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떠오르는
키워드 중 단연 큰 부분은 “돈”이다.
그래서 나는 돈 이야기에 대해
꽤나 민감한 어른으로 자랐다.
대부분의 나의 어린 시절은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환경 속에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무능했던 아빠가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은
“돈돈돈 하지 마라, 돈에도 눈이 달려서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없다가도 있는 거다 “와 같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으로서는
참으로 무책임했던 말들 속에서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나는
상반된 두 가지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하나는, 나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돈에 집착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돈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난함에서 벗어나야 했다.
가진 것 없는 내가 가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유일한 선택지는 공부뿐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예체능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내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었다.
그래서 냅다 뛰었다.
어디로 뛰는지 생각해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냥 누렇게 떠버린 벽지와
담배 쩐내가 나는 집에서 벗어날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봤고
그 뒤로도 이어진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서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내게는 너무 당연한 선택이어서
당시에는 힘이 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그놈의 돈돈돈 하는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달린 결과
나는 결국 돈돈돈 하는 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능력한 아빠가 산더미처럼 불려놓은 사채빚도 갚고, 누렇게 뜬 벽지와 담뱃불 자국이 난 마루도 교체했다.
필요한 가전과 가구가 있으면 돈 생각하지 않고 척척 결제해 집으로 보내는 어엿한 K장녀가 될 수 있었다.
그다음은?
그토록 지겹던 돈돈돈 하는 소리에서 벗어났는데도
나의 불안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십여 년이 지난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돈돈돈, 우리 집을 돈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는 십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작 나 스스로를 방치했다는 걸.
오늘 상담에서 선생님이 해준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젠 그렇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태까지의 인생이
비록 내 의지와는
상관없게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냅다 달린 시간덕에
지금부터의 인생은
내 의지대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나에게 결핍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달릴
힘을 줌과 동시에 나를 잃어버리게 했고,
나를 여기까지 끌어다 놓아
이제는 온전히 나를 돌아볼 여유를 가져다줬다.
이게 웃을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다행인 건
어쨌거나 지금은 나는 나를 살펴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