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의 기준
모든 게 상대적이겠지만 내 기준 다소 불우했던 내 어린 시절의 가정사를 정면으로 드러내야 했던 때는 결혼을 앞둔 그때였던 것 같다.
사실 남편이 먼저 물어본 적도 없고, 결혼 전에 숨기는 거 없이 모든 걸 다 털어놓으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인지 스스로가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상당히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서른 중반이 되도록 어떻게든 숨기고만 싶었던 내 치부를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다 드러낸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아픈 일이었다.
그랬다.
나에게 가족, 정확히 부모님은 죄송한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내 약점이자 치부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내 감정이 거기에 남아있으니 어쩌면 지금도 달라지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부모님만 아니면 나는 꽤나 멀쩡한 남들이 말하는 평균치의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부모님 이야기가 내 삶에 들어오면 그렇게 내가 못나 보이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가족소개를 하던 때가 기억난다.
왜들 그렇게 다들 자기 집은 화목하다는 걸까? 마치 우리 집 빼고 다 화목한 집 같은 기분이었다. 그에 질세라 나도 친구들 따라 사실과는 다르게 우리 집은 화목하다고 소개했던 것 같다. 아마 어린 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집이 화목한 가정처럼 비치길 바랐던 모양이다.
그 어린 마음이 여전히 아프다.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어린 나를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네 탓 아니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인데’라는 마음으로 내가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내가 모두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그 무게들이 한순간 나를 이렇게 짓눌러 무너뜨릴 줄 꿈에도 상상 못 하고서 말이다.
결혼 상대에게는 솔직하고 싶었다.
아니, 숨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에게 가족을 숨기고 살 바에야 결혼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때는 그것들을 드러내기 싫어서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고, 부모님을 드러내야 했던 상견례나 결혼식을 준비하는 당시 내 마음은 거의 지옥에 가까울 만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나를 여전히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마음속 어딘가에 늘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숨길 수 있을 때까진 최대한 숨기려 했던 것 같다.
사연 많은 우리 집과 다르게, 그 삶이 너무나 당연해 본인은 못 느끼지만 내 보기엔 남편의 가족은 너무나 화기애애한 평범한 그런 가족이었기 때문에, 자꾸만 속으로 비교되어 위축되는 내 마음에 자주 슬펐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언젠간 마주해야 할 일이었다.
20년 동안 관리라고는 받아보지 못한, 담배 쩐내와 곳곳에 묵은 때가 켜켜이 쌓여있는 우리 집에 처음 남편을 데리고 가던 날이 생생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그곳에 머무르는 내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발가벗겨진 채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두려웠다.
우리 집이 이런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나와 결혼을 하기로 한 것도 다시 고민스럽진 않을지. 한껏 날이 서 괜히 아무것도 아닌 반응에 되려 내가 더 화를 내던 그 시간들이었다.
여전히 기억난다.
남편과 대화 중, “비정상적인 우리 집”이라는 내 표현에 남편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비정상적인 게 어딨어, 그냥 사는 게 다 다른 거지.”
그 말은 오랫동안 한껏 날이 선 채로 방어적으로 그의 표정을 살피던 내 마음을 녹이기 충분했다.
그랬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 부모님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걸 내가 감당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30년 넘게 그 모든 일이 내가 감당해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나를 괴롭히며 살아왔다.
어떻게든 화목한 가족으로 만들려고 내가 노력하면 우리 집도 남들처럼 겉보기 만으로도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 줄로 착각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애쓰고 또 애썼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 여느 화목한 가정처럼 정기적으로 근교로 여행을 하고 외식을 하러 다니면 우리 집도 마침내는 그런 화목한 가족이 될 줄 알았다. 그게 내 착각이었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많은 노력 끝의 결과는 부모님의 황혼 이혼이었다. 그제야 그간의 내 노력과 애씀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