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고 자격이 없는 곳에 온 것 같다는 기분이다. 마치 내가 잘못 뽑힌 것은 아닐까 싶은 감정이기도 하다. 묘하게도 나만이 이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고,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이렇게 느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나 말고도 고통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을 한다니, 이것 참 내 안의 한국인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MIT박사과정과 가면증후군은 파전과 막걸리같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우리 연구실에서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이 들었던 친구, 잭과 이야기를 해보니, 잭도 이 연구실에 처음 들어오고 1년 동안은 외국어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잭은 벌써 이 연구실에 들어온 지가 3년이 지났고, 졸업이 가까운 대학원생들은 벌써 5~6년째 과학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으니 더 뛰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가면증후군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올라올 때를 위해 나만의 논리사고를 개발했다. 나는 MIT 뇌인지과학과 박사과정 선발과정을 거쳐 선발되었다. 무려 10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최종적으로 MIT에 온 17명 중 하나다. 서류뿐만 아니라 1박 2일 동안 캠프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나눴고, 6명의 교수와 30~40분씩 인터뷰를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평가를 해서 나를 뽑았다면 분명히 내가 MIT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MIT에 잘 맞는 인재가 아니라는 뜻은 MIT의 선발과정이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MIT가 뭐 그렇게까지 뛰어난 곳은 아니라는 뜻이니 나도 부담 느끼지 말고 그냥 행복하게 살면 된다.) 



혹시라도 가면증후군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적어도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나도 그랬고, 지금까지 많은 뛰어난 사람들이 가끔은 가면증후군을 느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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