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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엄마랑 별로 안 친한데요

딸과 엄마

by Slowlifer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딸과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뜻일 텐데 우리 엄마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엄마와 조금은 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생각했는데 그간의 대면대면했던 세월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리 없었다.


그랬다.


우리 집은 오히려 아들이 엄마와 더 친하고, 딸인 내가 아빠랑 더 친했다. 어릴 때부터 난 그랬다고 한다. 아빠랑 내가 같은 편, 동생과 엄마가 같은 편이라며 편을 나누었던 기억도 여전한 걸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엄마와 그다지 가깝지 않았거나 아빠랑 너무 가까웠던 것 같다.


보통 이런 관계는 나이가 들면서 바뀐다고 하던데 어릴적 너무 편가르기에 에너지를 쏟은 탓일까, 나는 이제 엄마와도 아빠와도, 둘 모두와 가까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아빠와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아빠가 첫 딸인 나를 너무 사랑해 준 덕도 있을 테고, 엄마가 아빠를 마음에서 밀어내고 난 뒤부터였을까, 어린 내 눈엔 그저 불쌍했던 엄마에게 외면당하는 아빠의 텅 빈 마음을 채워주려고 아등바등 댔던 어린 내가 가진 엄마에 대한 미움이 자리 잡은 탓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 내모습을 보며 자연히 동생은 엄마의 외로움을 맡았고, 그 결과 동생은 되려 엄마에게 딸 같은 아들이 되었다.


어린 마음엔 아빠를 미워하는 엄마가 그저 나쁜 사람으로만 보였다. 아빠는 내게 그저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노력한들 그 부분은 내가 채워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알 수 없었던 어린 나는 그렇게 아빠를 열심히도 돌보았던 것이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친구들과의 시간보다 아빠 옆을 가만히 그렇게 지켜주는 시간을 선택한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렇게 나의 청소년기를 보낸 결과, 여전히 나는 엄마와 대화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


엄마가 오랜만에 아기를 보러 멀리서 올라왔는데 어쩐지 살이 쏙 빠진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요양원에 있는 아빠를 여전히 불쌍해하며 매달 꼬박꼬박 찾아가면서도 엄마집에는 벌써 반년이 다되도록 찾아가지 않았고, 내 마음 지켜내느라 전화 한 통 하지 않던 내가 또 죄스러워서.


왜 이렇게 나는 내 부모가 늘 아프고 불안하고 짠하고 아린지.


어려서도, 지금도, 엄마 팔짱을 끼고 걸으며 혹은 전화통화를 수시로 하며 시시콜콜 재잘재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딸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나도 이제라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쑥스럽고 간지러웠다. 사실 어디서부터 이 간극을 채워나가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우리의 대화는 마치 성인이 된 아들과 아버지 사이처럼 겉돈다. 나는 엄마에게 그간의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만 결국 한마디도 털어놓지 못했고, 엄마는 그간의 내 얘기가 궁금하긴 했을까, 한마디를 묻지 않았다.


그 언젠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서둘러 짐을 싸서 기차를 타러 가는 엄마 뒷모습이 괜히 시큰해지는 오늘이다.


“함머니, 가티 갈거야” 하며 서운함을 그대로 내색하는 아기처럼 나도 그 서운함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좀 달라져 있었을까.


내가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를 사랑해 주느라 애써 외면했던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분명 내 원망과 미움이 전해졌을텐데.


한때 나는 엄마가 온 세상인냥 내 품에 꼭 붙어있는 이 소중한 아기와 같이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을 소중한 아기였을텐데. 우리는 언제 이렇게 멀어진 걸까.


오개월 전, 심하게 휘청거린 내 인생을 엄마가 토닥여주길 바랐다. 힘든 일을 부모님에게 터놓을 줄 모르고 나 커버린 나는 위로를 받고 싶지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위로가 없는 엄마를 속으로 원망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동생에게 전해 들었다. 엄마도 어딘가 많이 아팠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엄마니까 알아주길 바랐다. 엄마는 그럴 수 있는거 아닌가 철없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내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을까. 이젠 엄마의 외로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부터 잘 살아야 가족도 챙길 수 있다는 말을 확실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나도 엄마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딸 같은 딸이 되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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