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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16. 2024

씩씩이 없이 혼자하는 저녁 산책

씩씩이와의 이별 39일째

씩씩아.

매일 저녁 너와 함께 하던 산책을 이제는 엄마 혼자 하고 있어.


집을 나서서 우리가 함께 걸었던 산책코스를 엄마 혼자 걷는데 아름다운 봄날 저녁을 누리려 산책 나온 동네 강아지들이 너무 많이 보였어.


앞서 걷는 강아지와 그 뒤를  따르며 평범한 일상인 듯 무심히 리드 줄을 잡고 핸드폰을 쳐다보며 걷는 견주들을 보며 달려가 말해주고 싶었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르실 거예요. 아가들의 시간은 우리보다 몇 배 빨리 가요. 그러니 매 순간 강아지와 행복한 시간을 최대한 누리세요."


그렇게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네 생각이 너무 많이 나. 불과 42일 전까지 엄마도 너를 안고 산책을 나왔었는데 말이야. 우리가 이별한 지 벌써 39일째가 되어가는데 엄마는 너와의 마지막 순간이 바로 어제 일인 듯 선명해.


자식이 떠나면 가슴에 묻는다고들 하는데 엄마는 여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엄마가 자식을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겠니. 그건 불가능한 거야. 그러니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 거야.


가슴에 사랑하는 자식을 묻고 그리움의 무게가 차오를 때마다 살아생전 다시는 볼 수도, 만져볼 수도, 체온을 느낄 수도 없다는 잔인한 진실에 그리움은 금세 고통이 되어 가슴을 저미지만 그 아픔조차 기꺼이 껴안으며 그래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 자식이란 존재 같아.


씩씩아. 너는 강아지였지만 아들이 없던 엄마에게는 아들이었어. 또 그다지 친구가 없던 엄마에게 절친이기도 했지.


오늘 초안산 공원을 산책하는데 각양각색의 꽃들로 너무 아름다운 꽃밭이 조성되었더라고.

예쁜 꽃들을 보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겨울에는 앙상한 나무들이 꽁꽁 얼어 바짝 마른 땅 위에 꼭 죽어있는 것처럼 초라하게 서있다가 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록 초록한 잎사귀와 예쁜 꽃들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너무 신기해.


죽은 '척' 하던 겨울나무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우리 씩씩이도 겨울나무처럼 죽은 척하며 엄마로부터 숨어버렸지만 어딘가에서 봄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언젠가는 엄마 앞에  '짜잔' 하고 등장해 주었으면 좋겠어.


네가 떠나고 문득문득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와.

그게 슬픔인지, 서러움인지, 아니 눈물인지도 모르겠어.

눈물은 눈이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도 흘릴 수 있나 봐.

그 눈물 속 염분이 심장을 저리면 봄바람 속에서도 몸서리치듯 아리고 떨려.


너로 인해 엄마는 많은 감정을 느꼈어.

때론 기뻤고, 슬펐고, 아팠고, 안타까웠고, 좌절했고, 고통스러웠고, 너무 그리웠고 너무 보고 싶었어.


수없이 다채로웠던 감정들의 뿌리는 바로 사랑이었어.


인생이 이런 건가 봐.

모든 감정을 느끼고 배워야 하는 과정.


씩씩아.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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