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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25. 2024

사랑과 삶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떠난 내 아들 씩씩에게

48일간의 이별

씩씩 아.

잘 지내고 있니?


가끔씩 솟구치는 그리움에 네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곤 해.

엄마 목소리가 그곳까지 들리니?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우리 씩씩이는 엄마 목소리를 구분해 내고 듣고 있을 거야.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엄마만 바라본 내 아가.


다시 생각해 봐도 네 생애 전 과정을 함께 했던 경험은 정말 특별했어.

너를 처음 만나 품에 안은 날, 우리 집에 첫발을 내디딘 날, 집에 온 첫날부터 장난감 인형을 새롬이와 동시에  입에 물며 기싸움하던 일, 매일 일상 루틴이었던 엄마와의 산책, 방광암으로 아팠던 8개월의 시간, 하느님 품으로 떠난 3월 8일 아침 7시 27분까지 모든 순간이 엄마의 마음속에 뚜렷이 남아있어.


너와 함께 한 9년의 시간은 엄마를 변화시켰고, 그 시간은 엄마 인생 통틀어서도 매우 특별한 삶의 구간이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엄마도 너를 이토록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고, 네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너의 귀여움을 감당하지 못해 저절로 장난스러운 애교가 네 이름 안에 가득 실렸어. 그냥 네 존재 자체가 사랑이었어.

네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애교 부리지 않아도, 개인기를 부리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 자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사랑이었단다.


지금도 너를 품에 안고 네 몸을 쓰다듬을 때마다 전해졌던  부드러운 털의 감촉과 네 몸의 온기가 아직도 엄마의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눈을 감고, 너를 안았던 순간을 상상하면 여전히 엄마의 감각에 네가 새겨져 있단다.


네가 떠났던 마지막 순간은 엄마에게도 고통의 순간으로 사실 떠올리고 싶지가 않아.

하지만, 그 순간 깨달았던 통찰만은 너무나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어.


네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을 때 엄마는 정말 뜬금없이 '인생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어.

최악의 슬픈 순간에 왜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을까.


그때의 감정을 반추하면 강아지였지만 인간과 교감하며 모든 감정을 느끼고 표현했던 소중한 생명이었던 네 죽음을 지켜보며 엄마의 마지막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걸 알았기에  삶이 너무 허무했던 것 같아.  


엄마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네가, 네 삶이 가을을 맞은 나무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키워난 잎사귀를 낙엽으로 떨구어 내듯 네 몸을 떠났을 때, 엄마 역시 언젠가는 잔인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소멸하겠구나 싶어 허망하고 허무했어.


네가 떠난 후, 굳어버린 네 몸만 마치 껍데기처럼 남아버린 당연한 현실이 숨이 붙어있는 모든 생명체라면 언젠가 겪어야 할, 아니 겪어내야만 하는 숙명에 놓였음을 엄마의 두 눈으로 똑똑이 보아 버린 거지.


한 생명의 삶이 이토록 아무것도 아니었나,

우리의 삶이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증발하듯 사라질 수 있는 건가.


엄마는 사실 이 문제를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어. 고민해도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남은 삶 재미있게 살아야지.

이 강렬한 통찰만이 엄마가 알게 된 유일한 답이야.


엄마에게 사랑과 삶에 대한 의문을 남겨주고 떠난 내 아들 씩씩아.

고맙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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