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현 Oct 02. 2024

두 번째로 꿈에 나온 고마운 씩씩이

씩씩이와 함께 했던 느린 행복의 순간들

엊그제,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씩씩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유독 피곤한 날이었지만 녀석이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잠을 미루고 휴대폰 속 씩씩이 영상을 찾아볼까 고민하다 그리움이 통증으로 번질 것 같아 그냥 자기로 했다.


그렇게 잠든 그날 밤 씩씩이가 꿈에 나왔다.

씩씩이가 살아있던 평범한 여느 날처럼 집에서 함께 일상을 보내는 꿈이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녀석은 전용 방석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꿈에 나와준 씩씩이가 너무 반가운 의식의 작용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가수면 상태로 바뀌면서 지금은 씩씩이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꿈에서도 자각함과 동시에 한참 이른 새벽녘에 눈을 떴다.


정신없이 집안일을 할 때도, 티브이를 볼 때도, 실내 자전거로 운동을 할 때도,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을 때도 엄마를 볼 수 있는 집안 사정거리 어딘가에서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던 녀석.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한참을 바라보아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하지 않았을까?

그런 녀석과 무심결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한 공간에 머무르면서도 괜스레 혼자 둔 것 같은 미안함에 하던 일을 멈추고 씩씩이에게 다가가 한참을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들의 일상은 정말 평범했다.

씩씩이만을 위한 특별한 하루를 보낸 적도 없고, 근사한 이벤트를 해본 적도 없었지만 녀석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은은한 사랑과 평화로움의 향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함께 산책할 때면 녀석은 늘 나를 앞서 걸었다.

산책할 때는 주인이 앞서 줄을 잡고 반려견을 컨트롤해야 한다던데 나는 녀석의 엄마이자 친구였기에 녀석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거나 통제하고 싶지가 않았다.

앞서 가는 녀석의 꼬리는 한껏 힘이 실려 살랑거렸고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한편 용맹했다.

그런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도파민이 과다 방출되는지 행복한 기분에 덩달아 신이 나 걸었다.

녀석은 7kg의 강아지였지만 보디가드 마냥 참 든든했다. 녀석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씩씩이를 떠나보낸 지 오늘로 208일째다.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과 함께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이 재해석되고 있다.

행복은 꼭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만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간절히 원했던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픈 곳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특별하지 않은 순간에 내게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일구어가는

 일상의 시간들! 그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보다 귀한 행복이 깃들어 있다.

행복은 강렬하지 않아도 스며들듯 느리게 아주 천천히 차오르기도 한다. 그런 느린 행복의 순간을 자주 포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행복을 깨닫게 해 준 씩씩이에게 해줄 말이 있다.

"씩씩 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전 13화 씩씩 선생. 강아지가 스승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