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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그렇게 살아야 했어?

by Slowlifer

내 안에서 시시때때로 울컥울컥 올라오지만 이젠 자기 힘으로 걷지도, 소변을 가릴 수 조차 없게 된 아빠에겐 차마 뱉을 수 없어 수없이 많이 삼킨 그 말이다.


“아빠, 대체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어?”

“왜 그렇게 무책임했어?”

“지금은 후회해?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안 살 거야?”


아빠와 너무나 다른 성향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딸은 아빠 같은 사람을 찾는다던데 신기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선택했다.


어린 내 눈에도 아빠의 지난 시간들은 너무나 무책임해 보였던 모양이다. 책임감이 남다르게 강한 남자를 만났다. 작은 물건 하나도 ‘내 것’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평생을 봐왔던 남자인 아빠에게는 없는 모습을 가진 남자가 처음엔 유난스러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소한 물건에 대한 애착들이 결국 사람에게도 똑같은 애착과 책임감으로 이어진다는 걸 이젠 안다. 유난스러운 게 무책임과 무관심보다 이백배 낫다는 것도.


자기 물건을 잘 아낄 줄 아는 사람이 자기 사람도 잘 아낄 줄 안다.



늘 아빠의 인생이 이해가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 여전히 알 수 없는 그 어른의 깊은 슬픔을 그 어린 내가 기꺼이 껴안으려 했다. 이해하려 애썼다. 아빠의 그 무너진 마음이 너무나 슬퍼서 혹여라도 더 외로울까 늘 아빠 옆에 머물던 어린 나였다.


그런 아빠가 미워 온몸으로 미움을 표현하던 엄마가 되려 미웠다. 그 원망과 미움의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자랐다. 그러면 아빠가 좀 덜 상처받을 줄 알았나 보다.


그 착하고 여린 어린 내 마음이 그 버거운 감정들을 안고 조금씩 우울을 키워가는 줄은 전혀 몰랐다. 아빠의 우울을 줄이고자 애쓴 결과가 우울전염일 줄 몰랐다.


글을 쓰다 보니 아빠가 깊은 우울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 무기력, 회피, 관계단절, 알코올중독. 얕은 우울을 겪어보니 그게 얼마나 큰 우울이었는지 알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아빠도 치료를 받았으면 달라졌을까.



아빠가 본격적으로 미워진 건 내가 아기를 낳고부터였다.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을 이 소중한 존재를 둘씩이나 두고 어쩜 그리 무책임하게 살았을까 화가 났다. 아기가 자라는 걸 볼수롤 화는 더 커져만 갔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를 이해하는 게 자식이라던데 나는 부모가 되어서 부모가 더 이해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게 아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었던 깊은 마음의 병이었던 거라면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 여전히 내 마음은 혼란하다.


마음껏 화를 내지도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는 사이 내 마음이 지쳐버렸다.



어제 어머님이 아기를 봐주신다고 하셔서 남편과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아기랑 함께하고부턴 멀어져야만 했던 내가 좋아했던 취미이다.


또래의 여자가 아빠와 등산을 와서 인증샷을 찍어달라 부탁해 왔다. 아빠가 생각났다. 부러웠다. 이제 아빠랑 더 이상 산을 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또 아팠다.


아빠에게서 자연을 배웠다.


아빠가 내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었던 건 사계절 변하는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봄엔 쑥 뜯고 냉이 캐러 저수지 둑이나 동네 뒷산을 갔고, 여름엔 계곡을 낀 산에 들어가 나무그늘 아래 앉아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가을이면 밤이 주렁주렁 여는 곳을 찾아다니며 밤을 주웠고 추운 겨울에도 콧바람 쐬자며 바다를 드라이브했다.


이런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면 내가 아주 시골에서 자랐다고 생각들을 한다. 도시에 살며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은 당시 내 또래들에게도 생소한 일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난 참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걸 받았구나 싶기도 하다.


이제는 더 이상 아빠랑 할 수 없는 일들이 되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픈데 너무 화가 난다.


주변을 보면 60대는 여전히 손주 손 잡고 같이 산으로 바다로 잘만 놀러 다니는 나이인 것 같은데, 20년은 앞서 가는 아빠가 너무 야속하다. 그 인생이 너무 불쌍한데 또 너무 슬프다.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다.

불쌍했다, 화가 났다, 짠했다가도 아빠가 밉다.


나는 왜 아빠에게 물어보지도 못하는 걸까?


물어본다 하더라도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발음마저 뭉개져버린 아빠에게서 그 대답을 명확하게 들을 순 있을까.


오늘도 속으로만 삼키는 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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