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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에 비해 성숙하다는 말

by Slowlifer

또래에 비해 성숙한 것 같다는 말,

어릴 땐 그게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주변의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도 내게 그렇게 말했다.


때로는 애어른 같다는 말로

때로는 성숙하다는 말로

때로는 속이 깊다는 말로

때로는 철이 빨리 들었다는 말로.


내가 가지고 자란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

나의 성숙함 또한 나의 선택함과는

무관했다는 사실을

세상이 말하는 어른의 나이를 가지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성숙함으로

남다른 공감능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엔 마냥 철없을 수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보여 어린 내가 안쓰러워


이제 나는 나의 아기가

철없을 수 있을 땐 마냥 철없길

어리광 부리고 떼쓸 수 있을 땐 맘껏 떼쓰길

적어도 엄마에게는

언제이건 아기처럼 굴 수 있기를


언제건 그런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부모가 되길 희망하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태계일주 3을 보다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셰르파 일을 하는

18살의 남자아이를 보며

기안이 짠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나의 어린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참 많을 나이에

이미 많은 걸 포기한 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어릴 적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어렵진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 감히 감당하기도 버거울

그 무게가 짐작이 가서 마음이 아렸다.


아마 그 감정은 어린 나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우연히 틀었던 유튜브의 한 정신과 의사가

20-30대에는 걱정할 것들이 별로 없으니

너무 걱정을 많이 하지 말고 살라고 했다.


40대인 자기는 걱정거리가 많다고 했다.

부모님도 아프시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괜스레 마음에 심통이 올라왔다.


30대인 나도 진작에 여전히 젊은 나이의

병든 아빠를 마음에 늘 품고 있는데

그 말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항상 내 인생은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나도 남들 박자에 맞춰

그렇게 어리광 부릴 거 다 부리고

다 커서도 부모에게만은

여전히 난 “전업 자식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막둥이 시동생처럼 살았다면 어땠을까.


남들 사오십대에나 겪는다는

병든 부모님을 품어야 하는 일을

삼십 대 중반에 먼저 겪는 건

과연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없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 환경 덕에

바득바득 열심히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남의 감정을 더 잘 캐치할 수 있는 공감력 높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남들보다는 조금 빠른 아빠의 시간 덕에

그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불치병에 걸려

나의 소변도 내가 조절하지 못하고

나 스스로 한 발짝을 옮길 수 없고

수저를 이용해 스스로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자체가

너무나 두려운 일이 될 수 있고,


그 모든 달갑지 않은 일들이

나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지금을, 오늘을 소중히 살아내야 한다는 걸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먼저 맞는 매가 나쁘지만은 않은 것일까.


여든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종종걸음으로 힘겹게

지하철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데도

그럼에도 혼자 거동을 하시는 그 모습이

그저 건강해 보이기만 하고

겨우 60대 중반의 아빠의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시큰거리는 나는

성숙하게 자랐다는 말로만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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