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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pr 26. 2024

우당탕탕 대 환장 이사

엄마와 이사 그리고 불안의 연결고리

난 3월 28일은 엄마의 이삿날이었다.

6년 전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고향을 떠나 천안으로 이사한 후 두 번째 이사이다.

이번 이사는 매우 특별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같은 평수이지만 전세가 아닌 매매로 집주인이 되어 이사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방이고 소형평수이다 보니 집값은 1억 이하로 저렴했다.

엄마는 20여 년 전 주식으로 전 재산을 잃고 잠시 낙담했으나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발동시켜 그럼에도 자신이 살아있는 게 어디냐며 심기일전해 식당 일, 밭 일, 노인일자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그 결실로 드디어 집을 매수할 수 있게 되었다. 매수한 집은 어느 정도 수리가 되어 몇 가지만 추가 수리한다면 엄마가 살기에 딱 좋은듯 했다.


나는 조금 부족했던 집 매매 비용과 추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고 엄마와 함께 이사를 진행했다.




시골에서 한 집에만 40년을 살며 이사를 해본 적 없던 엄마에게 '이사'란 국가적 행사 못지않은 일생일대 대사건이었다. 대사건답게 이사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치 않았다.


일단 기존 전셋집의 주인과 이사를 협의하는 과정부터 삐걱삐걱 스트레스 촉발 기운이 올라왔다.

'보통'엄마가 아닌 엄마의 손에는 망치, 가위, 칼 등의 생활 무기가 기본 장착되어 있는지 엄마의 손만 거쳤다 하면 물건들이 힘 한번 못써보고 고장 나기 일쑤였고 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사히 이사 나가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첫 단계로 집주인과의 마찰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사실 6년 거주하면 아무리 수리된 집이라도 스크래치 정도의 손상은 감안해야 한다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주장하지만 집주인 입장은 또 다르다. 게다가 엄마 손에 장착된 무기들로 인해 싱크대 볼부터 렌인지 후드, 거실과 방을 분리했던 미닫이 문은 이미 망가져 있는 터라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며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자비로운 집주인과 몇 번의 협상 끝에 싱크대 볼과 레인지 후드만 교체하고 이사 나가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두 번째는 이사업체 선정 난관이었다.

엄마는 견적을 위해 방문한 몇 군데 이사업체 사장님들과 개별 딜을 시작하셨다. 당신이 직접 웬만한 가재도구들은 이사 갈 집에 미리 날라다 놓을 테니 이사비용을 깎아달라고 한 것이었다. 사장님은 더 이상 엄마와 대화가 통하지 않자 딸인 내게 전화를 걸어와 사다리도 써야 하고 인부들 인건비도 있어 더 이상은 깎아주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나 역시 엄마에게 최근 인건비도, 물가도 올라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며 계약금을 송금해 버렸다.(하지만 엄마는 이사를 몇 주 앞두고 더 저렴한 이사 업체를 찾아내어 계약업체를 변경해 버림)

그러면서 절대 살림살이를 미리 나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보통'엄마가 아니지 않나.

이사를 앞두고 비어있는 새 집에 가보니 웬만한 살림살이는 이미 다 옮겨져 있었고 이사 업체는 정말 부피 큰 가전제품 정도만 옮겨줌 될 정도였다. 큰 액수의 이사비용을 지불하면서 왜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하는지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는 다그치는 내게 운동삼아 조금씩 옮겼다면서도 혹시 이사비용을 깎아줄지 아냐며 헛된 본심을 드려냈다.

 하............... 엄마................. 제발.................. 말문이 막혔다.




세 번째는 리모델링 수리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엄마의 노년을 보내게 될 집을 깔끔하고 안락하게 수리해주고 싶었다. 이미 대부분 수리가 되어 있는 터라 실크벽지 도배, 베란다 샤시, 붙박이장 정도만 추가 수리 함 될 것 같았다.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해 의뢰를 마치자 비용을 알게 된 엄마는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샤시 치수 측정을 위해 집을 방문하겠다는 분께 샤시 교체 안하기로 했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변덕에 변덕을 부리며 내 속을 뒤집어 놓은 다음에야 어렵사리 모든 수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엄마는 내 돈을 쓰게 하는 게 미안하고 아까워서 그랬다지만 나는 미안하면 제발 딸이 해주는 대로 고맙게 받기만 하라며, 내가 내 돈 쓴다는데 엄마가 무슨 상관이냐고 소리를 버럭 질러 버렸다. 이사 한번 더 했다가는 내가 스트레스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돈을 쓰는 것조차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엄마를 보며 일면 평생 돈 때문에 시름하며 돈 걱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탓이라 측은한 마음으로 이해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에 걸쳐 자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오로지 돈과 자신의 입장만 고수했던 독단적인 모습이 나이가 들어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싶어 미웠다.




경사스러운 이사를 앞두고 설레고 기쁜 마음은 휘발되어 버린 채 한바탕 홍역을 치르며 파국을 맛본 후에야 다음날 엄마는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사과를 듣고 나서야 내 마음도 누그러질 수 있었다.


"엄마, 제발 딸이 효도할 기회를 주세요.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전 09화 엄마와 나는 '따로' 또 '같이'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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