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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Sep 10. 2024

아무 생각없이 반려견을 입양한  사람의 우여곡절기

이제사 '생각'이란걸 하고 살기 시작했다.

깊이 잠든 새벽녘, 썩 유쾌하지 않은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다 못해 진동하며 후각세포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떠 주변을 살피니 새롬이 엉덩이가 내 얼굴을 향해있다. 녀석의 뱃속이 안 좋아 방귀를 뀌었나 싶어 잠결에 새롬이 배를 몇 번 마사지해주고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새롬이가 누웠던 자리에 엄지손톱만 한 똥덩어리가 바짝 눌린 상태로 이불 위에 붙어있다. 깊은 잠을 깨운 냄새의 정체가 방귀가 아니고 똥냄새였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들면서 새롬이의 항문괄약근도 약해진 몸과 함께 조절이 안되나 보다.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씩씩이의 마지막도 대소변과의 싸움이었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음식을 먹으면 필히 배설해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 새롬이가 걸을 수 있어 실내에서는 패드 위에(물론 패드가 아닌 곳에 배변을 보는 경우도 많지만), 밖에서는 산책하며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강아지들은 모두 시츄였다,

기간으로 보면 아직도 함께하는 새롬이와는 14년, 하늘의 별이 된 씩씩이와는 9년, 청아와는 3년을 함께했다.

내 삶의 후반기 1/3을 강아지들과 함께한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새롬이 마저 떠나보내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나는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내 인생 첫 강아지로 인연이 된 새롬이도 내가 첫 입양자가 아니었고 언니가 애견샵에서 구입해 1달 정도 키우다가 못 키우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 오게 된 경우였다. 당시 딸이 9살로 형제 없이 혼자 크는 게 안쓰러워 강아지를 키우면 좋겠다는 권유를 들은 터라 별생각 없이 새롬이를 입양했었다.


생명에 대해, 강아지에 대해 무지성인 사람이 4개월 아기 강아지를 집에 들였으니 새롬이 입장에서 우여곡절이 꽤 많았을 테다. 당시 내가 강아지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다. 그때만 해도 나는 강아지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또 사람처럼 병에 걸릴 수 있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비가(때론 무지막지하게) 들 거라는 사실도 생각지 못했다. 그냥 때 되면 밥 주고, 대소변만 치워줌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입양에 대해 충분히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새롬이를 입양했었다.


그러고 보니 20대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것도 새롬이 입양만큼이나 깊이 고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결혼 적령기라는 나이에 돌입하고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하니 휩쓸리듯 결혼했고, 결혼하고 나면 아이를 낳는 게 기정사실, 수순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인지라 나 역시 그렇게 자식을 낳았다.


참... 돌아보면 인생사 최고 중대한 결정들을 어쩜 이리 큰 고민 없이, 거침없이 , 겁 없이, 미련하게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인생 경험이 부족해 철이 없는 나이라 해도 그에 따른 책임은 피해 갈 수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책임감은 태생적으로 갖춘 탓인지 울며 불며 못살겠다 난리는 칠지언정 자식도, 반려견들도 결국 끝까지 책임지고 있다.


왜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는 걸까?

처음 인생은 경험 부족으로 망했다 치더라도, 두번째 인생은 절치부심하며 지난 삶에서 했던 실수는 절대 반복하지 않고,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선택은 백번이고 만 번이고 고민한 후 신중하게 결정할 텐데 말이다.


자식도, 반려견도 내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생존 자체가 불가한, 오로지 내 인격의 영향 아래에 있는 작은 생명들이었다. 지금 딸은 성인이 되어 내 보호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반려견 새롬이는 내 영향 아래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작은 생명들이 나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새롬이 마저 떠나면 내 삶은 다시 강아지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솔직히 아직은 상상도 안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허전하고 슬프다.


오늘 아침 이부자리에는 다행히 새롬이 똥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떠나간 씩씩이가 유독 그립다.

'씩씩 아, 잘 지내고 있니?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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