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효험이 좋은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바로 '시간'인 듯하다. 씩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196일째 접어들었다.
잊힐 것 같지 않던 마지막 이별의 순간도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져 간다. 병마와 싸웠던 고통스러운 기억은 망각해도 녀석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애교 실린 발짓. 녀석을 품에 안았던 따뜻한 온기와 감각만은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겨두고 싶은데 야속하게도 모든기억이 깡그리 희미해지고 있다.
씩씩이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많은 사람 중 나와 인연이 된 것도, 긴 시간 함께하며 기쁨으로 교감한 것도, 어떤 인간에게도 배운 적 없던 고귀한 사랑의 가치를 가르쳐준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 모른다고,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미물로 여겨질지라도 내게 녀석은 유일무이했고 존재 자체로 빛났다. 녀석은 떠났지만 함께했던 시간의 힘만으로도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 참으로 귀한 인연으로 여기며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다.
씩씩이가생각날 때마다사진 속 녀석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림을 그린다. 드로잉펜으로하얀 도화지 위에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화 물감을 입히고 덧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명암을 표현하다 보면 사진 속 씩씩이 보다 더 정겹고 사랑스러운 씩씩이가 되어간다.
세상에서 녀석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이기에 자타공인 씩씩이 전문화가라 하겠다. 그렇게 서툰 실력이나마 녀석을 그림 속으로 불러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그림 배우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림이 아니었다면 더 지독한 펫로스증후군에 시달렸을지 모르겠다.
이제와 돌아보니 씩씩이 덕분에 브런치에 글도 쓰게 되고 그림도 그리게 되었다.
누가 들음 코웃음 치겠지만 씩씩이는 정말로 나를 성장시켜 준 스승이다. 이게 진짜 인연이지 싶다.
사후세계는 아무도 모르기에 혹시나 환생이 존재한다면 씩씩이는 나에게 쌓은 공덕을 발판삼아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으리라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