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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1. 2024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히스토리

평범하지 않은 엄마와 제발 보통 엄마처럼 평범하기를 바랐던 딸의 이야기

엄마! 이제 우리 '엄마'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평생을 써도 소재가 고갈될 일 없는 흥미진진한 주제이자 꽁꽁 숨겨 평생 혼자만의 비밀로 묻어두고픈 나의 치부이기도 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래야만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내 삶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흩어진 내 삶의 조각 퍼즐을 맞추어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도 서로 이런 인간 유형인 줄 알고 선택해서 낳았고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냥 태어나 보니 나는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둘째 딸'이었다. 어쨌든 거두절미하고 엄마를 논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 반려견을 자식처럼 살뜰하게 돌보는 것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지 못한 돌봄과 사랑의 욕구를 충직한 강아지와 교감하며 든든하게 채우기 위함일지 모른다. 이것도 엄마가 현재의 내 삶에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마와 나의 관계를 연구하며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여 사랑하는 게 내 삶의 최종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 '방여사'는 딸 셋 중 둘째인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신다. 

객관적으로 팩트 체크를 해보자면 나는 사실 엄마의 기대만큼 똑똑하지도, 잘나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마치 종교적 신념처럼 한 치의 의심 없이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집스럽게 그렇게 믿고 싶어 하신다.


엄마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하늘이 두쪽 나도 옳은 성정으로 고집이 쇠심줄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분이다.


방여사의 인생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결혼생활 4년 만에 딸 셋을 연년생, 두 살 터울로 연이어 낳았다. 동생을 낳은 지 6개월 만에 아빠는 생때같은 딸 셋을 남기고 급작스런 감전 사고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하루아침에 젊은 과부신세로 신분이 전환되었다. 그때 엄마 나이 고작 30살이었다. 엄마의 사족을 붙이자면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아마 아들을 낳을 때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자식을 낳았을 거란다.


청천벽력 같은 아빠와의 사별로 반쯤 정신이 나간 엄마에게 친할머니는 아들 잡아먹은 팔자 센 며느리라는 낙인을 엄마에게 대문짝만 하게 찍으며 전면에 등장하셨다. 4년이라는 짧은 결혼생활 동안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 남편으로 인해 시어머니의 갖은 구박에도 이 악물고 휴화산처럼 버티던 엄마는 정신줄 놓은 김에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리며 악을 쓰며 대항했고 그렇게 난리통에 고부갈등도 본격 점화 되었다.


두 여자가 끔찍이 사랑했던 남자주인공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님에도 두 여자의 사랑싸움은 아빠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어 활화산처럼 활활 타올랐다.

4살(언니), 3살(나), 6개월 된 동생을 두고 세상을 떠난 아빠의 황망한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친할머니와의 난타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쯤에서 당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던 우리 친할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고약하기로는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위인으로 할머니에 관해 전해 들은 가장 경악스러운 일화가 있는데 겨울에 춥다는 핑계로 아들 며느리방으로 들어와 신혼인 아들 며느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잔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50대의 젊은 과부였던 친할머니 입장에서 이해하자면 어디서 굴러들어 온 낯선 여자인 며느리가 엄마밖에 모르던 사랑하는 아들의 관심을 빼앗아갔고 결국 질투가 폭발하여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상실한 채 올가미 시어머니로 빙의되어 그런 기행을 벌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 무지막지한 일화를 끝으로 전혀 교류조차 없던 친할머니에 관해서는 어느덧 드라마 속 악역 인물쯤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또 엄마의 올가미 레퍼토리를 직접 내 눈으로 본 적도 없거니와 그런 고부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니 그저 매번 되풀이되던 엄마의 신세한탄 한 소절로 여기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 핍박받던 주인공 며느리였던 엄마는 3년간 친할머니와 지루한 재산 소송 전을 벌여야 했고, 그 악연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라면서 친할머니에게 품은 엄마의 한과 분노 섞인 넋두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어쨌든 친할머니도 나의 핏줄이기에 할머니의 항변도 한 번쯤 들어보고 싶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머니를 포함한 친가 가족들과 왕래가 없어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할머니 측 변론은 들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감정적인 부분을 배제한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할머니 또한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했다.


아빠가 떠난 후 글로 쓰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긴 서사를 장식하고 엄마는 딸 셋을 데리고 시가에서 분가했다. 그 후 젊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엄마는  엄마 표현에 의하면 '책 10권'을 써도 부족할  정도의 지난한 고생을 하셨다.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들과 분위기가 조성되는 날에는 지독히도 고단했던 지난날의 삶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며 말 끝에 늘  '내가 많이 배워서 글을 잘 썼다면 내 고생했던 삶을 수기로 썼을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셨다. 자신의 언어구사력과 문장력의 한계를 의식한 듯 수기는 시도조차 안 했지만 그간 자신이 겪은 삶의 고초를 누군가 알아주길 간절히 바랐다.


공교롭게도 엄마는 시가뿐 아니라 외가에서 조차 부모복이 없었다. 외갓집은 그런대로 부농으로 불렸지만 외할아버지는 아들 선호사상의 선두주자로 딸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가까이서 큰딸이 올망졸망 어린 딸 셋을 키우며 갖은 고생을 해도 농사지은 곡식과 김장철 김치는 모두 아들들 차지였고 엄마의 가난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친할머니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였듯이 친부모에게도 서운함과 서러운 분노를 자존심 하나로 삭히셨다. 하지만, 그 서러운 분노가 터져 나오는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나 행사 때였다.


엄마는 그럴 때만 되면 이성의 끈을 풀고 술을 드셨다. 술을 드신 후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나 보란 듯 아기처럼 서럽게 엉엉 우셨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은 나는 외가 식구들의 멸시가 담긴 따가운 눈초리를 대신 맞으며 수치심이란 감정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사실 내가 충격을 받은 진짜 이유는 엄마가 우리들 앞이 아닌 온 가족들이 다 모인 곳에서 우리들 앞에서 보였던 망측한 주사를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삶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늘 위태로웠다. 그런 엄마가 인생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술이었고 불행히도 술 마신 후 주사의 대상은 바로 우리 딸 셋의 차지였다.

나는 이런 엄마를 원망했지만 한편 불쌍했고 이런 엄마가 너무 미웠지만 한편 너무 사랑했고, 무의식에서부터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아 용을 써댔지만 쇠심줄 같은 고집과 못 말리는 통제 욕구와 단순함은 딱 엄마를 닮아 있었다. 술을 못 이겨 쓰러져 잠든 엄마를 보노라면 혹시 엄마가 이대로 죽어 고아가 되면 어쩌나, 가난한 형편 탓에 험하고 위험한 집수리를 도맡아 하던 엄마를 보며 혹시 아빠처럼 엄마도 사고로 죽는 건 아닐까 마음 한편에 늘 불안이 자리했다.


이때부터 싹을 틔운 불안은 내 평생 어르고 달래며 구슬려야 하는 자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 삶의 화두였던 엄마에게 어린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엄마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선의의 거짓말 포함)하는 것이었다.


최근 엄마는 내 기억에는 없는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셨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 조금만 더 고생해서 우리 키워줘. 내가 커서 효도할게'


엄마 의도는 어릴 때부터 속 깊은 든든한 딸이었다는 취지였지만 철부지 어린아이가 엄마를 격려하며 어떻게든 한가닥 희망이라도 주고 싶어 애쓴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러웠다. 그렇게 '나'라는 딸은 힘든 삶을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엄마에게 희망이자 구원이자 자부심이 되었고 딸 셋 중 유일하게 엄마의 희망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안은 동시에 내 삶의 주도권 일부를 엄마에게 양도하며 내 손으로 직접 족쇄를 채우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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