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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운영과 존중의 경계

효율과 배려 사이에서, 오늘도 협의 중

by LINEA
(주)가정의 구조 자리를 잡자,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다뤄야 했다.
갈등은 사건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였다.


관점의 차이


차이는 늘 일상 속에 있었다.
다만, 그때까지는 그걸 차이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싱크대 안은 말끔했다.
그런데 옆에 행주, 조리도구, 그리고 설거지 중 생긴 물기가 그대로 있다.
내 눈에는 끝이 안 났는데, 남편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다.

“설거지 안 끝났는데 왜 도망갔어?”

남편은 “허이참…” 하며 다시 부엌으로 온다.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그런데 늘 빼먹는 게 있다.

이런 상황은 남편의 둔감함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시야의 차이라고 깨닫게 된 건 얼마 뒤, 엄마 집에서였다.

“그릇 좀 식탁에 가져다 놔.”
나는 진짜 그릇만 가져다 두었다.
엄마는 그걸 보더니, 이해 못 하냐는 듯 말한다.
“그릇만 가져다 두랬더니 왜 그릇만 가지고가? 숟가락, 젓가락도 놔야지.”
“말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요.”
“아니, 그걸 말을 해줘야 해?”


순간 멈칫했다.
엄마의 말투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나는 엄마의 시스템을 몰랐다. 그래서 시키는 것만 한 것이다.

그제야 이해됐다.
남편도 내 시스템을 몰랐을 뿐이었다.

나도 엄마의 ‘전체 시야’를 몰랐듯이.


결혼의 많은 오해는 의도가 아니라 인지 차이에서 생긴다.
상대가 둔한 게 아니라, 구조의 맥락을 모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깨달음을 알렸다.

"나, 엄마한테 거울치료* 당했어."

(*엄마의 모습을 통해, 인지하지 못하던 나의 행동을 보게 된 것이다.)

남편은 말했다.
“이제 좀 나를 이해하려나?”


그날 이후 나는 갈굼 대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렇게 두면 다른 그릇을 못 놓아서 그래.”
“여기까지 하면 물기 고인 곳이 없어져.”


이유를 붙이면 잔소리가 아니라 공유가 된다.
남편은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이유를 듣고 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남편이 싱크대 밖의 것들도 챙기는 날이 조금씩 늘었다.

(여전히 가끔 빼먹지만.)


관계는 그렇게 조금씩 업데이트된다.

서로의 질서를 알아가면서.

어쩌면 결혼이란, 맞추기보다 맞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관계의 갑을 구조


어떤 관계든 둘 이상이 함께 있으면, 힘의 차이가 생긴다.
51:49처럼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주)가정에서는 그 1의 힘이 내 쪽으로 기운다.
밀이나 임기응변은 내가 더 능숙해, 대화의 주도권이 나한테 있다.

처음엔 그게 단순히 성향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말의 속도가 의견의 세기로 보일 수 있다는 걸.
내가 더 빠르게 설명하고, 더 길게 말하는 동안 그는 한발 물러나 있었다.


이후로는 대화의 양보다 대화의 틈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정리하기보다, 그를 기다려준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면 남편은 자기의 말을 꺼낸다.

“요즘 좀 피곤해.”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어.”


남편은 이런 말을 잘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짧게라도 감정을 말한다.

피곤하다고, 괜찮다고, 조금 힘들다고.


말을 듣는다고 꼭 해결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그걸 보면서 깨달았다.
결혼은 한 사람이 이끄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완성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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