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뭔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갑자기.
특히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2년 정도 아빠가 보고 싶은 마음보다 아빠를 떠올리면 힘든 마음, 미운 마음이 먼저 들었기에 의무감과 책임감만 남아있는 줄로만 알았기에 오늘의 감정은 오랜만이었다.
그냥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별 것 아닌 일상의 몇 순간들이었다.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사무실에 방 한 칸이 딸려있던, 화장실도 밖에 있었던 그 작은 주택의 셋방 옆 공터에는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았었는데 부모님은 거기에 작은 텃밭을 가꿨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도 우리 가족은 자주 이웃 사람들을 만났고 엄마 아빠는 많이 웃었고, 우리도 참 행복했었다.
문득 떠오르던 순간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고기 구워 먹게 밭에 가서 상추랑 고추 몇 개 따오라던 엄마의 목소리, 아빠 친구가 일구던 밭에 아빠랑 놀러 가서 들깨를 털고,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던 시간들.
자꾸만 주택 생활을 원하는, 자꾸만 텃밭을 원하는, 정원을 원하는 지금의 내 모습의 저 깊숙한 곳에는 행복했던 꼬마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땐 당연했던 일상이 지금은 너무 그리운,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기억되는 것을 보니 그 시절 꼬마였던 어린 나는 가족들과의 자연에서의 시간이 참 행복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빠가 내게 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비록 경제적인 면에서 아빠는 거의 빵점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아빠는 내가 살아가며 위로를 찾을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다.
산에서, 바다에서.
자연을 가까이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 휘청거리는 내가 스스로 지탱할 곳을 자연에서, 식물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건 아빠 덕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계절이 바뀌며 새싹이 돋는 모습을 예쁘게 바라볼 수 있는 눈과, 흙이 손에 닿는 느낌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아빠와 함께했던 수많은 날들 속에서 경험으로 얻었다.
인정하고 나니 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사라졌다.
되려 아빠의 그 젊은 날들이 어땠을까, 지금의 나와 같이 출구가 보이지 않아 많이 힘들었을까, 내가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묵묵히 베란다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는 시간으로 마음을 달래듯 아빠는 산을 오르고 밭일을 했었을까 생각하며 또다시 마음이 시큰거린다.
봄이 되면 늘 아빠와 벚꽃 산책을 했다.
아마 그래서 아빠가 더 보고 싶은가 보다. 올해는, 벚꽃이 피면 그때처럼 아빠랑 데이트를 해야겠다. 더 이상 그때처럼 나란히 발을 맞춰 걷지도, 아빠가 태워주는
차 조수석에서 재잘거리지도 못하지만 휠체어라도 밀 수 있는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그리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