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현 Apr 25. 2024

씩씩이가 주고 간 세 가지 선물

최종 미션은 남은 인생 즐겁게 살기

씩씩이가 떠나며 세 가지 귀한 선물을 주고 갔다.


첫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를 포함한 친인척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따뜻하게 나를 안아준 어른도 없었다. 사랑을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고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는 의미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젊은 시절 몇 번의 연애를 해봤지만 그때도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니 나도 좋아해 주었을 뿐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몰랐다.


그러다 온 우주에서 나만 바라보고 나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두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내 딸과 이제껏 나와 함께 한 세 마리의 강아지들이었다. 특히 수명이 짧아 내 손으로 떠나보내야 할 운명에 놓인 강아지들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자식같이 키운 강아지들이 병들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온전히 감당하며 애끓는 심정으로 사랑의 돌봄을 지속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사랑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인간의 100년에 걸친 생로병사를 견생은 15년 압축판으로 짧지만 강렬하게 살다 간다. 동물이지만 한 생명의 삶을 지켜보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짧은지,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둘째, 인생은 재미있게 살아야 함을 알려주었다.
2023년 3월 8일 아침 씩씩이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인생 재밌게 살자'였다. 깊은 슬픔의 순간에 왜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남은 삶 동안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씩씩이가 알려준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삶의 가치는 나이 따라 변화했다.  


20대에 추구했던 삶의 가치는 '열심히 살자'였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무엇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착각했다. 게으름은 '악'이고, 열심히 하는 것은 '선'이라 여기며 열심히 살아야 죽을 때 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덕분에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작은 성취도 맛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공허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때부터 열심히 사는 것만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30대는 열심히 살자가 아닌 '잘 살자'로 삶의 가치를 수정했다.

이렇게 삶의 가치를 수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꿈'이었다. 꿈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쓰고자 한다.

꿈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로 열심히 산 것과 잘 산 것은 엄연히 다른 개념임을 깨달았다. 이전의 나는 열심히 사는 게 곧 사는 거라고 단단히 착각했었다. 


나는 이제 '잘' 살고 싶었고 그 기치에 맞게 삶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우선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내가 그토록 원했던 따뜻한 사랑을 가족들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베풀기 시작했다. 방학이면 지방에 살고 있는 조카들을 집으로 초대해 서울 투어를 시켜주거나 다양한 체험들을 함께하며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쌓았다. 엄마에게도 낯 뜨거워 말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표현도 자주 하기 시작했다.


50대를 앞둔 지금의 삶의 가치는 씩씩이가 알려준 대로 '즐겁게 살자'이다.

지금 하는 글쓰기도 즐겁게 살기 위한 행동이다.

또 주말마다 경치 좋은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니며 힐링하는 것도 즐겁게 살기 위함이다.

앞으로 남은 삶은 '즐겁게 살기 위한 여정'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씩씩이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은 바로 '브런치 작가'이다.

나는 씩씩이가 투병했던 마지막 8개월의 시간을 블로그에 씩씩이 방광암 투병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사실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목적보다는 사랑하는 녀석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렇게 쓰인 씩씩이 투병기를 통해 브런치 작가가 되는 영예를 얻었고 씩씩이가 아니었으면 블로그에 글을 이유도 없었을 테니, 브런치 작가 역시 씩씩이가 주고 간 선물 임에 틀림없다.


이전 22화 사랑과 삶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떠난 내 아들 씩씩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