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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건 Nov 10. 2024

MIT 박사과정과 좌절

MIT 뇌인지과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 간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MIT 박사과정에는 로테이션이라는 제도가 있다. 약 4~8주 동안 3~4개의 연구실에 들어가서 경험을 하며 이 연구실이 나와 잘 맞는 연구실인지 확인해 보는 제도다. 평균 5.9년이라는 긴 시간을 박사과정에 써야 하는 만큼 나와 잘 맞는 멘토와 잘 맞는 연구실 분위기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나와 잘 맞지 않는 곳에 있다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또한 지금까지 했던 연구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새로운 분야도 경험해 보라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보면 장점만 있을 것 같은 로테이션 제도다. 세계최고의 대학 MIT에서 만든 제도이니 분명히 그들도 많은 고민을 거쳐 결정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장점만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단점도 있다. MIT 대학원에 붙고 나서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나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말한 길을 걷기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더 재미있어 보이는 선택을 했다. 내가 찍은 점들이 더 옳은 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점을 찍으면서 이 더 재미있던 것은 확실했고 내가 생각하기에 더 매력적인 선택지들을 골랐다. 그리고 그 발자취들을 이어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그 그림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5~6년 동안 경제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당연히 자신감은 충만했고, 정말로 세상에 큰 임팩트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로테이션을 도는 랩을 선택할 때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나"의 선택을 잃은 것 같다. 처음으로 두 가지 랩을 선택할 때 가장 내가 하고 싶은 랩, 가장 나다운 랩을 선택하지 않았다. 가장 멋져 보이고 화려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랩 두 가지를 선택했다. 어찌 보면 내가 진정으로 좋다고 생각한 연구실이 아닌 남들이 보기에,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은 랩을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뛰어난 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정말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MIT 바이오 전체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는 F.Z교수의 연구실은 모두가 매주 70시간 넘게 실험을 한다. 그 정도의 동기부여가 있고, 그 정도의 노력이 있으니 당연히 겉으로 보이는 성과가 엄청난 것이다. 밖에서 보이는 성공에 매료되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는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이 눈에 보였던 것일까? F.Z 교수와 만나 30분 정도 인터뷰를 하고, 교수의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일한 Scientific Advisor와 또 한 번의 인터뷰를 한 끝에 결국 로테이션을 F.Z 교수의 연구실에서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로테이션에서 거절당하는 경우는 많이 들어보지도 못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거절을 당했으니 꽤나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선택한 연구실은 M.Z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얼마 전 HHMI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 의료 바이오 분야에서 연구자에게 주는 펀딩 중 가장 큰 규모)라는 곳에서 펀딩을 받으며 현재 커리어의 정점에 올라있다. 총 20명 정도의 연구자를 뽑았고, 7년 동안 $ 300M (한화로 무려 4200억) 규모의 펀딩을 받았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 보면 역시 이 연구실도 진짜 내가 관심 있어 보여서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그 화려함에 끌려 선택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로테이션이 한 달쯤 넘어갈 때 M.Z 교수가 아마 랩에서 오퍼를 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속상했다. 첫 번째 들어가려고 했던 랩은 시작도 못해보고 거절당헀고, 두 번째 랩은 로테이션을 끝내기도 전에 거절당했으니 좌절감마저 느껴졌다. 모두들 누군가가 더 뛰어나고 덜 뛰어난 것에 대한 것이 절대 아니고 연구실과 나와의 조합이 잘 맞는가에 대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두 번 연속 거절을 당하니 마음이 요란했다. 


우연히 <엔비디아 웨이- 이덕주>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했다. 성공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좌절을 딛고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이고, 그 회복탄력성을 얻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하고자 하는 기업가에게는 고통과 좌절이 오히려 축복이라고 까지 말한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면, 좌절이라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특권이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 않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을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좌절은 내가 성장하기 위해 너무도 소중한 영양소다. 

위 글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MIT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겪고 좌절했다. 그리고 그 좌절을 견뎌내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시도해서 결국 MIT에 들어올 수 있었다. 막연하게 MIT에 들어온 이후에는 절대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당연히 MIT에 들어오고 박사과정을 할 때에도 내가 원하는 게 있고, 그것이 적절하게 어려운 일이라면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강력한 깨달음은 성공뿐 아니라 실패에서 온다. 성공의 열쇠는 날아오는 탄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데에 있다. 똑똑한 실패가 무의미한 성공보다 낫다. - <스무 살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티나 실리그 

두 번의 실패에서 확실히 깨달음을 얻었다. 성공을 위해서는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서도 안되고, 화려함에 속아서도 안된다. 나와 진정으로 맡는 길을 찾아, 그 길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결국은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그 깨달음을 통해 이번에 들어간 연구실은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하는 곳이다. 다른 연구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정신질환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과 좋은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 글에서는 새로운 연구실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적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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