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롬아, 잘 가
무려 14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새롬'이가 2024년 12월 2일, 아침 9시 20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난 9월 20일 '강아지와 주인이 함께 나이 들어갈 때'라는 브런치 마지막 글을 끝으로 새롬이에 관한 글을 쓰지 못했다. 또 새롬이가 떠난 후에는 브런치에 어떠한 글도 쓰고 싶지 않았다.
악화일로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새롬이를 돌보며 글을 쓸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었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내심은 디스크와 실명으로 견생의 반을 병고에 시달렸던 녀석의 고통을 지켜보며 나 또한 깊은 슬픔과 무기력의 상태를 오랫동안 지속해 온 까닭이었다. 병과 사투를 벌이며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녀석을 응원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새롬이의 지난한 투병 일기였던 '새롬 씨의 황혼견생은 아름다워'라는 글은 사랑하던 녀석을 추억하고 언젠가 마주할 이별의 슬픔을 다스리기 위한 나의 일상 기록이기도 했다. 이 연재글은 새롬이가 떠난 후에도 마감하지 않았기에 매주 월요일마다 브런치 연재글이 발행되지 않았으니 독자와의(얼마 있지도 않은 독자이지만) 약속을 지켜 글을 발행해 달라는 휴대폰 알람 메시지가 날아왔다.
그럼에도 새롬이에 관한 글을 차마 쓰지 못했던 건 녀석과의 이별 과정을 되새김하는 것으로도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별의 과정을 글로 옮기는 일은 심장을 저미는 듯한 고통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동반했고 난 그 두려움을 감당할 용기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새롬이는 누군가에게 그저 그런 강아지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큰 존재였다. 한낫 동물을 어찌 고귀한 인간과 가치를 견줄 수 있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새롬이의 죽음은 14년간 내 존재를 단단히 지탱했던 살점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처였다. 새롬이를 떠나보낸 후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파, 새롬이를 잃은 슬픔을 일상의 자극들로 대체하며, 중요하지 않은 가벼운 일과들로 분주하게 보내려 애썼다.
새롬이에 관한 마지막 연재글을 쓴다는 건, 상처 위에 놓인 거즈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우선 분주했던 일상을 멈추고 녀석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제 더 이상 녀석이 내 곁에 없다는 아픈 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기쁨을 누린 만큼 딱 그만큼의 상처를 남긴다.
녀석은 영영 내 곁을 떠나며 사랑의 상처를 남겨 놓았고 아직도 그 크기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랑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지문이 되어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 추억은 특히 험한 세상에 맞서느라 심장이 딱딱하게 굳으려 할 때 특효를 발휘한다.
마음 한편 숙제로 남아있던 녀석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짧게라도 써야겠다 결심하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내 거칠고 굴곡진 삶에 함께 해준, 온통 사랑이었던 녀석들!
청아, 씩씩이, 새롬아!
너네들 덕분에 처절하게 외로웠던 순간에도 엄마는 혼자가 아니었어.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는 거야. 그저 내 곁에 함께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란 걸 너네 덕분에 배울 수 있었어.
엄마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이 세상에 온 녀석들, 고맙고 너무너무 사랑한다.
너희들이 간 길을 엄마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 기쁘게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엄마는 더 신나게, 더 즐겁게 살 거야!
안녕 내 새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