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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운다, 아빠가 나를 키웠듯이

by Slowlifer

첩첩산중 시골에서 자란 아빠는

자연히 늘 자연과 함께하는 법을 아는 분이셨다.


덕분에 난 늘 아빠와

산으로, 들으로, 바다로, 강으로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이제는 아빠가 아닌

나의 남편, 아기와 함께 자연을 찾는다.


나는 아이를 백화점, 키즈카페 대신

바다로, 산으로 데리고 다닌다.


아빠가 나에게 그랬듯,

나는 아빠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내 아이에게 알려준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좋은 계절엔

자연이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는 법을.


바람을 맞고

파도소리를 듣고

모래를 만지고

조개껍질을 줍고,


작은 텐트 안에 세 식구

함께 나란히 누워 온기를 나누는 법을.


아기와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히 어릴 적 내가 생각난다.


특히 아빠와 함께였던,

아빠가 나에게 크나 큰 존재였던 시절을.


아빠가 운전하는 조수석에 앉으면

아빠는 늘 나를 재미있는

어떤 곳으로 데려가주곤 했다.


바다를 가면 고둥을 잡고

낚시하는 아저씨들의 그물망을 구경하고

모래나 방파제에 툭 걸쳐 앉아 쉬는 법을

나는 아빠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내 인생에 아빠는 그렇게 큰 존재였기에

아빠가 이제는 더 이상 내게

그때와 같이 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 나는 너무 아프다.


내 가정을 이룬 지금,

아빠 없이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유난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이건 그리움일까, 헛헛함일까.


아마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그 시간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남들보다 너무 빨리 흐르는

아빠의 시간 속에는

내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여전히

내가 지금 내 아기를 바라보듯


아빠눈엔

작고 소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예쁜 어린 딸일까.


사랑스러운 아기를 키울수록

아빠의 어릴 적 나에 대한 사랑이

배가되어 돌아오는 기분이다.


나는 아빠가 나를 키웠듯

나의 아기를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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