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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팬케이크 거부권 행사

사소한 거부 하나가, 관계의 시스템을 흔들 때

by LINEA
(주)가정의 운영은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팬케이크가 사라진 날, 나는 깨달았다.
구조가 단단해도, 마음은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브런치로 남편이 팬케이크를 굽곤 했는데, 오늘은 부엌이 조용했다.

나는 물었다.
“오늘은 팬케이크 안 해?”
남편은 대답했다.
“팬케이크 만들기 싫어.”

남편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귀찮아졌어”라며 말을 끊었다.

순간,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거부’에 가까운 말투였다.
메뉴 거부 속 숨은 메시지가 확실히 있었다.

‘내가 뭘 놓쳤나?’
기억을 더듬던 중,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인스타그램 친구 신청 목록을 정리하다가,
무심코 남편의 요청도 삭제했던 것이다.


저녁쯤 조심스럽게 떠봤다.
“혹시… 인스타… 때문이야?”
남편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네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았어.”
담담한 어투였지만, 꽤 진심 같았다.
나는 놀랐다.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SNS가, 그에게는 ‘관계의 중요도’였던 것이다.

남편이 전에 몇 번 “인스타 친구 추가 안 해줄 거야?”라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마다 나는 “이따 할게” 하고 넘겼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싶었으니까.

서운함이 말로 표현되지 않고, 팬케이크 거부로 돌아온 거였다.

“미안. 실수였고, 의미 없었어.”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응. 그냥 서운했어. 근데 말하기가 좀…”
“그랬구나.”

말로 표현이 서툴러서, 팬케이크로 감정을 말하는 사람.
무심코 삭제 버튼을 눌러놓고, 그 의미를 몰랐던 사람.
둘 다 서툴렀다.


"앞으로는 그냥 말하자. 팬케이크 말고."
"... 그래."

다음 주말, 팬케이크가 다시 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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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말로 풀 수 있는 일은 대화로 해결했고,
작은 오해도 가볍게 정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조가 잘 작동할 때’의 이야기였다.
관계에는, 논리도 구조도 통하지 않는 시기가 있다.
예측이 무력해지고, 감정이 모든 생각을 덮어버리는 순간.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번엔 남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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